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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Nov 16. 2022

가정보육이지만 체리슈머입니다.

물건 말고 에너지를 채워보아요.

2023 트렌드 코리아 10대 키워드 중에는 Born Picy, Cherry-sumers가 제시되었습니다.
여기서 '체리슈머(cherry-sumer)는 한정된 자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알뜰 소비 전략을  펼치는 소비자를 명명하고 있습니다.

-출처:트렌드 코리아 2023/김난도 외/미래의 창



얼마 전 트렌드 코리아 신간 도서를 보면서 체리슈머의 주된 세대인 MZ세대는 저성장 시대에 태어나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로 알려져 있다.라는 문구를 보며 팩트 폭격을 가감 없이 당한 느낌이었지만, 오히려 명확하고 시원한 글을 보고는 과거와 현실을 돌이켜보며 왜 이런 패턴으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춘기였던 중학생 소녀는 매달 생리통으로 한 달에 한번 침대와 붙박이 생활을 하면서도 시간 날 때 했던 행동은 위생용품 브랜드마다 사이트 혹은 카페에 들어가서 샘플을 신청하는 일이었다.

초6에 아무 준비 없이 시작한 생리는 엄마도 준비가 안되셨는지 이모가 알려준 생리대를 구입해서 사용방법을 알려주시고 계속 생활해왔지만, 계속되는 생리통에 더 나은 것은 없을까 혼자 꾸준히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국내외 위생용품 샘플을 계속 신청해서 모으게 되자 몇 달은 구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쌓이며 충분히 경험해볼 시간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학생은 20대가 되고, 결혼을 하면서 엄마의 역할이 추가되었다고 해서 한순간에 변하지 않았다.

여러 OTT를 구독하다가도 안 볼 때는 취소하고, 보고 싶은 게 생기면 그때 다시 신청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대한민국을 로켓 배송으로 물들인 쿠팡 앱도 살림하는 사람 중에 스마트폰에 안 깔려있는 분이 드물지만, 가계 경제가 긴축 상황이 필요하다 싶을 때는 와우 멤버십 해지와 동시에 앱도 잠시 제거해두었다.




다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의 육아도 그렇게 물 흐르듯 흘러갈 줄 알았다.

첫 번째 출산을 경험하고, 1년의 육아를 하는 동안 예민한 기질의 아이는 계속된 의구심을 남겨주었다.

'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아기를 키우고, 일상을 유지하는 거지?' 라며 둘째는 내 인생에 없는 줄 알고 실속을 차리며 자리를 잡아가야 했기에 육아 아이템들을 그때그때 정리하곤 했다.

돌 이후 걷기 시작하니 걸음마 보조기도 나눔 하며, 두 돌 무렵에는 돌잡이 시리즈 책도 처분하였다.


그렇게 플랜 B는 없을 것처럼 살다 보니 첫째와 성별이 다른 둘째가 떡하니 자리 잡았다.

허허 웃음이 나왔다.

곁에 신생아를 다시 케어할 용품은 젖병부터 내복 등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시작을 했고, 받아들이며 진짜 마지막인 줄 알았다.

그래서 작아진 옷과 앞에 '국민'이라는 단어를 붙여 마케팅하는 모든 육아템들을 또 나누었다.


4인 가족으로 마무리될 줄 알았던 가정에 셋째 임신으로 남편의 눈물도 보게 되었다.

여러 의미였던 눈물을 계기로 지금은 너무나도 축복이 된 막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여기서 변수는 둘째와 또 다른 성별이었고 준비가 되어있거나 첫째와 둘째에게 물려받을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출산준비 목록이라는 타이틀로 여기저기 나와있지만, 가장 큰 준비는 마음의 준비였다.

특히 셋째는 더 그러했다.

그렇게 기저귀와 물티슈만 한 상자 주문해놓은 채 출산을 했고, 세 아이의 육아가 시작되었다.

진짜 최, 최종, 최 최종이어야만 하기에 잠시 사용하는 육아용품들 물려받을 수 있으면 다 받았다.


셋째의 돌이 지나고 이제 좀 인간다워질 때 즈음 코로나 시국이 시작되면서는 외출을 이렇게 안 할 수도 있구나 싶어 지하주차장에 요지부동으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를 매도했다.

물론 몇 달 후 다시 필요에 의해서는 보조금을 지원받아 전기자동차로 구입하였다.




체리슈머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세 아이의 가정보육을 유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유지하더라도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는 올해 첫째 아이의 초등 입학으로 둘째와 셋째의 가정보육을 하고 있다.)

가정보육에서 주양육자는 요리사도 되었다가, 셀 수 없는 식사의 상차림과 정리, 외출 준비, 씻기기와 책 읽어주기 등 수많은 부캐로 변신해서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

표면으로 드러나 있는 꼭 해야만 하는 부모역할만 하기에도 몸과 마음의 에너지는 금방 방전되고 말았다.


가정보육은 엄마(주양육자)인 나 자신의 체력이 전부였다.

여전히 그러하다.

어쩌다 맞이하게 된 혼자만의 귀한 시간에 그동안 소비되어 집안에 쌓인 물건들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은 덕분에 가정보육이 계속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가오는 검은 토끼의 해를 맞아 하나의 키워드로 선정된 체리슈머는 가정보육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가정에 필요하고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의 한정된 에너지를 극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해서 현명한 소비 혹은 비워내는 만큼 그 공간에는 사람과 웃음으로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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