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회차때의 나는 1회차 대학 시절보단 좀 더 크고, 성숙해질 줄 알았다.
시간을 잘 활용해서 학점 관리도 하고, 코딩, 스페인어 같은 새로운 것도 배우고, 어린 친구들에게 관용도 베풀며 둥글둥글 조금은 어른스러워질 줄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 성숙함은 성장을 멈추는 것인지, 나이가 늘면서 지식은 늘어나지만 어린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철없는 소리를 하는 것은 여전했다. 여전히 누군가가 미워지기도 하고, 누군가와 언쟁을 하기도 하고, 마음 속엔 불평 불만이 가득해서 성숙해졌다고 느낀 적이 없다.
그나마 달라진 게 있다면 이십대 초반에 썸남의 문자를 술자리에서 다같이 분석하며 이 문자가 나에게 관심이 있어서 보낸 것인지 아닌지가 인생 최대 고민이었다면, 요즘엔 청약을 어디에 넣을지, 결혼하는데 드는 비용은 얼마인지 등 이야기의 주제가 바꼈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고, 여전히 새로운 일을 마주할 땐 허둥대고, 여전히 후회도 하는데, 주변에서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일까?
어른이 되는 건 미뤄두고, 00년생 동기들과 함께 그저 성인의 역할을 하자면, 대학 생활 경험자로서 꿀강으로 소문난 교양으로만 시간표 채우기, 공강 이틀 만들어서 주 3회 학교가기, 아무도 공부에 신경쓰지 않는 예과 때 공부 조금 해서 장학금 받기 등 2회차 대학 생활은 수월했다. 하지만 6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주변 친구들은 직업적으로 인정받으며 승진하고, 결혼을 하며 조금 더 성숙해지고, 심지어 부모가 되어 더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는 등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며 정신없이 보냈지만, 나는 흐를 듯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서 현재에 멈춰있는 것 같은 영원한 대학생활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삼십 대에도 학생 신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현재 가장 큰 고민이 중간고사라는 것은 약간의 좋은 점이고, 몇 년이 지나도 동기 중에 나이가 가장 많아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 세대 차이 난다며 연장자 취급받는 것은 그닥 유쾌하지는 않은 일이고,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해 엄마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한다는 것은 배부른 소리인 것 같으면서도 늘 내가 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졸업 요건으로 동물병원 실습 기간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본과 3학년 겨울 방학 때 친구가 개원한 병원에서 실습을 한 적이 있다. 1회차 대학 친구들은 학력도 좋고 다들 인생을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그들의 노력은 당연히 누군가가 알아봐줘야만 하고, 사회에서 다들 인정받고,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내가 공부를 더 오래 하는 것에 대해서 조언도 많이 구했고, 정말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친구들이라 내가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한다는 것에 이상함을 느낄 틈도 없었다. 오히려 철없는 고민을 하면서 어른이 되는 것을 유예할 수 있다는 것은 약간의 행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들이 미리 가본 길이기 때문에, 훌륭한 사회 선배들로 큰 그들에게서 자료도 받을 수 있고, 실질적인 조언도 들을 수 있고, 게다가 지인 찬스로 다른 동물 병원 컨택 없이 속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실습까지 할 수 있다니 정말 좋은 혜택이었다. 친구가 겪은 시행착오도 가감없이 들을 수 있고, 궁금한 건 거리낌없이 질문할 수도 있고, 실습 기간동안 실전에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고, 너무나 고마웠다.
실습을 마치고, 미래의 밥 한 끼를 기약하고 학교로 내려오는데, 친구가 실습 기간동안 고생했고, 내려 가는길 주유비에 보태라며 나름의 실습비를 주었다.
묘했다.
이 묘한 감정이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일단 첫 번째는 감동과 감사의 마음이었다. 실습 기간동안, 아직 학생으로서 지켜보는 것 밖에 하지 못해서 진료 동선에 방해될까봐 이리저리 잘 피해다니던 나를 민망하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역할을 주며 챙겨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이렇게까지 더 신경써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다음 감정은 한 단어로 표현하지는 못하겠다. 친구가 너무 커버렸다고 생각했나? 훌륭한 어른이 된 친구가 대견했나? 아니면 그의 어른스러움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나?
아마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참 인디밴드가 유행하던 이십 대 초반 그 시절, 함께 밴드동아리에서 긴 연습시간 동안 누가누가 헛소리를 잘하나 겨루던 이 사람들이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그리고 나는 언제 클까.
언제 얼마만큼 어른이 될 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벌어서 내 돈을 쓰는 날이 오면 그땐 조금 느낄 것 같다.
이제는 정말 돈 벌고 싶다.
* 사진은 실습동안 함께 출근하던 방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