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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영 Oct 07. 2022

분유와 헤어질 결심, 이유식(離乳食)

#36

'자기, 지금 뭐해?'

'응, 책 봐. XX이 이유식 준비할 것들 찾아보고 있어.'

얼마 전, 부엌 식탁에 앉아 책을 펼친 아내의 모습에 두 번 놀랐다.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 아내가 흡사 고시 공부하듯 집중한 것에 한 번, 늘 분유를 식사로 삼는 아들이 곧 '밥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말이다.


생후 만 5개월을 넘긴 아이는 속된 말로 '완분'(완전 분유만 먹는다는 뜻)을 해왔다. 처음 태어나 모유를 함께 먹던 두 달 정도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하루 총량 900ml 내외의 분유만 먹었다(물 조차도 안 마셨다). 최근엔 하루 4회, 한 번에 220~240ml 정도를 먹는다. 젖병에 가득 담긴 분유를 보면 어른인 내가 먹어도 배가 꽤 찰 것 같은 양 같았다.


보통 아이들은 6개월 정도쯤 이유식을 시작한다고 한다. 아들은 또래보다 키나 몸무게가 조금 큰 편이라 아내는 5개월이 채 되기도 전부터 서둘러 이유식 준비물을 갖추고 책이며 인터넷 카페를 보며 공부했다. '완분' 아이들의 몸집이 다소 큰 경향이 있어, 이유식을 통해 성장 속도를 또래와 맞춰주고 싶다는 이유였다.


아내는 '아기는 대략 6개월치 철분만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그 이후가 되면 소고기 같은 음식을 먹여 보충해줘야 한다' 같은 정보를 종종 내게 공유해줬다. 엄마에 비해 느슨한 아빠(나)의 정신 상태를 각성시키려는 경고음 같았다. 그럴 때면 난 '아, 그렇구나'라고 답하며 열심히 들어줬다.


아내는 야심 차게 계획표까지 만들어 부엌 한 편에 붙여뒀다. 처음 쌀미음으로 시작해 찹쌀, 청경채, 애호박 등등을 거쳐 고기와 생선 미음까지 이어지는 대략 6개월 코스의 나름 장기 계획이었다. 그걸 본 난 '과연 인간(아들)이 저 계획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우려를 느낌과 동시에, 열심히 준비해 준 아내에게 응원을 보냈다.

낯선 이유식의 습격에 당황한 아들, 오만상을 지으며 고개를 뒤로 젖혀 버렸다.

처음 이유식을 도전한 날. 아내는 미리 만들어 놓은 쌀미음을 데워 아이 앞에 앉았다. 후후 불어가며 넣은 숟가락, 하지만 아들은 낯선 질감에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단 한 번도 분유를 거절한 적 없던 아이였기에 아내와 나의 좌절은 컸다. '먹는 걸 마다하다니...' 이유식(離乳食). 말 그대로 수개월 먹어왔던 젖(분유)과 이별하고 새로운 음식을 받아들이기란 역시 쉽지 않았나 보다. 80ml 준비했던 미음을 10ml만 겨우 먹이는데 만족했다.


그래도 도전은 계속됐다. 다행히 하루하루 지나니 아들은 조금 적응한 모습이었다. 숟가락의 입안 침공엔 여전히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이유식 자체는 먹을만한지 하며 입을 '옴뇸뇸'하며 상하좌우로 움직였다. 젖병 젖꼭지만큼 편하게 먹진 못해도 새로운 음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 익숙해진 것 같았다. 아내와 나는 서로 바라보며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긴 여정이 남아있다. 계획대로라면 이런저런 식재료를 첨가한 이유식 비중을 서서히 늘리다가, 돌을 전후로 분유를 완전히 끊고 온전히 이유식을 먹이게 될 것이다. 지금은 의욕에 넘치지만, 이유식 준비에 지친 아내가 언제 백기를 들고 시판 이유식을 주문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물론 난 그것도 찬성이다). 아들이 처음 접하는 음식들을 특별한 거부 반응 없이 잘 먹어 줄지도 미지수다. 평생 먹게 될 밥, 이제 그 첫 술을 떴을 뿐이다.


분유와 헤어질 결심(자의든 타의든..)한 아이는 이렇게 또 한 뼘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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