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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미 Apr 10. 2024

프롤로그. LA여행이 즐겁지가 않았다.

두 번째 척척학사가 되기 전 마지막 여유로운 겨울방학을 맞이했다. 다음 겨울방학은 국가고시 준비로 방학같지 않지 않은 방학을 보낼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이번 겨울만큼은 오롯이 쉬기로 결정했다. 대학을 두 번째 다니는 만큼, 이 방학은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두 달의 온전한 나의 시간임을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예비 본과 4학년들처럼 유명한 동물병원에서 실습을 하지도 않고, 실험실에 들어가 대학원 상담을 받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한 것이라곤 학기 중엔 상상도 못할 하루종일 책읽기, 하루 세 시간 방울이 산책, 폴댄스 배우기 등이었다.


그 중엔  LA 여행도 포함되어 있었다. 파란하늘, 야자수, 활기찬 사람들. 늘 꿈꿔왔던 라라랜드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여행 2주 전까지 아무 계획도 세우질 않았다. 그저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비행기를 탔다.


10시간이 넘는 비행 후, 우버를 타고 LA 다운타운에 들어서는 순간 여기도 그저 사람사는 곳이구나 싶었다.


코로나 이후에 도시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인지 내 눈에 띄는 건 건물의 임차인을 구하는 임대 포스터, 낮에도 약에 취한 사람들, 관광지의 홈리스들, 베벌리힐스와 다른 동네와의 빈부 격차였다. 아주 나쁜 여행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낭만으로 가득찬 여행도 아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내에서는 잠도 안오고 시간은 멈춰있는 듯 흐르지 않았다.


LA에서 돌아오니 잠시 멈춰있었던 생각들이 또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곳에 남아있어야 할 지, 시험은 언제부터 준비할 것인지, 어떤 기준으로 일할 병원을 골라야 할지, 이게 좋은 선택인 것인지 등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고, 그 때 가서 결정해도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사실 걱정을 계속 하는 것은 나만 내 상황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다른 사람의 시선까지 신경쓰기 때문일 것이다. 성장에 집착하고, 누군가가 알아봐줘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인정받는다는 뜻은 기준을 세워두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한다는 의미이다. 나에겐 늘 ‘다른 사람보다 잘했어’라는 말이 필요했다. 안타깝게도 주변인들의 따뜻한 ‘잘하고 있어‘라는 격려가 응원이 되지 않았다.


나만의 그럴듯해 보이는 기준을 세워놓고, 그 경계 안으로 들어가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 경계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비교하고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이 형체 없는 불안함은 나의 6년을 언제나 덮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라지만 뒤처지지 않았을까 늘 전전긍긍 했다.


첫 번째 대학을 다닐 때, 이십 대의 싱그러움이 대학이라는 자유로움와 만나 빛을 내는 것을 맘껏 느끼며, 이 시절이 좋은 이유가 대학을 다니기 때문인 줄 알고, 친구와 대학을 10년쯤은 다녔으면 좋겠다고 농담삼아 말했던 적이 있다. 그것이 이렇게 실현될 줄은 몰랐다.


드디어 10년의 대학 생활을 채웠고,

이제는 정말 졸업하고 싶다.


두 번째 척척학사 D-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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