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디자이너는 언제 업무 R&R이 명확해질까?
스타트업에 다니는 디자이너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일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회사의 비즈니스 특성에 따라 마케팅이 주가 되는 회사의 디자이너는 컨텐츠 위주의 그래픽 디자인 업무가 주가 될 것이고,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라면 UI/UX를 기반으로 한 프로덕트 디자인 업무가 주가 될 겁니다.
또, 스타트업은 규모나 단계에 따라 1인 디자이너로 근무할 수도 있고, 파트 혹은 팀에 소속된 디자이너로 근무할 수도 있습니다. 후자인 경우라면, 좀 더 세분화된 디자인 롤 범위 안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겠지만 전자인 경우라면, A~Z까지 다 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넓고 얕게, 그리고 다양하게 일 하는 환경일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니어 디자이너라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디자인 직무를 수행하면서 일하는 것이 커리어 성장에 도움이 될 지 이번 글을 통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겁니다.
회사의 규모와 비즈니스 특성, 서비스 등에 따라 디자이너의 필요 유무는 상이합니다. 디자인 부서가 가진 힘이 큰 회사도 있지만, 어떤 회사는 디자인을 외주로 쓰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대표적으로 배민이나, 토스는 디자인의 힘이 막강하죠. 하지만, 배민이나 토스는 지금의 단계에서 스타트업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배민은 4조 이상을 유치하고 M&A라운드에 있고, 토스는 1조 이상을 유치하고 현재 시리즈G 라운드에 있는, 이미 많이 성장해버린 대기업이죠.
해당 에세이에서는 스타트업의 투자 단계, 규모에 따른 디자인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엿볼수 있습니다. 시리즈 B 단계부터는 디자인 팀은 두 파트로 나뉠 수 있다고 하네요. 모든 회사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100억 이상을 유치하고 시리즈 B단계에 진입한 스타트업은 bx파트와 ui/ux파트로 디자인 직무를 분리한다고 합니다. bx파트에는 기업브랜딩과 서비스 브랜딩으로 세분화 될 수 있고요. 하지만, 모든 스타트업이 시리즈 B단계에 진입하고, 100억 이상의 투자 유치를 받았다고 해서 프로덕트 디자인 부서의 업무 R&R이 명확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팝업스토어 중개 플랫폼 비즈니스 스타트업인 스위트스팟은 시리즈A에서 총 60억원 규모의 투자유치를 했었고(2018년 8월), 초기에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위한 프로덕트 디자이너와 개발 조직을 10인 이상으로 구성했었습니다. 하지만 약 1년 후, 회사 경영 방향의 변화에 따른 경영진의 결정으로 플랫폼 비즈니스는 유지보수만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현재까지 오프라인 비즈니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와 개발조직은 모두 권고사직 대상이 되었고, 최소한의 개발 유지 보수는 외주 인력을 쓰고 있죠. 하지만,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위한 VMD디자인팀과 마케팅팀의 디자인 인력은 별도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은 빠르게 도전하고 실패하고, 회사의 비즈니스에 맞게 유연한 조직 구성을 해 나갑니다. 잔인하지만 시장 환경에 따라, 돈이 되지 않으면 과감한 결정을 하는 곳이 스타트업 입니다. 스타트업이라는 환경에서는 지금 프로덕트 디자이너(혹은 개발자, 더 나아가 모든 직무가 될 수 있어요.)가 필요한 회사라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필요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추가적인 예를 더 들면, 22년 11월 38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한 스픽이지랩스(서비스명 : 스픽) 한국 지사의 경우, 마케팅 디자이너 1인이 근무하고 있습니다.(23년 1월경 쓴 글이라 23년 12월 기준으로는 추가 채용이 되었네요) 마케팅 컨텐츠 디자인 제작을 메인 업무로 하고 있지만, 국내 홈페이지 개편도 최근에 진행했더군요. 다재다능하죠! 스픽 디자이너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보면, 스픽의 모든 디자인을 하고 있는 디자이너라는 소개와 함께 디자이너 분의 업무 일상을 볼 수 있습니다. (저의 대학 시절 룸메이트이자, 친한 동생인데, 열정적으로 오너십을 갖고 일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는 친구입니다!) 스픽의 업무환경을 살짝 엿보았을 때, 디자인 리소스에 부하가 걸리면, 외주를 검토하는 분위기인 것 같더라고요. 여하튼, 정리하자면 큰 투자를 유치 했다고 해서, 디자인의 직무 분리가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회사의 상황과 비즈니스 특성에 맞게 필수 인력을 구성하는 건 경영진의 경영방향과 의지에 따라 상이할 수 밖에 없어요.
- 첫 직장으로 스타트업은 어떨까 - 사회초년생 디자이너에게 스타트업이란
- 스타트업 1인 디자이너 대체 어디까지 해야 돼 - 1인 스타트업 디자이너의 업무범위
- 능동적 디자이너 -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스타트업 디자이너'로 검색만 해봐도, 위 링크의 글 처럼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에 대한 푸념들, 그리고 많은 것들을 요구하는 업무범위, 경험들을 공유하는 글들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하기 위한 이상적인 근무 환경은, 본인이 원하는 직무에 적합한 ‘부서 분리’가 되어있는 회사겠죠. 하지만,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기를 선택했다면, 부서 분리는 회사의 규모와 성장 상황, 비즈니스 특성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걸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건 디자이너에게만 국한되지 않아요.
'나는 UI디자이너니까 UI디자인만 할거야.' 라고 생각하신다면 스타트업에서 근무하시면 안돼요. 업무 R&R이 명확해졌다는 건, 스타트업의 단계를 벗어난 겁니다. 본인의 롤 안에서 업무하는 환경을 원한다고 하면, 그런 회사로 가는 게 맞습니다. 잔소리 같지만 이게 현실이에요. 그럼에도, 동료들이 서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업무 범위를 벗어남에도 함께 도우며 배려하는 것에 감사하며 일하고 있고, 함께 회사를 성장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시리즈의 투자단계를 거치고 체계적인 조직구성과 단단한 협업 프로세스를 갖춘 기업으로 키워 나가려고 하는 경영진들의 의지가 있는 회사라면 희망을 걸어볼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회사도 지금까지 위기없는 항해 속에 계속 단단해 지고 있고요. 잔소리와 변명을 아주 길게 써보았네요.
글을 마치며,
이 글은 올 해 1월, 22년도 디자인팀 업무 회고를 진행하면서 UI디자인에 대한 업무 비중이 줄어들고 이외 그래픽 디자인 작업물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과 채용을 통한 UIUX, 그래픽 디자인 업무의 분리에 대한 고민의 시점에서 작성을 했던 글입니다. 2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현재까지도 우리 회사의 디자인 팀은 추가 채용을 검토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회사의 조직의 규모와 상황에 맞는 조직구성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UIUX디자이너로서 스타트업에 몸담고 있는 후배를 위한 팀 환경 조성을 위해 최대한 기타 그래픽 작업물의 업무 할당을 줄이려고 노력한 한 해였습니다.
저도 처음 팀장이 되고, 뚝딱거리는 팀장으로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내가 하고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 회사에서의 기대와 역할, 업무에 대한 생각들을 조금은 구분 짓게 된 것 같다고 느낍니다. "제가 이런 것 까지 디자인 해야 하나요?"라는 물음은 저 또한 매니저 직급일 때 늘 해 왔던 물음이기에, 업무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게 변하기도 한다는 걸 말해주고 싶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