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 25절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창세기 2장 25절, 새번역
모 사이비 종교에서 에덴동산을 만들겠다며,
엄청난 부지를 사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아담과 하와처럼 모든 사람들이 옷을 벗고 돌아다니는
원초적 세계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그 일을 시작했다.
다만 지역민들에게 발각되며 결국 그 일은 무산되었다.
가끔 해외의 누드비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생경하고 낯선 공간.
심지어 뭔가 모를 부끄러움과 수치심까지 생기는 그런 이야기였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옷을 벗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너무 구닥다리일까?
정말 서로를 보며 수치심 또는 음욕이 일어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애써 그런 감정을 지우는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애초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거리낌이 없는 공간인가?
성경이 그려내는 에덴동산은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와는 얼마나 다른가.
사회적 가면 뒤에 살아가는 우리네 세상.
특히 우리 사회는 그 가면마저도 잔인하게 평가하고 강요당하는 세상이 아닌가?
벌거벗고 있어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세상.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정말 가능할까?
성경은 우리의 시작이,
그리고 우리의 결론적인 소망이 그런 세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가운데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은 여전히 수치와 부끄러움을,
나를 가려줄 가면과 숨을 나뭇잎을 끊임없이 만드는 고됨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고됨을 감수하는 우리네 삶에 조금이라도 숨 쉴만한 그런 공간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가면을 벗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우리네 삶에서
잠시 가면을 벗고 서로를 볼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교회가 그런 공간이라면 참 좋겠지.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더 숨 막히는 공간이 되어버렸기에
사람들은 또 다른 공간을 찾아 나선다.
고된 삶을 살던 이들이 가면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잠시 머물며 서로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곳.
서로를 보면서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곳.
그런 공간이 있다면,
'교회라는 간판'이 없더라도
그곳이야말로 교회라고 할만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