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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영 Oct 03. 2022

빨래를, 또 해야겠어요

#35

결혼 전에는 빨래가 그렇게 중요한 행위라는 걸 몰랐다. 빨래 바구니에만 넣어두면 깔끔하게 세탁된 옷이 반듯하게 접힌 채 늘 그랬듯 옷장에 채워져 있었다. 물론 엄마의 작품이었다. 코트나 점퍼를 세탁소에 맡기고 찾아오는 것도 언제나 엄마였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라 했던가. 엄마에게 별로 감사함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결혼 후 빨래는 현실이 됐다. 세탁기를 제때 돌리지 않아 마땅한 옷을 입지 못하기도 했고, 점점 줄어드는 속옷과 수건들을 보며 불안해한 적도 있었다. 방망이 들고 손빨래하는 것도 아니고, 버튼 몇 번만 누르면 세탁기를 돌릴 수 있는데 그 작업은 (적어도 나에겐) 상당한 부담을 동반한다. 다 된 빨래를 널고, 개는 건 또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식구가 하나 늘면서 빨래 양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고작 갓난아기 빨래가 얼마나 되겠나 싶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분유를 먹이고 침을 닦이는데 쓰는 손수건만 하루 10장은 족히 쓴다. 목욕용 수건이나 잠자리용 수건도 매일 나온다. 토한 분유가 묻은 옷은 적어도 두 번 갈아입혀야 한다. 저녁이 되면 빨랫감이 통을 하나 가득 채운다.

빽빽하게 널린 빨래를 보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든다

출산 전엔 일주일에 2~3번 정도 세탁기를 돌렸는데, 요즘은 하루에도 두 번 가동할 때가 종종 있다. 그 덕에 빨래 건조대는 매일 거실에 펼쳐져 있다. 빨래건조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특히 아이 빨래는 자연스럽게 말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늘 뼈다귀 같은 건조대를 세워둔다. 처음엔 눈에 꽤 거슬렸는데 매일 그 자리에 있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그냥 홈 인테리어 소품 같다.


늘어난 빨래 양만큼 나와 아내의 역할 분담도 확실해졌다. 아내는 세탁기를 돌리고, 다 마른 빨래를 개는 건 내가 주로 한다. 세탁을 마친 빨래를 건조대에 너는 건 사이좋게 함께 한다. 참고로 빨래 개기가 내 몫이 된 건, 내가 아내보다 훨씬 예쁘게 옷을 접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가 군대에서 익힌 '칼각' 스킬을 보고 '남자가 어쩜 그렇게 빨래를 잘 개느냐'며 감탄하곤 한다. 정작 결혼 전엔 엄마가 다 해줬는데... 스스로 찔린다.


세탁기에 넣기 애매한 빨랫감은 직접 손빨래한다. 세제를 묻히고 한참을 조물조물 하다보면 손가락 끝이 뻐근해진다. 이 역시도 예전엔 상상 못했던 일. 하지만 이젠 대신해 줄 사람이 없다. 아들의 빨래는 곧 나의 빨래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이가 그 옷을 못 입는다. 빨래라는 행위에 상당한 책임, 그리고 애정이 필요한 셈이다. 귀찮고 힘들지만 그래도 빨래는 빨려야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서른이 훌쩍 넘어서도 빨래를 온전히 엄마에게 맡긴 나는 참 철없는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의 빨래를 엄마는 묵묵히도 해주셨다. 감사하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든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생기면서, 난 엄마가 지난 수십 년간 집안에서 도맡아왔던 책임감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됐다. 빨래는 단순히 옷을 세탁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식,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 같다.


아, 오늘도 역시 빨래는 한가득이다. 귀찮고 힘든 건 매번 똑같지만 오늘은 이런 마음을 갖고 빨래를 하려고 한다. '빨래는 사랑이니, 이 또한 사랑하는 내 아이를 위해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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