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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Nov 05. 2022

출산휴가 쓰고 다시 출근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첫 아이 출산 후 매일 친정으로 걷고 또 걸었습니다.

꽃다운 나이 스물여섯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공무원도 대기업에 다니는 것도 아닌 나는 결혼 소식을 언제 회사에 알려야 할지 업무 상황과 분위기 파악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나는 일을 그만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여기저기 물어도 보고, 초록창에 검색도 해본 결과 결혼 날짜와 식장이 정해지면 가까운 팀원부터 천천히 알리기로 했다.


공대를 나와 현장 파견직으로 있었던 당시, 같이 일하는 부장님께만 소식을 전했지만 빠르게 퍼져나갔다.

사무실이 있는 본사와 다른 현장에도 퍼지며 자연스럽게 대표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었다.

결혼을 두 달 정도 앞둔 어느 날, 대표님은 현장의 노고를 치하한다는 명목으로 식사자리를 마련하셨고 편도 두 시간 거리를 걸음 하셨다.

그날의 식사자리에서 다른 말씀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쉽게 꺼내는 말이 아니라는 서두로 시작하신 말씀의 본론은 이러하였다.

"출산 계획을 좀 당분간이라도 미루었으면 하는데..."라고 하시며 아까운 인재를 놓치기 싫다는 구구절절한 부연설명도 함께 늘어놓으셨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선진국인 줄 알았다.

인생의 큰 계획을 그리면서 이러한 걸림돌은 생각지도 못한 나는 긍정도 부정도 그 어떤 표현도 하지 못하고 듣기만 하며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바보같이.




난임부부가 많다는 주변 소식에 그게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새로운 생명은 예고 없이 갑작스럽고 빠르게 찾아왔다.

9월에 결혼한 우리 부부는 감사하게도 다음 해 7월 첫아이의 출산예정일이었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대표 여름휴가 기간인 7월 마지막 주부터 8월 첫째 주까지 남편과 함께 신생아를 케어할 생각이었던 내 계획은 들어맞지 않았고, 그때부터였다.

육아란, 내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당연스레 누구나 자연분만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출산예정일이 되어도 진통이 없어 유도분만 날짜를 잡은 예비 초보 엄마는 배속이 더 좋은 아기를 아기지 못하고 피 흘리며 수술실로 걸어 들어가 제왕절개를 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기는 영아산통부터 오감 아니 육감이 예민해 잠을 자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어 그때부터 각종 육아서적을 헤집어 보며 기질 공부를 하게 만들었다.


제왕절개 후 조리원도 건너뛰고 집에 돌아와서 산후조리는 커녕 3kg 되는 아가를 매일같이 재울 때마다 몇 시간을 안고 있으니 회복되기는커녕 아이가 돌 무렵까지 제대로 앉았다 일어나는 것이 어려워서 수술이 잘못되었나 생각이 들기도 했고, 대체 다들 이 땅의 부모들은 어떻게 둘셋씩 낳아서 키우는 것인지 그때부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 둘셋씩 낳아 키우는 게 본인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때였습니다.


high needs baby인 나의 첫째 아가는 밤잠이 들어 매일 새벽 4시경이면 일어났고, 나는 옷만 입은 채 남편이 출근하기도 전에 아이와 유모차를 끌고 동네 놀이터를 돌다 걸어서 15분 거리의 친정을 오가며 아이를 재우곤 했다. 대부분 육아의 어려움은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것을 이론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 와닿지 않았던 부분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정말 웬만한 어려움은 시간이 해결해주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후 두 번의 출산을 더 하게 되었고, 신생아부터 돌 무렵까지 파란만장한 시기를 세 번이나 거쳐가며 세 아이와 복작거리며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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