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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Nov 09. 2022

엄마의 미신이 나에게 미친 영향

삼칠일이 뭐길래

때는 첫째를 출산하고 정확히 20개월 터울이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첫 아이를 출산했을 당시 조리원의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했고, 같은 지역에 사는 친정엄마께서 일을 하시지만 비교적 일찍 퇴근하시는 덕분에 자주 왕래해주시며 신생아 케어에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둘째 출산을 앞두고는 아직 어린 첫째와 떨어져 있는 어려움도 있고, 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시려는 엄마 덕분에 출산 후 바로 집으로 오려는 계획이었다.


1년에 1/4 기간을 국내외로 출장을 다니는 배우자는 둘째 임신 당시, 육아에 도움을 주기 어려운 상황에 친정 근처로 이사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출산 4개월 전 친정부모님과 같은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출산 이틀 전, 치매와 쇠약해진 몸으로 오랜 요양원 생활 끝에 외할머니가 92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전날 위중하다는 전화를 받고, 우리와 먼 지역에 계셨던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뵙고 인사하며 잘 보내드릴 수 있었다.

'엄마를 떠나보낸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오래 해보기도 전에 가진통과 진진통을 오가며 나는 병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첫째 출산 당시 제왕절개로 약 1년은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느낌을 받았고, 다시는 유도분만과 수술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래서 겁 없이 둘째는 자연분만을 하기로 계획했고, 진통이 올 때까지 기다려서 감사한 의료진들 덕분에 VBAC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자연분만은 2박 3일 입원 후 퇴원이었고, 퇴원 후 나의 행선지는 당연히 집이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




퇴원을 마치고, 신생아와 20개월 첫째를 데리고 집에 왔을 당시 엄마도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리고 전화 한 통이 왔다.

삼칠일 동안 엄마는 우리 집에 못 오신다는 소식이었다.

옛 우리 풍속 에는 아기가 태어난 지 21일인 세이레(삼칠일) 기간에는 가족은 물론 이웃 주민도 출입을 삼가고, 특히 부정한 곳에 다녀온 사람은 출입을 절대로 금한다는 습속이 있다.

정신없는 와중에 전화를 통해 전해 들은 말씀을 듣고선 엄마의 마음도 헤아려야 했기에 알겠다며 끊었다.


전화를 마치고, 전쟁은 시작되었다.

첫째 아이가 갑자기 바나나를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대체 간식을 말해봤지만 전혀 통하지 않고 집에 하필이면 없는 바나나가 당장 필요했다.

한 번도 떨어져 있지 않았던 첫째에게는 2박 3일 이후 새로운 갓난쟁이와 함께 돌아온 엄마였을 것이다.

그 마음을 충분히 알겠기에 나는 첫째의 요구사항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고, 퇴원한 날 집에서 첫째와 신생아를 데리고 집 앞 마트를 가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때마침 바로 옆집에 사시는 이웃님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시면서 나와 아이들을 발견하셨다.

바나나를 사러 간다는 나의 말에 나와 같은 나이의 자녀를 결혼시키고, 엄마와 동년배이신 이웃님은 놀라며 물으셨다.

"오늘 퇴원해서 온 거 아니에요? 산모가 뭐 하는 거예요? 당장 들어가요. 바나나 내가 줄게요!"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잘 버텼다.

첫째가 바나나를 주신다는 이웃님의 말을 듣고 우리는 집으로 다시 들어오게 되었고, 눈물이 났다.

맞다. 난 이틀 전 출산했고, 혼자였다.

남편은 때맞춰 이직을 한 덕분에 새로 출근한 직장에 출근하자마자 배우자의 출산소식으로 휴가를 낼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외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친정엄마는 3주 동안 우리 집에 오지 않겠다고 하셨다.

친정과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와서 산후도우미를 준비할 계획도 없었다.

하나뿐인 여동생은 취업준비로 바쁜 모양이었다.




잠시 후 이웃 아주머니는 감사하게도 정말 바나나를 직접 사다 주셔서 산모의 외출을 막아주셨다.

그렇게 낮밤 가리지 않고, 신생아와 첫째를 케어하면서 어서 이 모든 것이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밤에 되면 가끔 이런 생각도 떠올랐다.

'엄마는 대체 왜 안 오시는 걸까?'

내가 오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오지 않겠다는 분을 억지로 불러서 도와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옛날처럼 집에서 출산하는 것이 아닌 다 병원에서 출산을 하는 시대이다.

처음 보는 의사와 간호사분들이 아기의 출산을 도와주시고, 이분들이 어제 장례식을 다녀왔든 어떤 생활을 하셨든 환자의 입장인 나는 알 필요도 없는 것이다.


조상님이 말하는 삼칠일은 아기를 위해서도 있지만, 산모의 몸이 회복하는 데 중요한 기간이다.

삼칠일 동안 새롭게 태어나는 산모의 몸이라는데 회복은커녕 아기가 울 때 같이 많이도 울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삼칠일도 지나가며 엄마는 딸의 집에 들러 미역국과 반찬을 날라주셨다.

엄마도 딸과 새로운 생명을 위하고, 나도 엄마의 마음을 존중하느라 우리는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랐던 것 같다.

우리의 풍속 및 민속은 이제 그만 백과사전 속에서만 만났으면 좋겠다.

누구든 마음 다치지 않고, 살고 봐야 하니까.

그래서인지 나도 평생에 있어 잊지 못할 바나나를 떠올리며 주변을 미어캣처럼 둘러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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