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그리고 글쓰기 (뤼뒹롸이링)

by 그냥사탕


매일 새벽에 기상하고 나름의 단조로운 루틴을 만들었다. 별 것 아님에도 그것이 하루를 깨우는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졌다.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조금씩 책을 읽고, 일상을 기록하고... 그런 단순한 행동을 반복했다. 그런데 무엇에 홀렸을까. 갑자기 생뚱맞은 고민들이 몽글몽글 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얼 잘하나 등 타인이 아닌 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더라면 물 흐르듯 그냥 넘어갈 일이었다. 물론 내가 퇴사를 한 이유와 그 목적에 대하여 뚜렷하게 알고 있었다. 아이들과 가정의 안정이라는 대의를 품고 시작했다. 여기에 끊임없이 발생하는 체력의 문제가 한몫했고 말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아이들이 엄마가 어디 가지 않고 하루종일 자신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데에서 안정감을 찾고 있었다. 각자의 스케줄을 마쳤을 때 교문 앞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면 환하게 웃어주는 모습을 좋아했다. 남편은 모든 것을 홀로 해결해야 했던 과거에 비하여 수월해졌다. 물론 외벌이가 됨으로써 다가오는 경제적 불안정은 여전했고 남편은 그에 따른 부담감이 올라갔을 테다. 대신에 아이들 등하원부터 식사, 소아과, 학원 방문 등 함께 분담하여 진행하던 일들을 집에 있는 내가 전담 마크하니 그나마 편안해 보였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평화롭다 여겼을까. 그에 따라 배가 불렀었나 보다.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존재.

I / My / Me / Mine...


'나'라는 존재는 파도 파도 끝이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다. 블랙홀처럼 알아보려 귀를 기울이면 더욱 애매한 연구 대상이었다. 때문에 진지한 고민을 하면서 그동안 써오던 일기를 들춰 보았다. 어쩌면 이를 쓸 때마다 마음이 각박했었을까. 매일이 푸념으로 가득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과거에 대한 아쉬움만 들어 있었다.


'내가 이렇게 우울한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이 돌연 들었다. 아니라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종이 위에 쓰인 내 모습은 그랬다. 이곳에서의 나는 불평불만이 많은 꽤나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나마 자존감이 매우 높고 무한 긍정 남편이 있어서 중화되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 이상 나는 더 이상 불평하기 싫어졌다. 어둠의 자식처럼 시꺼먼 먹구름을 몰고 다니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떠올릴 때 밝고 맑은 하늘색이 떠올랐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사람이 그리 한 순간에 달라지지 않는다고 지난 몇 십 년간 갈고닦아온 어둠의 내공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았다.


잘 웃는 밝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또다시 굳은 표정이었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단어를 쓰고 싶었지만 어느샌가 지적질을 일삼는 나로 돌아와 있었다. 불평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개 버릇 남 주지도 못하는 스스로가 답답했다. 항상 happy 한 싱글벙글 얼굴을 할 욕심은 없었지만 적어도 스스로 우울함의 결정체를 자처하기는 싫었다.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서 '나를 알라'는 표현을 마주했다. 그렇게 고민해도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이 없었기에 적어보기로 했다. 빈 노트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하여 작성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정말 못돼 처먹었나...

종이에 끄적여 놓은 몇 줄에는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존재가 놓여 있었다. 고작 몇 줄이었을 뿐인데 떠오르는 긍정적인 것은 그나마 책 읽고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이 글 또한 '나를 알라'라는 짧은 한 문장을 보고 써보고 있던 차였다. 생각의 고갈로 인하여 더 이상 줄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김밥과 낙지덮밥을 좋아한다는 내용까지 써 보았다. 그런데 그것 외에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내 나이가 지금 몇인데... 이 나이 먹도록 스스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뚜렷하지 못했다. 블로그에 책을 읽고 포스팅이라는 이름으로 독후감 몇 글자 끼적거리는 것 외에 잘하는 것도 없었다. 그마저도 방문자 수는 거의 없기에 혼자 노는 놀이터쯤으로 여겨졌다.


남들은 맨날 '월 천만 원'을 쉽게 부르짖던데 나에게는 그저 꿈같은 소리였다. 그렇기에 그나마 잘한다고 여겼던 읽고 쓰는 것 또한 그저 'can (할 수 있다)' 동사일 뿐이었지 'very(매우, 잘)'의 부사의 의미는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니 없던 자존감 또한 덩달아 바닥으로 치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로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던 중 나름 야심 차게 남편을 향해 '디지털노마드'에 대한 선언을 했다. 하지만 굳건한 다짐 앞으로 되돌아온 남편의 답변은 힘을 쭉 빠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내 성향이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끈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듣기 싫은 조언을 해 주었다. 정말 인정머리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더욱 속상한 것은 그 말에 반박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월 천만 원을 지금 당장 만들어 낼 재주는 정말 없었다. 그럼에도 남편의 단정적인 말들을 뒤집어주고 싶었다. 때문에 돈을 버는 성향이라는 말을 반박할 수는 없었지만 뒷부분인 '끈기 없는 사람'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니라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이렇게 나만의 이야기를 하며 브런치에 책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반드시 이 글을 완성하여 보란 듯이 나만의 책을 완성하리라.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모른다면 이제라도 알아야 했다. 때문에 더더욱 책을 읽어가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불평이 아닌 결과로 보여주겠다는 다짐과 함께 나를 알아가는 글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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