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석정 鮑石亭 下

시인의 문화기행 9화

by 김백



포석정 鮑石亭 下



닫힌 빗장 너머, 천년의 지문(指紋)


포석정의 석구(石溝) 주위로 서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나는 곁에 선 히사코 상에게 말을 건넸다.


“히사코 상, 사실 포석정을 한갓 유희의 장소로만 치부해 버리는 시각은 오래된 오해입니다. 다행히 최근 들어 그 부정적인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있어요. 바로 『화랑세기(花郞世記)』 필사본이 세상에 나오고, 이곳 주변의 발굴 조사가 병행되면서부터지요.”


나의 말에 히사코 상이 눈을 크게 뜨며 관심을 보였다.


“『화랑세기』라면... 신라 화랑들의 이야기를 담은, 하지만 실물은 전해지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맞습니다. 『삼국사기』는 본래 통일신라의 문장가 김대문이 쓴 역사서인데, 그 일부가 인용되어 이름만 전해질뿐 실체는 없었지요. 만약 진본이 발견된다면 『삼국사기』보다 4~5백 년이나 앞선, 당대 사가가 쓴 한민족 최고의 사료가 될 것입니다.”


나는 『화랑세기』의 파란만장한 귀환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이 신비한 이야기들이 우리 곁으로 오기까지 두 번의 큰 고비가 있었습니다. 1989년, 화랑세기를 필사했다는 박창화 선생의 유족들이 처음으로 30여 쪽의 발췌본을 공개했을 때만 해도 학계는 반신반의했지요. 하지만 6년 뒤인 1995년, 박 선생의 유품 속에서 16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본문, 즉 '모본(母本)'이 추가로 발견되면서 세상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습니다. 박 선생이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 근무하며 조선총독부가 가져간 진본을 한 자 한 자 베껴 쓴 그 필사의 시간이 마침내 세상에 얼굴을 내민 것이지요.”


히사코 상은 내 목소리에 실린 역사의 무게를 가만히 경청했다. 나는 노트를 뒤적거리며 화랑들의 찬란한 명단을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1세 위화랑부터 32세 신공에 이르는 그 장엄한 세보는 단순한 이름의 나열이 아니라 신라의 뼈대였다.


“자, 들어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그 필사본이 전하는 화랑의 계보입니다.”

1세 위화랑(魏花郞), 2세 미진부공(未珍夫公), 3세 모랑(毛郞), 4세 이화랑(二花郞), 5세 사다함(斯多含), 6세 세종(世宗), 7세 설원랑(薛花郞), 8세 문노(文努), 9세 비보랑(秘宝郞), 10세 미생랑(美生郞), 11세 하종(夏宗), 12세 보리공(菩利公), 13세 용 춘 공(龍春公), 14세 호림공(虎林公), 15세 유신공(庾信公), 16세 보종공(宝宗公), 17세 염장공(廉長公), 18세 춘추공(春秋公), 19세 흠순공(欽純公), 20세 예원공(禮元公), 21세 선품공(善品公), 22세 양도공(良圖公), 23세 군관공(軍官公), 24세 천광공(天光公), 25세 춘장공(春長公), 26세 진공(眞功), 27세 흠돌(欽突), 28세 오기공(吳起公), 29세 원선공(元宣公), 30세 천관(天官), 31세 흠언(欽言), 32세 신공(信功)


히사코 상은 숨을 죽인 채 영웅들의 이름을 되새겼다. 사다함, 김유신, 김춘추... 익숙한 이름들이 낯선 풍월주들의 이름과 섞여 살아나고 있었다.


“선생님, 그 이름을 듣고 있으니 화랑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요. 정사(正史)가 전하지 못한 그들의 민낯이 선생님의 목소리를 통해 되살아나네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이 기록 속에는 당시 궁중의 파격적인 삶—근친혼, 동성애, 다부제 등—이 숨김없이 담겨 있다. 나는 생각했다. 이 화려한 명단의 주인공들이 이곳 포석정에 모였던 것은, 결코 가벼운 유흥만을 위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붉은 연가(戀歌)에 숨겨진 제사장의 후예들

나는 화랑의 깊은 뿌리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히사코 상, 우리가 흔히 화랑을 꽃 같은 무사들로만 기억하지만, 그 시원은 사실 신궁(神宮)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던 집행자들이었습니다. 처음엔 여성이 그 역할을 맡았으나, 점차 남성으로 바뀌며 우리가 아는 화랑의 모습이 되었지요. 산천을 떠돌며 수련하던 그들을 준군사 조직으로 변모시킨 것은 8세 풍월주 문노였고요.”


히사코 상은 눈을 감고 그 옛날 신령스러운 제례의 장면을 상상하는 듯했다. 나는 그녀의 곁에서 신라 역사의 가장 화려하고도 은밀한 한 페이지를 나직이 읊어 주었다.


“『화랑세기』 필사본에는 정사(正史)가 차마 기록하지 못한 여인, ‘미실(美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그녀가 전장에 나가는 연인 사다함을 위해지었다는 향가 한 구절을 들려드리지요.”


나는 쏟아지는 눈발 사이로 「풍랑가」를 조용히 읊조렸다.


바람이 분다고 하되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친다고 하되

임 앞에 치지 말고 어서어서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아흐, 임이여

잡은 손을 차마 물리라뇨.


“세상에... 사실이라면 처용가보다 훨씬 앞선 시대의 연가(戀歌)가 아닌가요? 잡은 손을 차마 놓지 못하는 여인의 마음이 이 눈 속에 시리게 와닿아요.” 히사코 상이 감탄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그렇지요. 하지만 미실은 단순히 사랑에만 머문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진흥, 진지, 진평왕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왕들에게 몸을 바쳐 모시는 색공(色供)의 소임을 다 했으며, 권력의 정점에서 신라를 움직였던 여장부였죠. 5세 사다함과는 정을 통하고, 6세 세종과는 결혼했으며, 7세 설화랑과는 연인이었습니다. 왕의 곁에서 정사에 참여하며 골품제의 근간을 흔들었던 그녀의 삶은, 현대의 작가들이 흥미로운 성(性)의 모티브로 삼을 만큼 파격적이지요.”


히사코 상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도 흥미로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사학계에서 이 필사본을 위작이라고 의심하는 거군요. 내용이 너무도 소설적이고 작위적이라서요.”

“맞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창작이라 치부하기엔 당시 신라의 복잡한 계급 구조와 모권의 힘을 너무도 정교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요. 진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우리 사학계가 안고 가야 할 거대한 숙제인 셈입니다.”


우리는 미실의 노래가 맴도는 눈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녀가 누렸던 그 화려한 권력과 사랑도, 지금 우리 발밑에서 서걱거리는 눈송이처럼 찰나의 흔적은 아니었을까. 포석정의 석구 위로 미실의 치맛자락 같은 하얀 눈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빗장 걸린 망명의 기록, 다시 봄을 기다리며



나는 눈 속에 파묻힌 석구(石溝)를 가리키며 히사코 상에게 포석정의 진짜 이름을 나직이 읊조려 주었다.


“히사코 상, 『화랑세기』 필사본에는 이곳이 ‘포석사(鮑石祀)’ 혹은 ‘포사(鮑祀)’라는 이름으로 여러 번 등장합니다. 놀고 즐기는 장소가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뜻하는 ‘사(祀)’자를 명확히 썼지요. 이곳은 술 마시며 흥청대던 향락의 장소가 아니라, 나라의 안녕을 빌던 신성한 사당이자 샤머니즘의 성소였던 셈입니다.”



포석정 출토 기와

나의 설명에 히사코 상은 안경 너머로 석구를 다시금 찬찬히 뜯어보았다. 나는 1998년 경주문화재연구소의 발굴 성과를 떠올리며 말을 보탰다. 이곳에서 ‘포석(砲石)’이라 새겨진 기와 조각과 제사용 토기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7세기 삼국시대의 기와 양식이 확인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는 내가 가슴에 품어온 『화랑세기』의 기록들이 단순한 허구가 아님을 증명하는 과학적 증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진실을 온전히 증명해 줄 『화랑세기』 진본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합니다. 히사코 상도 아시다시피, 일제강점기 때 일본 궁내청 서릉부로 반출된 우리 도서가 수천 책에 달한다고 합니다. 2010년에 일부가 반환되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나의 목소리에 조금씩 힘이 실렸다. 서릉부의 굳게 닫힌 빗장 뒤에는 아직도 얼마나 많은 우리의 숨결이 갇혀 있을 것인가. 개인 소장본까지 합치면 30만 점이 넘는다는 우리 문화재의 망명 생활을 떠올리니, 가슴 한구석에 차가운 바람이 일었다.


“생각해 보세요. 견훤이 서라벌 코앞까지 쳐들어온 그 시린 11월 한겨울에, 아무리 주색에 빠진 왕이라 한들 이 차가운 돌확 옆에서 연회를 베풀었겠습니까? 경애왕은 아마도 이곳 ‘포석사’에서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운명을 붙잡고 신에게 간절히 매달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히사코 상은 아무 말 없이 우산 끝에 맺힌 눈송이를 털어냈다. 그녀의 침묵은 동행자로서의 공감이기도 했고, 역사의 목격자로서 느끼는 미안함이기도 했을 것이다.


잠시 그쳤던 눈은 다시 모든 흔적을 지워버릴 기세로 쏟아졌다. 어둡고 비통한 역사에 가려 차갑게 얼어붙었던 포석정. 나는 발길을 돌리며, 언젠가 이 땅에 진정한 봄이 오고 빼앗긴 기록들이 돌아와 그날의 꽃들이 다시 만발하기를 기원했다.



에필로그|비로소 왕이로소이다


포석정의 물길은 몸을 웅크린 채 막혀 있다.
술잔이 떠내려갔을, 웃음이 머물렀을, 그리고 말로 남지 못한 시간들이 돌의 굴곡마다 고여 있다. 이곳은 향락의 흔적이 아니라, 왕조의 마지막 숨이 멎은 자리다.


“피는 나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경애왕은 이곳에서 풍전등화 같은 국운 앞에서 스스로 생을 결심했을 것이다
군주의 책임을 끌어안은 왕의 마지막 자존이었을 것이다.


기록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화랑세기』 속에 등장하는 미실이라는 이름 또한 그렇다. 그녀는 설명되지 않고, 해명되지 않으며, 다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타나 왕들의 운명을 스치고 지나간다. 사랑이었는지, 권력이었는지, 혹은 시대가 만들어낸 허상이었는지—그 답은 기록의 바깥에 남아 있다.


이 기행은 여기서 끝난다. 그러나 끝내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돌에 남은 물길처럼, 말로 쓰이지 못한 진실들은 다른 형식을 찾아 흐른다. 역사에서 소설로, 사료에서 목소리로.


그래서 나라의 운명을 한 몸으로 지고 간 경애왕과 미스터리 속 여자의 시간을, 이제 소설로 불러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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