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여정 day1 - 추억
내 기억의 가장 첫 번째 추억이 뭘까.. 곰곰이 하나 둘 장면을 넘겨 본다. 그러다 문득, 할머니 댁에서 큰아버지와 아빠가 똑같은 모습으로 낮잠을 주무시는 걸 봤던 기억이 났다.
부산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매년 추석이면 부산 할머니댁으로 온 가족이 내려가고는 했었다. 경부선이 확장되기 전에는 12시간 넘게 막히고 막히는 길을 타고 가야 도착할 때도 많았다. 새벽 4-5시 즈음 출발해서, 만남의 광장을 지나 천안즈음 가면 막히기 시작해서, 좀 자다 깨다 하다 보면 대전이고, 어둑어둑 해지면 김천, 구미를 지나 대구쯤 가면, 아, 이제 곧 할머니 댁이구나.. 싶고, 밤이 되어 한적한 부산 시내를 지나, 기나긴 구덕터널을 지나면 대신동 언덕의 할머니 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언덕길에 주차를 하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 녹이 슨 청록 미색 대문 위의 갈색 벨을 누르고, 할머니~ 하고 부르면, 우리 강아지 왔나~ 하며, 들뜬 목소리로 반갑게 할머니가 달려 나오시던 모습이 그려진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9시 뉴스가 끝날 즈음이면 주무시고는 했는데, 우리가 내려오는 날이면, 11시 12시까지도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 강아지 왔냐고, 엉덩이를 두들겨 주시며 꼬옥 안아주시던 할머니 품이 생각이 난다.
추석 전날은 새벽부터 시끌벅적했다. 장손이신 할아버지 댁에 많이들 찾아오셔서, 음식도 많이 해야 했고, 이리저리 챙길 일도 많아서, 아침잠이 많은 나도 달그닥 달그닥 하는 소리에 일어나고는 했던 것 같다. 명절 연휴가 길어서 좀 더 일찍 내려가는 날에는 할머니 손을 잡고 내복을 사러 가기도 하고, 목욕도 가고, 아빠가 좋아하시는 추어탕거리를 사러 자갈치시장에도 다녀오고는 했다. 어릴 때의 나는 비린 음식을 잘 못 먹어서 수산 시장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가는 걸 좋아하셔서 종종 따라나서고는 했던 것 같다.
할머니와 시장 가서 이것저것 사 오고 나면, 운전하다 지친 큰아빠와 아빠가 똑같은 포즈로 작은 방에서 주무시고 계셨는데, 엄마는 어쩜 저렇게 형제 둘이 닮았냐며 늘 신기해하셨고, 할머니는 먼저 떠난 삼촌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시기도 했다.
어릴 때는 차도 잘 못 타서, 어디 멀리 가는 것도 너무 싫었지만, 나를 기다리시는 할머니를 생각하며 꾹 참고 갔던 것도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소하게 할머니와 여기저기 다니던 게 좋은 기억으로 남기도 했던 것 같다.
한 번씩 여름휴가 때, 할머니 댁에 가기도 했었는데, 그 때면 꼭 성지곡 유원지에 가서 야외 수영장에서 하루종일 수영을 했었다. 할머니, 엄마, 아빠는 밖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쉬시거나, 이야기를 나누셨고, 나는 정말 아침부터 밤에 수영장이 끝날 때까지, 물개처럼 물에서 나오지를 않았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물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가끔 초읍에 산책하러 갔을 때, 이제는 공원이 되어버린 수영장 터를 보면서, 수영장 있을 때도 참 좋았는데 하고 종종 생각했던 것 같다.
늘 나를 귀여워해주시고, 이뻐해 주시던 할머니가 많이 그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