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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파 Dec 15. 2023

RED #5 저항

레드로 (  )을 말하다. 그리고 그리다

'왜?'라는 질문은 시뻘겋다. 그 자체로 반항의 본질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서부터 '왜?' 대신 수긍하는 방법을 배운 게 아닐지. 그게 바로 며칠 전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준비하던 팀원이 영상을 보여줬다. 크리스마스 때 아빠가 수염을 달고 빨간 모자를 쓰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AR 기술의 힘을 빌린다고 했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집을 촬영하면 산타가 마루를 살금살금 걸어 들어와 머리맡에 선물을 내려놓고 가는 영상을 만들 수 있다. 나 같아도 믿겠다. 디지털이여, 영원히 아이들을 꽃동산에! 어떤 아이들은 산타가 없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산타가 진짜 있어?’라는 질문을 하는 순간 산타에게 받던 선물이 사라질 걸 아니까 눈을 꾹 감고 잠을 기다렸을 것이다.


산타클로스를 믿는 나이부터 우리는 ‘왜?’ 대신 문화를 만끽하며 선물을 받는 법을 배운다. 문화를 지키면 선물이 온다. 의문을 제기하면 선물은 사라진다. 기성세대는 이제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비슷하게 행동하도록 학습시킨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왜’는 문화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관습은 자라나면서 더 껄끄럽게 변한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불합리한 상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하는 대신 무난하게 행동하며 사는 게 편하다.


관습과 다르게 행동하는 일이 저항이라면 예술은 아주 새빨간 행동 아닐까. 세상의 흐름에 의문을 가지고 이에 대한 나만의 답을 쓰는 게 예술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납작하게 만드는 세상에서는 질문을 던지고 나름대로의 답을 갖는 것이 저항하는 행위가 된다. 그래서 모든 작품은 하나의 시뻘건 손을 드는 일이다. '질문이 있습니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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