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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Nov 12. 2022

셋째 임신, 남편의 눈물

진짜 최, 최종, 최 최종

남편의 3개월간 해외출장이 막을 내렸다.

다행히 20개월 터울의 아기 둘과 나도 그동안 살아있었고, 남편도 무사했다.

1살과 3살 꼬맹이들의 육아로 일상을 보내며 수면욕이 높은 아내, 그리고 잦은 출장이 있는 남편.

한마디로 우리는 자주 관계를 가지려야 가질 수가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기적 같은 상황이 주어져도 한쪽이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어려워지는 그러한 부부관계가 있던 날.

남편은 나름대로 피임도구를 찾아내어 안전을 도모한 듯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약간 불안했다.

다음날 동네의 가까운 병원에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으려고 방문했다.

이때가 관계 후 24시간이 지나지 않았었고, 의사로부터 안심되는 말을 전해 들었다.

"72시간 이내에 복용하시면 피임률 97%입니다."

바로 복용 후, 다녀온 소식을 전화로 남편에게도 알렸다.


아내가 사후피임약을 복용함으로써 남편의 혹여나 하는 불안은 1%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났을 무렵 또 내손으로 임신테스트기를 약국에서 구입했다.

이놈의 느낌이 문제다.

아니겠지 하면서도 확실히 해두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구입했던 것 같다.

생리는 원래 주기가 가뜩이나 길고, 스트레스로 불규칙하니 또 그런 것이겠지 싶으면서도 일단 구입했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첫 소변으로 하게 된 테스트기는 두줄이었다.

심장이 빨리 뛰긴 뛰었는데, 이건 설렘이 아닌 두려움과 막막함이었다.

1호와 2호의 육아가 여전히 생생하고, 신생아부터 돌까지의 1년이 빠르게 리마인드 되는 순간이었다.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고, 최대한 침착한 척 일상을 지내며 저녁에 퇴근한 남편을 마주했다.

식탁에 마주 앉아 저녁을 먹으며 남편에게 임신한 것 같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몇 초 후에 남편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전우로서 육아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고 있고, 육아에서 대부분의 비중을 맡고 있는 내가 그 모든 것을 다시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흘린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남편의 입에서 꺼낸 말은 "미안해"였다.


둘째 임신 소식을 배우자와 공유했을 때만 해도 그럴 수 있다는 듯한 이보다는 훨씬 가벼운 반응이었다.

남편도 남매로, 나도 자매로 성장해왔으니 대한민국에서 흔한 4인 가족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으리라 추측을 해본다.

세 번째 임밍아웃과 동시에 남편의 눈물은 그날로 작별하며, 마주한 현실에 바로 받아들인듯했다.

시댁에 알려서 축하 인사말을 전해 듣고, 회사에도 가까운 동료에게는 알린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상황은 달랐다.

지금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계시는 친정엄마께 어떤 얼굴로 소식을 언제 알릴 수 있을지 까마득했다.

내심 기회만 엿보고 있던 나에게 같은 아파트 라인에 아이가 셋이신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그렇게 앞으로 동지가 될 분을 만나니 입이 근질거려 배 속의 아가 소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배우자 이외에 처음 입 밖에 셋째의 임신소식을 꺼낸 것은 나의 상황을 공감해주실 분이었다.

아직 친정엄마께는 말씀드리지 못했다고, 차마 입이 아직 떨어지지 못했다고 하니 역시 공감 모먼트였다.


그렇게 임신 안정기를 맞이했을 즈음, 엄마께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럴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말씀드렸다.

역시나 예상대로 시어머니와는 다르게 친정엄마는 새 생명의 축복보다는 자신의 딸 걱정이 먼저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어느새 받아들이셨고 셋째가 가장 예쁠 수도 있다는 혼자만의 상상도 시작하셨다.

입소문이 빠른 엄마께 말씀드렸으니 아빠와 이모, 동생 모두에게 순식간에 퍼졌다.

태교라고는 아이들 무릎에 앉혀서 책을 읽어주는 것 말고는 미안할 정도로 바쁘게 지나가는 10개월이었다.




만삭의 몸으로 40개월 첫째를 한 손에 안고, 20개월 둘째를 태운 유모차를 한 손으로 밀며 숨 가쁘게 보냈다.

셋째도 엄마 배속이 좋았는지 예정일을 넘어 41주에 실물을 영접할 수 있었다.

첫째는 성격 급한 엄마 덕분에 제왕절개로 태어났고, 둘째는 VBAC 시도로 자연분만을 성공했다.

한참 첫째와 둘째가 잘 자는 밤중에 진통이 시작되었고, 아이들이 깨지 않게 집에서 진통하다 아침에 병원으로 오픈런하니 자궁이 이미 7cm가 열려있어 순식간에 진행될 수 있었다.

감사하게 셋째도 VBAC 도움을 받아 자연분만으로 세상을 마주했다.


첫째와 둘째처럼 마찬가지로 2박 3일 퇴원 후 신생아와 함께 집으로 향했던 우리 가정은 어느새 다자녀 타이틀을 달았다.

일부러 맞출 수도 없는 아이들의 터울은 모두 20개월로 삶의 체험현장의 한순간은 다음과 같다.

첫째(5세)에게 책을 읽어주며, 셋째(2세)에게 수유를 하다가 배변훈련 중인 둘째(3세)의 화장실 신호가 오면 다 내려놓고 화장실로 냅다 뛰는 것이다.


이렇게 세 아이의 가정보육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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