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늘 부지런한 사람만의 전유물이라 여겼다.
하지만 둘째를 낳은 날부터 나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새벽 기상을 하게 되었다. 순한 첫째와 달리 하루종일 껌딱지처럼 붙어있어야 하는 작은 존재. 그때는 모유수유를 해야 했기에 자동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모두가 잠든 그 시간은 유일한 나의 숨구멍이기에 악착같이 놀고 싶어 새벽을 찾았다. 하지만 둘째마저 유치원에 들어간 지금은 오롯이 나 혼자 놀고 싶다는 의지 하나만 남아있었을 뿐이었다.
새벽이란 언제나 침묵과 어둠이 공존한다.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 같다.
지금은 여름 한가운데를 지나갔지만 그럼에도 새벽 6시의 창 밖은 환하다. 동시에 남편의 출근이 이루어지고 두 아이가 일어나기까지의 나의 시간은 약 1시간 남짓이다. 가정주부가 되고 나니 졸린 눈을 비벼가며 굳이 일어나야 할 필요는 없었다. 남편이 집을 나서면 배웅을 한 이후 침대로 다시 돌아가 누우면 그만 이었다. 그럼에도 나의 발길은 방이 아닌 주방의 식탁으로 향한다.
한동안은 그 시간부터 아이들 기상시간까지 1분 1초가 아까워서라도 휴대폰을 놓지 못했다. 누군가 쳐다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모범이 되지 못한다는 자책감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기에 원하는 데로 핸드폰 게임이나 보고 싶은 드라마 가리지 않고 개인의 유흥을 위해 올인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 눈을 비비며 방 문을 열고 나오는 천사를 보면 아쉬움에 한숨을 지어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이가 몇 십 개를 먹었으면서도 여전히 철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 귀한 찰나를 사치스럽게 쓰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마음 편하게 늦은 밤에 놀아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저질체력으로 인하여 밤늦게까지 버틸 재간이 없었다. 때로는 아이들을 재우다 내가 먼저 꿈나라로 갈 때도 많았다. 그런 가운데 집안에서 뭉개는 일상이 너무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을 그만두면 나를 잃는 것이 아닐까 겁에 질려 있었음에도 인간의 장점이라고 불리는 망각을 이렇게 효율적으로 쓰고 있었을 줄이야...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내 몸은 슬라임처럼 흐물거리며 바닥과 물아일체를 꿈꾸고 있었다. 그 상태를 인지하고 깨달았다. 내면의 자유는 입으로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찾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맡은 일을 정확하고 야무지개까지는 아닐지언정 지금, 여기, 왜 있는가에 대한 자각을 한 이후 주어진 것을 해결하는 것. 그게 비법이었다. 그 방법이 나를 찾는 첫걸음이었다. 때문에 더 이상 무의미한 시간 낭비는 최소한으로 줄이기로 했다. 그리고 새벽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해가 뜨고 누군가가 기상을 시작하면 나의 하루는 출발이었다. 다시 바쁜 엄마의 일상으로 돌아가 엄마와 아내만 남겨지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꿈꾸었다.
각종 매체나 sns에서는 엄마도 할 수 있다고 외치는 말이 눈에 계속 들어왔다.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격려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럴만한 시간 확보가 결정적으로 필요했다. 주말에는 남편의 배려를 기대한다 해도 평일에는 육아와 가사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나 좋은 거 하겠다고 모두 팽개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간택된 순간은 역시나 돌고 돌아서 새벽 타임이었다. 멍 때리며 휴대폰을 들여다볼 때에는 몰랐으나 막상 오랜만에 새벽시간에 책을 읽으려 하니 눈꺼풀의 무게가 엄청나게 무거웠다. 하지만 스스로 도전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조차 무의미한 인생을 받아들인다는 뜻과 같이 여겨졌다. 칼을 뽑았으면 두부라도 잘라야 덜 민망할 터, 하루에 딱 한 시간 만이라도 읽기 시작하자고 이를 악물었다.
졸음이 나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가느다란 집중력이 혹여 흩뿌려질까 봐 비위 맞춰가며 세수도 하고, 양치도 했다. 따듯한 차 또는 달달한 믹스 커피 한잔과 함께 조금씩 열어가는 하루의 시작은 잊혔던 찰나의 행복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얻은 자신감은 새벽을 계속 꾸려갈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책 속에서 만나는 메시지들은 나에게 지속할 힘을 주었고 격려를 받은 에너지들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나의 꿈을 향해 시간을 채우는 데에 몰입하게 했다.
나에게는 여전히 짧은 한 시간.
일기를 쓰고, 데일리 To do list와 함께 다이어리를 작성하고, 책장 몇 페이지 정도 들춰보는 찰나의 순간이다. 그러나 이제는 새벽의 그 한 시간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더할 나위 없는 황금 타임이 되었다. 짧지만 강렬한 한 시간 말이다.
여전히 어둠 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중이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짧아도 후회 없이 강렬하게 사용하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