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교장
늦가을 화요일이었다.
1학년 어린이는 여전히 항상 일찍 등교했고, 겨울방학이 두 달도 채 안 남은 만큼 어린이도 나도 모든 것이 다 자리 잡혀 루틴처럼 일상을 소화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보통 SNS 알림을 무음으로 해놓은 채 가끔 보는 휴대폰에 알림이 하나 와있었다.
알림장과 가정통신문을 비롯해 초등학교의 소통 도구로 쓰이는 하이클래스 플랫폼 속 선생님의 개인톡이었다.
하교 후에 전화 통화를 요청해주신 선생님의 톡을 확인하고 바로 시계를 보았다.
아이의 하교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다.
교사와 학부모의 상담이란 원래 1년에 2회 정해진 학부모 상담기간이 아니어도 수시로 원하면 할 수 있다지만,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근래 중 가장 긴 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혹시 어디 다친 것일까?'
머릿속에 떠오른 여러 추측들 중에 그나마 이것이 가장 유력했다.
무엇을 하면서 보낸 지 떠오르지 않은 그 시간 동안 아마 별의별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빨리 시간이 가기만을 바라왔다.
드디어 5교시가 마치는 1시 50분이 다 되었고, 아이가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전화를 받게 되었다.
간단히 인사를 드리고, 가장 먼저 받게 된 질문은 베프(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와의 관계 및 근황이었다.
전혀 예상을 빗나간 질문을 받게 되니 당황스러우면서도 어리둥절했다.
아이는 베프와 바로 최근의 주말에도 서로의 집을 오가며 놀만큼 평소와 다르지 않은 관계라고 느껴졌다.
있는 그대로 주말에 있었던 상황과 생각을 말씀드리니 그제야 선생님은 전화를 주신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아이가 베프에게 절교장을 써서 주었어요."
'절교장이라니?!'
'초대장도 아니고 절교장은 어찌 알았을까?'
아마도 <반지의 비밀일기> 같은 키즈 애니메이션을 통해 알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것을 실제로 아무 이유 없이 행동으로 옮길 아이는 아닌데...라는 생각에 다 닿을 무렵 선생님은 말씀을 이어가셨다.
"사실 절교장을 써서 직접 전달하진 않았고, 그 친구의 책상 위에 두었나 보아요.
그 친구가 발견하고 저에게 가져왔는데, 아이는 본인이 한 것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래서 누가 장난으로 한 건지 주인을 찾으려고 반 아이들에게 물었고, 그제야 아이가 사실대로 말해주었어요."
사실 절교장을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은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행동이기에 왜 안되는지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셨고, 그렇게 행동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친구도 화해의 편지를 써주며 사건은 잘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날의 사건을 알게 될 엄마가 걱정되었는지 눈물을 보이려 해서 선생님께서는 잘 마무리되었다며 상황을 알려주시려 연락하신 것이다.
그리고 1학년이 마치는 두 달 남짓의 기간 동안 함께 아이들을 잘 유심히 살펴보자고 말씀해주시는 덕분에 정말 학교(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까지 정삼각형으로 하나가 된 느낌도 받았다.
선생님과 통화를 마치자마자 아이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의 상황을 전해 들은 것과는 다르게 별일 없었던 사람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와주었다.
감사했다.
선생님 덕분에 누구도 크게 다치지 않은 느낌이었다.
가방 속에는 친구에게 받은 화해의 편지가 들어있었지만, 지금은 보여줄 수 없다며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이야기를 기다렸지만, 그날 밤에도 별로 할 말이 없다고만 했다.
그렇게 일주일 넘게 기다렸다.
그사이 아이에게는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베스트프렌드였던 친구는 그냥 프렌드가 된 느낌이었고, 이후 서로의 집에는 오가지 않았다.
귀엽고 여러모로 훌륭한 점이 많이 보였던 친구였지만, 사실 집에서 아이와 함께 노는 모습을 보며 서로의 놀이 유형이 맞지 않다고 혼자만 느끼곤 했다.
에너지 넘치게 밖에서 뛰어노는 스타일도, 집에서 보드게임 하며 놀이하는 스타일에도 속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1시간 놀고 오겠다고 허락받고 온 친구는 집에서 '무엇을 하고 놀지?'라는 말만 서로 수십 번 오가며 시간이 흘렀고,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영어 읽기와 구구단 문제를 내기도 했다.
아이는 아닌 척했지만 당혹스럽고, 간식 먹지 말고 같이 놀자는 말에 속이 상했을 것이다.
(먹는 것 좋아하는 아이다.)
일주일 넘게 시간이 흘렀고, 동생들의 장난으로 아이의 서랍에 있던 물건이 다 밖으로 나와서 정리하려는 찰나 친구에게 받은 화해의 편지를 이제 보아도 된다고 말했다.
1학년이 금세 써냈다기엔 꽤 긴 글이었지만, 핵심은 한 문장이었다.
뚱뚱하다고 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