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함께 사는 서울에서의 삶은 이십대 후반이 되어서도 외박은 커녕 통금에 시달리는 삶이었다.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내 상황이 이러한 통제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험생활을 하면서 집에 있는 기간이 길어지다보니 엄마랑은 타이머를 재면 딱 5분까지만 사이가 좋았다. 경쟁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민사고 출신 사촌의 취직 소식에 엄마도 초조해질때쯤, 다행히도 엄마가 그나마 나이든 딸이 공부를 다시 하는 명분을 그럴듯하게 말할 수라도 있게 수의대에 합격했다.
서울에서 당일치기는 힘든 정도의 거리에 있는 대학교에 지원서를 제출했고, 그렇게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늦깍이 자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엄마의 경제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 말뿐인 독립이긴 했지만, 그 동안 엄마의 일부인 것처럼 살았는데 이제 나도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대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티비로 보고, 친구들의 자취방을 놀러갈 때만 해도 몰랐는데, 본인의 취향을 반영해서 집을 꾸민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고 부지런한 일이었다. 일단 내가 집에서 움직이면 모든 것이 빨래, 청소, 설거지 중의 하나가 된다. 그동안 엄마가 부지런히 집을 가꾸었던 것들이 새삼 대단해보였다. 그리고 왜그렇게 내 머리카락 떨어지는 것, 옷을 아무데나 벗어놓는 것,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는 것에 잔소리하는지도 몸소 느꼈다.
집안일은 가르쳐주는 학원도 없어서 수건은 중성세제로 빨아야 한다는 것, 비오는 날엔 보일러 틀어서 방을 조금 건조하게 만들어야 이런 원룸에서 곰팡이가 안핀다는 것(가습기 따위 자취생에겐 사치), 커튼까지 달기엔 부담스러워서 쏟아지는 햇빛은 창문에 호일을 붙여서 가릴 수 있다는 것 등을 인터넷, 학교 동기들, 건물 주인 아주머니로부터 조금씩 배워나갔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이런 것 또한 내 스스로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또 한 가지 알게된 것은 내가 집순이었다는 사실이다. 서울에선 평일 저녁에도, 주말에도 어떻게든 약속을 잡고 바깥으로만 나돌아서 난 역시 밖순이구나 싶었는데, ‘혼자 있는 집’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휴일에 청소기 소리로 방해받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중간에 색이 다른 벽지가 붙어있는 천장을 질리도록 바라보기, 밥먹기 애매한 시간이지만 내가 먹고 싶은 시간에 가족들과 시간 맞추지 않고 밥 먹기, 전화하고 싶을 때 누가 들을까 눈치 안보고 전화하기 등 이제서야 집이 온전한 휴식의 공간이 되었다.
혼자 산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 여행에서 친구가 비행기를 놓쳐서 잠깐 혼자서 여행을 해야했을 때 그 시간만큼 느리고, 재미없는 시간도 없었다. 보수적인 부모님께서도 나를 키우다가 다음 보호자에게 나를 넘겨야 된다는 생각을 하셨으니(그게 이렇게 늦어질 줄은 상상도 못하셨겠지만) 자취는 꿈꿔본 적도 없다.
우연히 얻게 된 이 공간은 오직 나만의 것, 나만의 순간들로 채워갈 수 있다. 어떤 순간만큼은 나 혼자서 견뎌야만 한다는 것도 알게되고, 나의 새로운 부분도 알게 되며 나날이 단단해지고 있다. 혼잣말은 늘어가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니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도 더 잘 지내게 되었다.
동향이어서 여름이면 6시부터 해가 떠서 늦잠도 못자고, 창문이 한쪽 벽면에만 있어서 바람이 양방향으로 통하지 않아 5월부터 더운 이 집이 좋다. 여름이 되면 곰팡이와의 전쟁이고, 봄가을엔 창틀에 끼는 먼지와의 전쟁이지만, 선풍기를 언제 꺼내서 여름 준비를 할 지, 떨어져가는 휴지는 언제 주문할 지, 기분 전환 겸 새로 산 예쁜 조명은 어디에 둘 지 같은 사소한 결정들로 만들어가는 내가 좋다.
사진: 우리집 암막호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