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스케일링 실패기

by 쥐방울

"엄마! 나 이가 흔들려요!"

한동안 잠잠했는데 또 오고야 말았다. 초등학생 어린이의 9번째 유치가 흔들린다는 소식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려왔다. 치과 가는 것을 죽도로 무서워하는 30대 엄마는 집에서 유치를 빼주지도 못하고, 아이가 식사하는 것조차 불편해하면 곧장 어린이 치과로 향한다.


이가 흔들리기 시작한 지 일주일 즈음 더 흘렀을까 잇몸에서 피가 비치고, 아이도 이제는 유치를 보내주는 것에 대해 동의했을 때 음악학원을 하루 결석하고 함께 치과로 출발했다. 발치는 따로 예약을 할 수가 없기에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흔들리는 유치를 육안으로 확인한 후, 오랜만의 내원에 아이의 치아를 전체적으로 검진해 주셨다.


의례적인 절차라고 생각하며 긴장을 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를 부르셨다. 아이에게는 안쪽을 엄마에게 한번 보여드린다며 입을 벌려보라고 하신 채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어머니 여기 좀 보세요. 여기 안쪽에 치석 육안으로도 보이시죠? 여기는 영구치라 스케일링을 해줘야 해요. 안 하게 되면 지금보다 더 잇몸이 붓고 염증이 생겨서 결국엔 오늘이 아니더라도 꼭 하셔야 해요. 오늘 하고 가시겠어요?"


발치하러 왔다가 스케일링에 동의하냐는 질문에 나는 양해를 구하고 "잠시만요"를 외쳤다. 그리고 누워있는 아이에게 빠르고 간단하게 현재 상황을 알리고 마친가지로 동의를 구했다. "아랫니 치아 안쪽면에 눈에 보이는 치석이 쌓였는데 이게 집에서 양치질로는 제거가 어려워 치과에서 사용하는 장비로 제거해 주신대. 영구치는 평생 쓰는 치아라서 오늘이 아니더라도 꼭 해야 하고, 치아 4개만 하는 거라서 10분이면 끝난대. 이왕 할 거면 온 김에 오늘 하고 가자."


충치는 아니라는데 뭔가 낯선 것을 제안하는 어른들을 계속해서 수상쩍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이의 질문은 딱 하나였다. "아픈 건 아니지?" 엄마도 해봤는데 어른들이 하는 것보다는 아프지 않다는 말을 듣고, 다시 누워서 치위생사분이 아이의 입에 침을 빨아들이는 튜브를 넣었을 때다. "이게 뭐야?! 나 안 할래!"


시작도 하기 전 입 안에 넣은 튜브에서 침을 빨아들이는 장비의 소리가 아이를 무척 긴장하게 만들었다. 아직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말에도, 소리가 무서우면 헤드폰을 써보자는 말에도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이성을 잃어갔다. 치과에 왔으니 아이를 달콤한 간식이나 좋아하는 짜장면을 사준다는 말로 달래볼수도 없고, 영상을 평소보다 더 보게 해 주겠다는 제안에도 아이는 거절했다.


같이 옆에서 5분 정도 기다린 치위생사분은 갑을관계가 바뀐듯한 우리의 모습을 보고 결국은 이렇게 제안했다. "저희는 아이가 울어도 할 수는 있어요. 결정은 어머님이 하셔야 해요." 제안에 힘입어 나는 기필코 오늘 아이의 스케일링을 하고 간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고, 아이에게도 전달했다. "우리 어차피 해야 할 건데 오늘 하고 가기로 마음먹었어. 엄마가 옆에서 손 꼭 잡아줄 테니까 걱정 말고, 우리 시도해 보자."


엄마의 결정에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누운 아이는 입에 튜브가 들어가자 스케일링을 해보기도 전에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충치치료도 아닌데 아이 몸을 벨크로 테이프로 감싸며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말 난감했다. 마지막 시도로 아이를 눕혔을 때는 입을 앙 다문채 벌려주지 않았다.


엄마 저 심장이 너무 뛰어요!!!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뛴다며 눈물을 흘리던 아이는 본인 옷을 부여잡은 채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혼란스러워했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자며 아이 손을 잡고 치과를 나와버렸다. 화가 나서 엑스레이 사진촬영 비용만 수납하고, 흔들리는 유치는 발치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냉랭해진 분위기를 살피며 먼 곳만 바라보았고, 나는 애꿎은 아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잔소리를 한 보따리 늘어놓았다.




그날밤 혼자 잠들지 못하고 어른인 나는 왜 이토록 여전히 치과를 무서워하는지 다시 떠올려보았다. 초등학생 때 생겨버린 충치를 치료하기 위해 집 앞 치과에 데려간 엄마는 혼자 상담하고선 치료를 진행시켰다. 날카로운 소리, 소독약 나는 냄새,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서 입은 계속 벌리고 있어야 하는 불안감 등 치과에서 느끼는 공포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스케일링임에도 불구하고 몇 년째 용기가 없어 가지 못하는 나 자신이면서 어린이에게는 지금 당장 하자고 제안했으니 아이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이다. 며칠 후 학교에서는 7월에 있을 구강검진에 대해서 안내장을 배부했다.


안내장을 가져온 아이도 내용을 확인했으리라 생각하고 한 달 동안 저녁마다 엄마가 양치를 해주는 것에 대해서 어떤지 물었다. 초등학생이 되자마자 하루에 한 번 누워서 양치해 주는 것에 대해 거부하던 아이가 흔쾌히 고맙다며 승낙했다. 그리고 함께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안되면 그때 가서 다시 스케일링을 생각해 보자고 했다.


서른 살이 다 되어 아이와 함께 치실을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이 어린이에게 스케일링을 제안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만 같았다. 스케일링 당장 안 한다고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이가 심장이 뛰었을 때 나는 멘탈이 흔들렸던 모양이다. 갈길이 멀다. 일단 스케일링은 나부터...

이전 07화우리 집은 얼마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