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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미 May 29. 2024

00년생 사이 90년대생 1

새 학교에서 친구를 사귈 생각은 없었다. 이미 16년의 학교 생활로 인생의 친구라고 불릴만한 관계는 , 중, 고, 대학교 별로 있었고, 새로운 관계보다는 오래된 관계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00년생들과는 딱 동기 정도의 관계만 유지할 작정이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나누다가 졸업 후에 '아, 그 나이 많은 언니가 있었지.' 정도의 인상만 남기를 바랐다.



동기들과 처음 만날 수 있는 OT도 안갔다. 난 그때 호캉스를 즐기고 있었다. 학교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었는데, 선배들의 학교 생활 꿀팁도 듣고 친구들도 사귈 수 있는 기회인데 정말 안 올 것이냐고 물었다. 귀여운 조언에 스무살의 기억이 떠올라 대학에 입학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00년생들은 귀여웠다. 하지만 뭔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졌다. 이게 바로 내 윗세대가 MZ인 나를 볼 때 느끼는 것일까?!


내가 동기들과 지내며 느낀 것이 크게 두 가지인데, 일단 이 아이들은 받는 것을 싫어한다. 정확히는 친하지 않은 관계에서 그게 물건이든 도움이든 간에 조건없이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수의대학은 일 년에 한 번 '전국수의학도축전(전수축)' 이라는 행사가 있고, 매 년 전수축을 주최하는 학교가 달라진다. 내가 신입생이였던 해는 서울에서 전수축이 열렸고, 동기 중에 서울에 사는 사람이 내가 유일했기 때문에 전수축 때문에 서울에 놀러온 동기들을 데리고 한강을 간 적이 있다.


엄마도 친구들 놀러왔으니 밥 정도는 사라고 했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밥을 샀는데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들이었다. 돌려줘야 해서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가 그정도는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해? 라는 듯한 부담스러움이었다. 고마워하길 바란 건 아니지만 이 반응을 바란 것도 아니라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이 아이들은 사소한 부탁조차 하는 것도 꺼려했다. 그게 아쉬운 소리라도 되는 것마냥 별거 아니라 생각되는 일조차 마치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듯 입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건 상대방에게도 적용되어 누군가의 작은 부탁도 그에 합당한 이득이 있을때나 들어주는 듯했다. 나도 점차 이들에게 기대하지 않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 받지도 주지도 않는 관계가 되었다.



또 이들은 튀는 것을 싫어한다. 그동안의 학교생활을 되돌아보면 재밌거나 끼있는 친구들, 소위 분위기 메이커들이 항상 존재했다. 너무 오래전 얘기지만 미러 버전도 없던 UCC가 유행하던 그 시절, 한 친구가 교실 앞에서 원더걸스의 텔미 춤을 익혀와서 뽐냈던 적도 있다.  첫 번째 대학을 다닐 때도 의견을 표출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불합리함에 의문을 제기할 땐 적절한 예의를 갖추며 합당한 비난을 했고,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함께 의견을 나누곤 했다.


6년 동안 서로가 서로의 가십거리가 되는 특수한 상황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이들의 특성인 것인지는 확실하게 구분이 되진 않지만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눈에 띄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수업시간은 적막이 흐르다시피 고요했고, 불합리한 일임이 분명한데도 누구하나 자기한테 피해가 올까 문제를 제기하는 이조차 없었다. 어떤 일이 정말 이해가 안가서 다른 동기에게 함께 이의제기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었는데,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사람이 본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답만 돌아왔다. 이 커뮤니티가 잘못된 곳인지, 다들 자기 이익만 신경쓰는데 나도 굳이 피해를 입어가며 누군가를 위하고 싶진 않았고, 그렇게 다같이 고여갔다.



이들과는 날씨나 수업에 관한 이야기들, 소위 스몰토크만 하는 관계가 되었다. 언제 한 번 밥이나 먹자 라는 빈말조차 하지 않는 나로썬 진빠지는 나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마음은 통하는 법이다. 본과 3학년 11월에 졸업여행을 갈 때였다. 고작 42명의 인원 중 13명만이 졸업여행에 간다고 공지방에서 투표를 했다.  13명도 과에 어떤 행사가 있을 때 늘 참여하는 같은 동아리 무리들이었다. 그들도 이번만큼은 졸업 여행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느꼈는지 나머지 29명과 처음 말을 섞으며 졸업 여행의 의미를 설득시켰다. 그들의 설득에 23명이 넘어갔고 그 중엔 나도 포함되었다.


이 졸업여행은 정말 특이했다. 단체 숙소, 단체 이동이 아닌 각자 4인 파티를 꾸려 렌트카로 자유여행을 하고, 딱 한 번의 저녁식사 자리만 동기들과 함께 먹으면 되는 것이다. 이마저도 우리에겐 0에서 1로 나아가는 것 같은 대단한 한 발자국 이었다.


나는 딱히 몰려다니는 무리가 없어서 수업시간 옆에 앉는 세 아이들에게 같이 가자는 제안을 했고, 그렇게 파티가 형성되었다. 동문시장 같은 관광지를 다니고, 카트도 타고, 고기국수를 먹는 등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제주 졸업여행이었지만 항상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 별거 없는 사소함이다. 이동시간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결국 우리가 처한 상황은 서로가 가장 깊게 이해할 수 있음을 알았다. 


사실 마음을 닫고 있던 건 나였는지도 모른다. 더이상 친구가 필요없다는 오만함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내 상황이 한 순간에 천국으로도, 지옥으로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나의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그 날의 한마디 농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내가 만들어낸 편견으로 외면하고 있었다.



백날천날 서울에서 이젠 과장급을 바라보는 친구들에게 배경 설명해가며 진로고민, 학교생활에 대해 하소연해봤자 서로 허공을 맴도는 그런 위로와 격려만 하다가 끝나곤했다. 같은 상황을 공유한다는 것은 한 단어를 내뱉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리액션을 기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6년 간 각자의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자취를 한다는 것, 매 번 지겨운 시험을 견뎌내는 것, 서로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 정답이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들은 전우애가 싹트기에 충분하다.


뜻하지 않게 인생의 친구가 또 생겼다. 말에 어미를 붙이지 않고 말하는 친구들이지만 덕분에 시덥잖은 농담을 나누며 학교생활을 잘 버티고 있다. 이 친구들과 쌓아가는 추억들이, 미래의 약속들이 기대된다.



점심 드실?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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