벅찬 일상 속에서 피어오르는 딴생각

by 그냥사탕


조금씩 새로운 환경이 나의 일상이라고 여기는 하루를 열어가고 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정돈되지 않은 집안일을 한 달, 두 달 하다 보니 조금씩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매일 아침에는 전쟁이고 늘 실수투성이를 고수하고 있지만 중간에 믹스커피 한 잔을 시도할 틈새를 만들게 된 것이다. 가정주부가 된 이후의 일상은 매 순간이 벅차고 소중한 경험으로 채워가고 있었다.


'난 못해'라고 단정 지었던 적성에 없던 그 일들이 이제는 마땅히 '나의 할 일'이 되었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 기쁘기는 했다. 반면 끊임없이 생성되는 집안일과 육아라는 미션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유리 같은 멘털은 매 순간 그 견고함을 시험당했다. 티가 안나는 살림은 멈추면 바로 흔적이 남았다. 아이들의 등하원, 등하교를 하고 나면 내 몸만 거지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 집에 있었으나 집에 있는 시간은 거의 없어졌고(초등 저학년 맘들은 알 것이다) 매일 하는 혼밥은 귀찮아서 패스하기 일쑤였다. 아무리 조용하게 사색을 줄기는 1인 이라지만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자 스스로 영양가 없는 일상에 대하여 회의감만 차올랐다. 집에 있는 시간은 늘어났으나 잠자리에 들 때에는 여전히 더러워진 집안과 그날 해결하지 못한 무언가는 항상 존재했다. 나는 도대체 '하루 종일 뭘 하고 있었나?' 하는 무력감을 갖으며 잠이 들었다.


무언가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직장을 다니던 시절에는 쥐꼬리를 넘나들어도 꾸준히 월급이라고 불리는 급여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맞벌이에서 외벌이가 됨으로써 토막 난 가정 경제와 엄마바라기 두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내'가 '나'로 살아가지 못하는 무언가로 느껴졌다. 일상에 틈이 생겨서 그런 것일까? 분명 아이들에게 엄마를 돌려주기 위하여 선택한 길이었으나 마치 자기 관리 하나 제대로 못하는 무쓸모 잉여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루종일 바쁘게 몸을 움직여도 집에서 놀고먹는 인간이라는 프레임을 스스로 씌우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남편의 끊임없는 칭찬과 격려는 더 이상 나에게 들어오지 못한 채 튕겨 나가 허공에 떠돌 뿐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가정에 전념하겠다는 나의 선언으로 또다시 새로운 직장을 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뭔가 하고 싶었다. 다시 한번 꼬물거리고 싶었다. 멈추지 않는 '회의감'이라는 부정적인 상념에 대하여 나를 보호하고 싶었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절실히 필요했다. 아이들을 챙기려 하다가 나를 잃어버릴 판이었다. 애초에 내가 우려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세상에서 벗어나 외부인이 된다는 그 불편한 느낌. 그것은 각종 SNS를 하면서 들어가는 것과는 달랐다. 어쩌면 이조차 제3의 시선에서 눈으로만 기웃거릴 뿐 사회의 일원이 아니었다.


여러 육아서에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 또한 행복하게 자란다고 계속해서 어필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특별한 능력 또한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의 어두움을 치워야 한다는 생각은 내면에서 계속 소리치고 있었다.


결국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는 다짐을 했다.

방법을 모른다면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찾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찾기로 했다.


이상한 잡념이 나를 덮치기 전에 배출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다이어리를 펼치고 매일 아침 일기를 썼다. 바쁘다는 핑계로 뒤로 미루었던 나의 하루를 기록했다. 앞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 체력은 애초부터 바닥을 찍었다. 때문에 밤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재우면서 내가 먼저 잠들었다. 그러니 밤에 쓰는 일기는 매 페이지에 구멍을 만들어냈다. 오늘 어땠는지 기록하기 전에 꿈나라로 먼저 들어갔기에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핸드폰 대신 다이어리를 펼쳤다.


새벽에 쓰는 일기는 밤에 쓰는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하루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이후 지쳐있는 감정과 체력을 부여잡고 작성했던 내용은 언제나 불평과 불안, 혼란의 연속이었다. 때문에 부정적인 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후에 들쳐보았을 때에는 스스로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렇게 보이고 싶어서 작정하고 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여는 다이어리에는 계획과 다짐이 들어있었다. 분명 전날의 내용을 쓰고 있었지만 같은 사건에 대하여 서술하는 단어들은 달랐다. 그 순간 보지 못했던 시각을 챙겼고 되돌아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것으로 인하여 어떻게 희망을 찾으려 애쓰고 있는지가 들어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밤에 쓸 때에는 쥐구멍이 얼마나 좁고 어두운지에 대해 주야장천 설명 했다면 새벽의 일기는 그 작은 구멍에 빛이 언제쯤 들 것인지, 빛이 조금이라도 더 들어오게 하려면 어느 쪽에 창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희망과 계획을 구상했다고 할까.


뒤이어 연습장으로 사용하는 노트에 '오늘의 할 일'을 적었다.

소소하고 쓸데없는 것까지 모두 적었다.

'빨래하기, 설거지하기, 독서(~p100), 냉장고 지도 만들기 등...'

그것을 토대로 매일을 허투루 넘기는 일이 하나둘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의 하루는 무쓸모가 아니라는 것을 눈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눈이 감기는 시간에는 소비가 아닌 미래를 위한 설계의 흔적으로 남았다. 같은 행위였으나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더불어 그 사이에 틈새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스스로 시간관리라는 것을 하는 초석을 다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하루'라는 틀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아무것도 못한다 여기고 있었다. 좋아하는 책을 옆에 놔두기만 하고 제목조차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유명한 투-두-리스트에 적어도 여전히 100프로 완수하지 못한 것들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럴 때면 상황에 맞게 나에게 맞게 보완하고, 추가하고, 삭제해 가면서 조절해 나갔다.


그동안 '빨래하기'라고 적어 놓고는 해 질 녘에 여전히 쌓여있는 빨랫감들을 보며 한숨을 지었다.


오늘은 '이불 빨래'

내일은 '흰 빨래'

모레는 '검은 빨래'


이렇게 세분화해놓으니 세탁실에 빨랫감이 쌓여 있어도 그날 해야 하는 것을 해결했으니 부담이 덜했다. 적어도 오늘 하려고 했었던 것은 해냈다는 즐거움만 남았다. 별 것 아닌 것을 나누면서 마르지 않는 양말과 더는 널 곳이 없는 건조대를 탓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름의 할 일 목록을 만들고 체크해 가면서 하루에 10분, 20분 점차 독서시간이 생겼다. 여전히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마음은 컸으나 욕심을 버리고 해야 하는 일들을 조그마하게 잘라놓으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래서였을까?

그렇게 틈이 나기 시작하자 자신감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생겼다. 그 와중에 '엄마'말로 '나'로서 생존할 무언가의 방법을 찾기 위하여 마음속 미어캣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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