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지나는 자리마다 가장 선명한 현실을 살아간다.
“ 우리는 꿈을 꾼다.
깨어 있는 동안에도.
의식을 가진 모든 삶은,
결국 자기만의 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 칼 융
어제 꿈속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누군가를 바라봤고,
누군가와 이야기했으며,
나는 분명히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그 모든 것은 사라졌다.
이름도, 표정도, 말의 조각들도.
심지어 그들이 누구였는지 과연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는지 확신마저 희미해진다.
이상하다.
분명히 잘 알고 있던 이들이고
나도 그곳에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마치 꿈과 현실.
두 개의 삶을 살다가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은 ‘가짜’라고 믿었던 구분들이
시간이 흐르자 그 의미들조차 모호해지고
오직 '지금' 그리고 '여기'만이 남는 것처럼.
회사에서 벗어난 몇 주 동안
나는 ‘나’라는 사람의 테두리가
생각보다 훨씬 느슨했다는 것을 알아간다.
업무와 책임, 회의와 보고,
해야 할 일들이 나를 정의하던 시절은
이제는
내가 가장 낯설어하는 과거가 되었다.
지난 금요일 저녁.
회사에서 동료 두 명이 찾아왔다.
인수인계를 한번 제대로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내 현재 상황이
회사로 직접 나가기에는 무리라는 배려에서
그 귀한 시간에 멀리서 찾아와 준 것이다.
인수인계를 핑계로 그동안 근황도 나누고
오랜만에 누군가와 소통하는 기쁨을 누렸다.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간 듯한 시간이었다.
다만, 스스로 놀란 것은
지난 몇 주가 지나는 사이에
내가 맡고 있던 업무들이 아주 오랜 기억처럼 낯설게 느껴졌다는 것.
매일 하던 일들이
'마치 꿈속에서 했던 일들'처럼 생소했다.
그동안 밤잠을 설치고 괴로웠던 시간들이 무색하리만큼.
지금까지 내가 꿈을 꾼 건가?
요즘 나는 매일을 새로이 관찰한다.
익숙하지만 매일이 다른 풍경이다.
잠시 내려놓고 천천히 머무는 마음,
발길이 닿는 곳으로 하루를 옮겨두는 여유.
그러면서 삶의 감각들이 바뀌었고,
외부가 아닌 내부로 묻는 질문들이 많아졌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꿈꾸며 살아왔고,
지금은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회사에서는 할 일이 없는 날이 두려웠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밥값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했다.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만들어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지의 순간들이 두렵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정지의 순간은
결국 나라는 사람의
진짜 꿈이 지나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꾸었지만 기억나지 않는 꿈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과거의 일들처럼,
때로는 삶의 진실이라 믿었던 순간들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져 감정의 잔향만 남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이 순간을 잘 살아내기로 다짐한다. 언젠가는 꿈이 다시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꿈일 수 있지만
그 꿈 속에서 내 삶의 본질이
다시 말을 걸어올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