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4월의 어느 봄

by His table

제발, 이제 다 나았냐고 묻지 마세요.

난 결코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제발, 그녀가 더 좋은 곳으로 갔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녀는 지금 여기, 내 곁에 없으니까요.

제발, 적어도 그녀가 이제 고통받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하지 마세요.

그녀가 왜 고통받아야만 했는지, 난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제발, 내 기분이 어떤지 안다고 말하지 마세요.

당신이 아이를 잃어보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제발, 이제 좀 괜찮아졌냐고 묻지 마세요.

사별은 시간이 지난다고 씻은 듯이 나아지는 병이 아닙니다.

제발, 그래도 오랫동안 함께하지 않았느냐고 말하지 마세요.

당신이라면 당신 아이가 죽을 날로 몇 살 때를 고르겠습니까?

제발, 하나님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신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분이 일부러 이렇게 하셨다는 뜻인가요?

제발,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주신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그저, 미안하다고만 말해주세요.

그저, 그녀를 기억한다면 그렇다고만 말해주세요.

그저, 내가 내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게 해 주세요.

그저, 그녀의 이름을 불러 주세요.

그저, 내가 울 수 있게 해 주세요.


- Rita moran, <Just Say You Are Sorry> -


The Compassionate Friends의 회원이었던 리타 모란(Rita moran)은 먼저 자녀를 떠나 보낸 사별 부모로서의 경험에서 비롯된 시를 지었습니다.


섣부른 위로나 서툰 신앙적 언어로 타자의 아픔을 해석하려는 우리의 시도들이 얼마나 경솔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4.3의 제주 항쟁

4.8의 인혁당 사건

4.16의 세월호 참사


예전엔 몰랐습니다.

4월의 봄이 이토록 시린 것인지요.


요즘 침대에 누워 잠에 들기 전까지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 가족인 강순희 여사(故 우홍선의 아내)와 유시민 작가의 인터뷰가 담긴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도서출판 은빛)’을 읽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라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치 고된 삶을 살았던 할머니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술술 읽힙니다.


희노애락이 담긴 93세의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마음에 남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유신정권의 엄혹한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야 했던 여사님의 이야기 속에는 교회, 성당, 목사, 신부, 선교사...등이 자주 등장합니다.


억울한 그녀의 이야기를 어디서도 말할 곳 없던 시절.

힘 없고 약한 이들은 무참히 짓밟혔던 그 시대에

교회는 어떤 곳이었는지 생각해 보니,

오늘 우리네 교회가 좀 이상해 보입니다.


슬픔을 조금이라도 내비추면 믿음이 없다는 둥,

어디서도 한 서린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여사님의 기억을 더듬어 듣는 그 시절 이야기에 분노도 일어나지만, 교회의 이야기는 반갑고 또 반갑습니다.


한 줌 밖에 되지 않는 우리처럼 작은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될 수만 있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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