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오프보딩 : 하선하는 직원들을 위하여

by 지서방


1. 씁쓸한 퇴사의 경험

나는 한번의 이직경험이 있다.

전 회사는 제조업 기반의 회사였는데 HR로 9년 정도를 근무했었다. 퇴직할 때 새로운 회사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지만 전 회사에 대하여는 부끄러움과 슬픔을 느꼈다. 9년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신입사원들을 채용도 하고 교육도 했다.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심어주기 위하여 노력했고 회사에 안 좋은 부분을 함께 고치자고 독려하곤 했다. 그러던 HR 담당자가 후배들보다 먼저 퇴직을 한다는 점, 그리고 많은 부분을 좋게 고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던 것 같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나는 나의 퇴직을 꼭 근무할 때 알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만 조용히 알렸다. 절친한 동료들과 동기들에게 편지와 메시지를 쓰긴 했지만 각 사업부에 좋은 관계를 맺었던 분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마지막 날까지 신입사원 교육을 진행했다. 곧 퇴사를 하기에 신입사원들에게 나라는 존재를 각인시키지 않도록 노력했다.

교육 종료 후, 인사실장님은 마지막까지 수고했다며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나는 몇몇 팀원들에게만 적당히 인사를 하고 사무실 밖을 나왔다. 퇴근하면서 바깥 공기를 마셨을 때 무언가 외롭다고 느껴졌다.

9년간 배우고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씁쓸했던 퇴사의 기억은 개인적인 면도 있지만 회사의 분위기도 한 몫했다. 전 회사에서는 오프보딩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퇴직인원에 전국에 포진되어 있어 면밀한 오프보딩이 어려웠다. 현업에서 주로 면담을 진행하고 HR은 행정적인 처리에 그쳤다. 이러다 보니 퇴사는 우리에게는 한낮 행정업무에 불가했다. 퇴직자를 응원하면서 잘 보내주기 보다는 문제없이 보내는 것이 중요햇다. 나도 업무의 하나로 대하곤했지만 직접 당해보니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업무궁합이 잘 맞고 친했던 선배의 퇴직 사실을 퇴직일 전날 알게 된 일도 있었다. 팀장님은 비밀로 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수인계는 팀장님이 이미 받고 있었다. 나는 선배에게 내가 퇴직 사실을 아는 줄 알았냐고 물어봤다. 선배는 아는데 모르는 척하는 줄 알았으며 그것이 조금 섭섭했다고 대답했다. 나는 몰랐다고 했으나 그것도 자랑은 아니었다. 선배와도 그렇게 아쉬운 이별을 경험하게 되었다.


전 회사는 퇴사자를 잘 보내주는 것 보다는 퇴직을 방지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특히 경영진의 관심이 높은 1~3년차 공채 신입사원들의 Retention 강화를 지시했다. 그때 만들었던 것 중 하나가 이상징후 체크리스트였다. 삼성전자에서 핵심인재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하여 조기 경보체제를 가동하는 것을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체크리스트로 이상징후들을 체크하고 체크된 숫자에 따라 그린(이상없음), 옐로우(주의), 레드(퇴사징후군) 으로 구분하고 이직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형태였다.

체크리스트의 주요 문항은 미국 유타주립대 티모시 가드너 교수와 애리조나주립대 피터 홈 교수가 '퇴사하기 전 행동'를 활용하여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1. 평소보다 업무 생산성이 떨어진다.
2. 평소보다 팀원으로서 활동을 적게 한다.
3. 최소한의 일만 하려는 경향이 전보다 자주 나타난다.
4. 상사의 기분을 맞춰주는 일에 관심이 없다.
5. 장기적인 업무 계획에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
6. 부정적인 태도를 겉으로 드러낸다.
7. 평소보다 열성적이지 않다.
8. 업무와 관련된 문제에 덜 집중한다.
9. 평소보다 현재 하는 일에 대해서 불만을 보인다
10. 평소보다 상사에 대해서 훨씬 불만을 나타낸다.
11. 평소보다 훨씬 자주 일찍 퇴근한다
12. 조직의 미션에 대해서 열정을 잃었다.
13. 평소보다 고객과 관련된 일에 흥미를 적게 보인다.

(미국 유타주립대 티모시 가드너 교수와 애리조나주립대 피터 홈 교수가 '퇴사하기 전 행동' 중에서)


L20230425.99099007687i1.jpg 최근 설문자료들을 봐도 퇴직전 보이는 행동은 유사하게 나온다


멘토들에게 월별로 면담을 진행하고 이상징후 체크를 요청하였더니 제법 높은 확률로 조기에 이상징후를 체크할 수 있었다. 2005년 당시 삼성전자는 Retention조직을 구성하고 외에도 다양한 Retention 정책을 펼쳐 핵심인재 유실률 2%대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나름 조직의 문제점을 조기에 발견하는 소득은 있었으나, 눈에 띄게 퇴직을 방지하는 성과까지는 도출할 수 없었다. Retention의 적정한 타겟 인원이었는지, 문제파악과 해결방안이 적절했는지, 그 외 다른 Retention 제도들이 함께 구성되었는지 등등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있었던 것 같다.


퇴직 사유는 복합적이고 파생적이다. 하나의 문제해결만으로 Retention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회사의 문제만으로 퇴직을 하는 것도 아니다.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경우, 당사자의 가치에 맞는 회사가 나타난 경우 등 퇴사이유는 다양하게 있으며 이미 마음을 결정하고 이상징후를 보이는 경우에는 보통 잡기 어려운 상황까지 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전 회사는 퇴사에 대한 수용하기 보다는 일단은 방어를 해보고 그래도 소용없다면 조용히 처리하려는 입장이 강했던 것 같다. 퇴사인원이 다른 동료에게 끼치는 영향을 걱정하고 리스크가 없이 퇴사를 시키는 것에 집중했다. 오프보딩에 소극적인 회사의 문화는 개인들의 퇴사 시 행동에도 제약을 주었다. 특히 HR이었던 나는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지 못하고 조용히 떠나게 되었다.



2. 퇴직자에 대한 축하와 응원

새롭게 이직한 회사는 업종이 특별한 회사였다. 직무도 특별하여 유사한 직무 경험자가 많지 않았고 업계 인재 Pool이 좁은 편이었다. 따라서 회사의 퇴사자들은 향후에 커리어를 쌓은 후 다시 우리 회사에서 근무를 하면 좋을 타겟 인재에 해당했다. 그래서 회사의 오프보딩은 세가지 목적을 갖고 진행했다.


1) 퇴직 발생 시 퇴직절차에 문제가 없게끔 지원한다.

2) 퇴직사유와 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면밀히 청취한다.

3) 감사, 격려로 좋은 이별을 한다.


1)에서는 퇴직 시 필요한 업무절차, 반납해야 하는 물품, 퇴직 시점까지 사용가능한 연차, 복지, 이후 퇴직금에 대한 안내를 한다. 내부직원들에게는 인수인계가 원활하게 진행하여 인원이 빠지는 상황에도 안정감을 갖도록 하고 퇴사직원은 불안을 느끼지 않고 원활하게 퇴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법적으로는 한달 전에 퇴사자가 퇴직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려야 하나, 이를 모르고 급하게 퇴직을 요청하는 분들도 있다. 이럴 경우 현업의 인수인계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현업, 퇴사예정자와 협의하기도 한다.


2) 퇴직사유와 회사가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을 청취한다. 퇴직면담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인터뷰를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앞에서 말한 퇴직 절차를 자세하게 안내하면서 퇴직을 지원해주는 역할임을 주지시켰다.

본격적인 인터뷰 전에 먼저 면담지를 작성하게 했다. 면담지는 퇴직사유 체크와 가장 불만스러웠던 일, 좋았던 일,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등을 기재하게 하였다. 복합적인 퇴직사유를 조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였다. 면담지는 사전에 작성하지 않고 같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작성을 부탁했다. 작성 시간 동안 대기하는 것이 뻘쭘하긴 한데, 이런 식으로 면담을 하면 퇴사자들이 면담을 더 적극적으로 응해주었다.

면담서를 작성해달라고 하면 거부하고 빠르게 마무리하고 싶어하는 유형, 대충 작성하고 면담을 진행하는 유형, 자세하게 작성해주고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해주는 유형 등으로 나누어졌다.

보통 회사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있거나 숨기는 것이 있을 경우 전자에 가깝고 회사에 애정이 있거나, 인터뷰어와 가까울 수록 후자에 가깝다. 퇴사자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을 때는 간단하게 마무리해도 된다. 말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HR 내부적으로만 파악하겠다는 점, 구성원이나 회사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말씀주시라는 표현 정도로 가볍게 설득을 해보는 것도 좋다.

이렇게 면담을 진행하면 회사, 조직의 문제점, 특정 인원의 리더십, 조직문화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면담지 옆에 인터뷰어가 내용을 정리할 수 있는 서술란을 만들었는데 이를 퇴직발령에 자료로 포함하여 HR과 대표이사님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기재한다고 하여도 사실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다만 앞으로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문제로 계속하여 주시하고 기록을 누적했다.


3)은 마무리로 먼저 그동안의 성과들에 대하여 HR 대표로 감사함을 전달했다. 앞으로도 다른 회사에서도 잘 해내실 것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커리어도 응원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우리 회사도 앞으로 더욱 매력적인 회사가 될 테니 이후에도 관심을 갖고 지켜 봐주었으면 하고 혹 또 같이 업무를 하는 때도 기다리겠다고 전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지금의 회사에서 마침표를 찍는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간혹 회사에 고마움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회사란 입사 전의 본인과 후의 본인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레벨업해준 곳, 내 가정의 대소사를 챙겨준 곳,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 준 곳이었다.



3. 차별화된 오프보딩 케이스

최근 오프보딩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많은 회사들이 퇴사자와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차별화된 오프보딩을 보여주고 있는 곳들이 있다.

넷플릭스의 오프보딩이 유명하다. 퇴사자 부검메일을 보내는 것인데 부검이라는 단어는 Postmortem을 직역한 것으로 보이는데 부검이라는 단어가 다소 부정적이라 퇴직 검토, 점검, 분석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넷플릭스는 Postmortem을 퇴사자에 한정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Postmortem 문화가 있고 그 문화에 따라 퇴사자의 오프보딩에도 접목하고 있다는 것이 더 옳은 설명인 것 같다.

Postmortem은 시스템 오류, 프로젝트, 실패, 이슈발생 시 해당 상황을 기록하고 공유하여 전 구성원이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경우 더욱 나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이다.

퇴사자 오프보딩에서도 퇴사자가 퇴사하는 이유와 조직과 개인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정리한다. 메일은 팀리더, 퇴사자, HR매니저가 협의하여 작성한다. 작성 내용은 아래 그림과 같이 퇴사 이유, 회사에서 배운 것, 회사에 아쉬운 점, 계획, 넷플릭스의 입장을 작성하여 과거와 현재 동료 직원들에게 발송한다.

(Reference : https://www.ttimes.co.kr/article/2020022418097763993)



회사에서는 직원의 퇴사를 투명하게 공유함으로써 직원들이 회사를 신뢰하게 되고, 회사나 팀에서 개선해야할 과제들을 논의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퇴사자에 대한 존중은 물론이고 동료의 퇴사를 남은 직원들과 함께 넷플릭스의 문화를 다시 한번 가다듬고 조율하는 과정으로 진화시킨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돋보인다.


컨설팅 회사의 경우에는 퇴사한 직원들을 대학 동문처럼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퇴직 이후에도 직무와 관련된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의 업무를 지원하여 상호 도움이 되는 관계를 유지한다. 과거의 직원이 미래에는 고객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회사에서도 규모나 상황에 따라서 활용이 가능해 보인다.


2021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핫한 이슈가 하나 있었다. 바로 컴퓨존이라는 회사에서 코로나 시기에 퇴사한지 11년이 된 직원에게 한우 선물 세트를 보낸 것이다. 처음에 18명있던 직원이 500명이 넘으며 연 매출 1조원을 달성하였고 그것은 과거에 같이 근무하였던 직원들 노고가 자양분이 되었다며 감사의 선물을 전달한 것이다. 11년이 지나서 회사가 성장했을 때 과거 직원들을 생각하였다는 점도 대단하지만 특히 모두가 힘들었던 코로나 시기에 이러한 결정을 했다는 점도 놀랍다.

이러한 과정은 퇴사한 직원에게도 감동스럽겠지만 남은 직원들에게도 회사가 직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외부적으로도 회사 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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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오프보딩을 해야하는 이유는 회사에 이득 때문이기도 하나, 더욱 넓게 보면 함께 삶을 채워나갔던 관계에서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직원들의 인생의 반은 회사로 채워지고 반대로 회사도 직원들의 성과와 경험들로 채워져 성장하기 때문이다.

마더 테레사는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당신과 헤어질 때 더 나아지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라’라는 말을 남겼다. 그것은 비단 사람간 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회사와 직원 간에도 통용될 수 있다.

우리는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소중했던 곳에서의 마무리를 짓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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