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낙원 그리고 교회

by His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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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앉아요

따뜻한 스프와 고기가 있어요

지친 나그네여

도시에선 절대 알 수 없는 게 있죠

.

.

.

지치고 병든 나그네여

우 외톨이 나그네여

당신의 불치병은 그곳에

존재할 수 없어요


-AKMU, 소문의 낙원 中-


악뮤의 음악은 왜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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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황당한 기사를 하나 읽었다.

모 기독교 유튜버들이 악뮤의 이번 앨범이 ‘사탄의 음악’

또는 ‘인신 제사의 영성’이 깃들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고 한다.

아마도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복장과 연출 등을 보며,

문화적 이해가 전무한 반지성적 기독교인들의 주장이었을테다.


얼마 전 악뮤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20세기 중반 미국 젊은이의 ‘히피 문화’가 연상되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발과 자유와 평화를 염원하며 발흥한

히피 문화에 대하여, 한국 교회는 흔히 마약과 섹스로 점철된

사탄의 문화로만 설명하거나 소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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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복장은 미국 원주민들의 그것과 닮았는데,

평화와 정의를 갈구했던 그들은 백인들의 폭력에 희생된

미국 원주민들의 복장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드러냈다.

여기에는 성공한 백인들을 상징하는 ‘정장’을 입지 않음으로,

물질주의와 관료주의, 전쟁과 자본의 폭력으로 점철된

시스템에 저항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기도 했다.

특히 히피 운동은 ‘비폭력 저항’을 추구했다.


이들은 꽃으로 총구에 맞서고자 했다.

무력이 아닌 사랑과 평화의 힘을 믿었던 것이다.

물론 히피 운동의 변질과 문제점들도 즐비하다.

특히 지나친 약물 사용이 불러 일으킨 사회적 문제는

분명히 비판받을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히피 운동이 추구했던 정신과 이상만큼은

익히 교회에서 들었던 그것과 다름은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악뮤의 음악은 오늘을 사는 우리네 삶에

다시 히피들이 추구했던 그 이상을 떠오르게 한다.


냉혹한 도시의 삶에서 지치고 병든 이들에게,

자본의 폭거에 짓밟혀 스스로를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소외된 이들에게,

전쟁과 폭력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떠밀려 난민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이들의 노래는 환대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악뮤의 노래에서 환대로 가득했던 예수의 식탁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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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닿지 못했던 히피들의 이상이 실현된 그 자리를,

악뮤의 노래를 통해 잠시나마 상상해 볼 수 있는 그 낙원을,

지치고 병든 이들은 누구든 오라던 그분의 식탁을 말이다.

치열하게 배우지 않아도 따라할 수 있는 이 노래의 율동들,

히피들의 옛 음악 스타일이 떠올라 더 정겨운 음율,

무엇보다 환대로 가득한 가사들이 무척이나 기독교적이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아무튼 이 노래들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얻고 있음은,

오늘날 교회 음악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특히 10번째 트랙 ‘난민들의 축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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