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임원 두 분이 퇴임을 했다.
한 분은 대표님이시고 한 분은 우리 본부의 본부장님이셨다.
별도의 퇴임식은 없었고 대표님은 전사 메일과 직원들과 한명 한명 인사를 하고 나가셨고,
본부장님은 우리 본부가 있는 채널에 멋진 문구로 이별 인사를 하고 쿨하게 떠나셨다.
두 분이 떠나가시는 방식은 달랐지만 그것은 남은 사람들에게 가볍지 않았다.
무엇인지 모를 아쉬움이 잔향처럼 남아 다시 업무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임원 분들이 떠나고 팀장님과 잠시 산책을 나갔다. 팀장님은 대표님이 직원들과 한명 한명 인사를 할 때 울컥하셨다고 했다.
물론 퇴임은 이별을 전제로 하기에 어느 정도의 멜랑꼴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감정표현을 자제하던 팀장님 감정의 벽은 어떠한 부분에서 흔들리게 되었을까?
사회생활 초년 시절, 나는 임원에 대한 반항심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다. 임원들은 구성원을 존중하지 않고.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착취하는 인물들이며 정치에만 능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분들이 있기도 했다.
내가 경험한 임원 중 한 명은 직원들과 걷기 행사 중 비가 오자 나의 우산을 빼앗듯이 가져가 회장님과 함께 쓰며 보필을 했다. 거기까지는 이해하지만 식사 장소에 도착하니 내 우산은 땅바닥에 내동댕이 처져있었다.
또 한번은 곧 퇴근시간인 18시에 직원들을 불러 채용포스터 디자인은 mm단위로 조정했다. 나뿐만 아니라, 내 부탁으로 본인업무가 아님에도 도와준 디자이너까지 저녁 8시까지 그렇게 달라진 것 같지 않은 포스터를 붙잡고 있어야했다.
이런 경험들을 하니 임원에 대하여 좋은 감정이 생길 리 없었다. 물론 나의 감정따위는 임원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뒤로 몇 년 사회생활을 쌓으면서 임원들이 다른 관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임원들은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일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자신이 맡은 분야에 대하여 집착으로 느낄 정도로 집요했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을 갖고 있었다.
30대 초반의 나보다 회의시간에 몰입하고 끝까지 파고들고는 했다. 그는 우리가 쓰는 단어들에 대하여 가령 ‘목표’, ‘목적’중 어떤 것으로 쓰는 것인지를 묻고는 했고, 우리가 의미 없이 쓰는 너무 높은 수준으로 작성된 목적들과 기획한 제도 사이의 균형들을 지적하곤 했다. 그때 당시에는 제도자체가 중요하지 왜 단어 하나, 하나에 그렇게 집착할까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이 기획의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임원들은 본인의 의사결정으로 인하여 파급될 영향력들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있었다. 우리가 가볍게 시행하려는 제도도 그 이후에 파급될 영향에 대하여 확신이 없을 경우에는 승인해주지 않았다. 책임감과 부담감 속에 있는 한 인간을 바라보니 그 까탈스러운 성격도 마냥 나빠 보이지 않았다.
직원이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 비율은 1%가 안된다. 임원 분들은 그 희박한 확률을 뚫어내고 임원이 되었다. 설령, 인간적인 부분에서 실망스럽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부분에서든 인정할만한 능력 요소들이 보였다.
스포츠에서도 수많은 경쟁을 통하여 챔피언이 되는 것처럼 직장생활을 비유하면 임원은 직장인들의 챔피언일 것이다. 챔피언은 강력한 파워를 갖고 회사에 다양한 영향력을 선사한다. 사내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부와 명예를 손에 넣는다. 부와 명예가 챔피언의 스포트라이트라면 임원이 느끼는 고독감, 두려움은 챔피언의 훈련과 감량 같은 것이다. 부와 명예의 즐거움만큼이나 훈련과 감량의 괴로움을 감당해야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결국 챔피언은 내려오게 된다. 결국에 언젠가는 마주하게 되는 내리막길의 쓸쓸함과 맞닿아 있다. 그동안의 노력, 성공, 고독감, 책임감, 두려움 등등으로 뒤섞여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내려놓고 내려온다.
오래도록 뒤섞인 역사와 감정의 응어리들 속에서 멋진 마무리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만족감을 갖고 떠나는 임원은 많지 않았다. 모두 아쉬움을 표현했으며 그동안 관리자로서 했던 냉철한 비판들에 대하여 미안함을 갖고 있었다. 섭섭함은 숨기고 시원함 만을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후에 찾아오는 고요 속에서 슬픔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몇 년 전 공무원 생활을 30년 넘게 하신 장인어른의 퇴임식을 갔었다.
온 가족들이 함께 가서 꽃을 전달하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소회를 짧게 들었다. 퇴임식이 마무리된 후,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청사를 떠날 때, 퇴임식이 진행된 4층부터 1층까지 모든 분들이 도열하여 끝까지 박수를 쳐주었다. 4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시간이 5분 정도 걸릴까?
짧은 시간이지만 장인어른에게는 30년의 파노라마가 지나갔을 것이다. 눈을 붉히며 축하 박수를 치는 후배, 자주 싸웠지만 때로는 합심도 했던 동료, 공로를 인정받아 포상을 받았던 일, 인테리어를 새로 하기 전 청사의 모습 등등
장인어른은 애써 담담해하시는 듯했으나, 나는 짧은 5분 동안 들려오는 환호성, 인사말, 박수소리에 등 뒤에서 목까지 감동이 소름의 형태로 삐져올라왔다.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한 직장인에게 이보다 더 명예로운 장면은 없으리라. 나도 직장의 마무리에 그러한 명예로운 장면을 한 번쯤 경험할 수 있기를 꿈꾸게 되었다.
팀장님의 울컥함도 치열한 시간과 회한의 끝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가까운 미래에 명예로운 마무리를 하고 싶은 꿈이 되새김질된 것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