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나는 집순이였다.
하루종일 집에 있는 시간은 유일한 힐링 시간이었고, 사회생활 등 각종 체력 고갈에 대한 유의미한 에너지 충전 타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자의로 인한 집콕이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스스로의 의지로 집에 들어앉게 되었지만 어쩌면 가정주부라는 것은 단지 일터가 외부에서 집 안으로 변경되었을 뿐이었다. 때문에 감금당한 것은 아니었으나 타의로 움직이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집순이가 즐겁지 않았다. 그렇다고 앞으로 길게 유지해야 할 이곳에서의 일상을 계속 우울하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안에서 나름의 기쁨을 찾아야만 했다.
본디 집순이라 함은 시끌벅적한 곳보다는 혼자서 자유를 영위하는 행위를 선호한다. 그렇기에 이를 적극 활용해야 했다. 정신 차리고 둘러보니 나 빼고 모두가 각자의 터전에서 자신의 삶을 열심히 보내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오전이었다. 물론 방학은 예외라고는 하나 학기 중에는 혼자 보내는 짤막한 오전 시간은 귀하디 귀했다. 하지만 집에 있는다고 해서 온전히 쉬는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이 가정주부라는 종목은 나의 일터가 이곳이라는 뜻이었다.
의지박약의 대표 주자였던 나는 한 번 불타오르면 열심히 하지만 무언가 잡아놓을 구실이 없다면 흐지부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나를 알아가는 끄적임은 조금 지속되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이내 핸드폰으로 정신이 빼앗겼다.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세월아 네월아 하다가 알람이 아이들 하원 시간을 알리는 소리를 내면 그제야 후회감이 밀려왔다. 덩달아 남은 하루를 속상함으로 채워갔다.
점차 사라지는 '나'라는 존재와 '의지'를 다시 부여잡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기 싫어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태해지는 몸뚱이... 바쁜 일상 속에서 쌓인 스트레스는 조금씩 누적되고 있었다. 그런 시간이 지속되니 이제는 오히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과 불안감이 덩달아 커져갔다. 머리와 마음에 알지 못할 응어리가 쌓여만 갔다.
다시 나를 챙겨야 할 때였다.
나태한 스스로를 지탱해야만 했다.
여전히 산재한 다양한 문제들을 척척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제1 임무였다.
그때 나에게 블로그와 브런치라는 공간이 떠올랐다.
한때 열심히 했던 브런치는 겨우 이름만 올라가 있는 상태였고 관리가 되지 않았기에 나의 공간은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깊숙한 밀림처럼 변해있었다. 매일 휴대폰 메모장, 다이어리, 빈 종이 등 손으로 끄적거리며 중구난방으로 산재되어 있는 생각들을 이곳, 브런치에 정리하기로 했다.
책을 읽은 내용은 나만의 방식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하여 블로그에 쓰기 시작했다.
내가 누구라고...
대단한 유명인사가 아니었기에 당연히 몇 글자 적었다고 누가 아는 체 해 주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러 와주지 않았다. 가끔은 그 점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 혼자 놀고 있는 놀이터라 끄적거리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 속마음을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날려 보냈다는 쾌감으로 돌아왔다. 글을 쓸 때마다 쌓여있던 응어리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나'라는 존재가 여전히 세상에서 살아있다고 여겨져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글쓰기는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브런치, 블로그 모두 몇 사람 쳐다보지 않았다. 그마저도 스팸처럼 틀에 박힌 인사치레의 댓글이 쓰여있었다. 하지만 일상의 별 볼일 없는 한 장면을 그저 사진 한 컷으로 남기고 땡 했던 것보다는 읽을 책 사진 몇 장을 나열하면서 나에게 있던 일들을 올렸다.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아지트가 생겼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 과정에서 나를 되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매우 높았다고 여겨왔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과는 상반되게 누군가와 재미있는 수다 삼매경을 매우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집콕을 하면서 하루종일 말 할 상대가 없다는 것도 불만지수를 높이는 데에 한몫했다. 하지만 글자로 끄적인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잔뜩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에 읽고 호응해 주며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참으로 좋았겠지만 그럴 글재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블로그에 가끔 올라와있는 나의 글과 생각에 동의한다는 진정 어린 댓글 한 개, 또는 브런치에 글을 읽고 라이킷을 눌러주는 누군가가 너무 고마웠다. 어쩌면 지나가다 우연히 클릭을 해 주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가뭄에 콩 나듯 올라오는 작은 반응들이 높아져있던 스트레스를 내려주기 시작했다.
본디 스트레스란 개인적으로 '불평불만'의 우아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더 이상 부정적으로 살지 않겠다며 아무리 장담을 하고 도전을 한다고 해도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쌓여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외부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의해서도 생성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을 패대기 칠 필요는 없다. 더 이상 길이 없다며 자책하고 포기하기에는 우리의 인생은 찬란하게 유지시킬 개인의 자유가 출생과 동시에 부여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세계 제일의 기업가 또는 Top급의 유명인사가 될 필요는 없다. 그저 스스로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이 되도록 묵묵히 걸어가면서 만족감을 올리면 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읽는 것과 쓰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잘난 것 하나 없던 그저 한 명의 아줌마일 뿐이지만 책을 읽으며 여유를 찾아가고 글을 끄적이며 눈에 보이지 않던 응어리를 조금씩 풀어나가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나처럼 읽고 쓰는 행위로 인하여 다 나아진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새롭게 무언가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인풋과 아웃풋으로 정화시키는 작업을 거친다면 저절로 어두운 스트레스는 줄어들 것이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