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력 대비 취약한 스타트업 생태계

by 임 윤

패전 이후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1980년대까지 일본 경제는 경이적인 속도로 성장했다. 1960년대 평균 실질 경제성장률은 10.1%에 달했으며, 이후 1970년대 5.2%, 1980년대 4.6%로 낮아졌지만 일본 경제의 성장 속도는 전 세계가 놀랄 만했다. 1960년 중국에 이어 세계 7위였던 경제 규모(명목 GDP)는 1970년 중국은 물론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서구 선진국을 제치고 미국, 소련에 이어 3위, 1978년에는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다.

1960년 미국의 8%에 불과했던 일본의 경제 규모는 1995년에는 71%까지 늘어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역사는 미국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인구가 미국의 절반 밖에[1] 안 되는 일본이 경제 규모에서는 미국의 2/3를 훌쩍 상회하는 수준까지 따라붙은 것이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서구 어떤 나라도 경제 규모에서 이 정도까지 미국을 따라잡은 적이 없었다[2]. 미국 내에서 이대로 가면 일본의 경제력이 미국과 대등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졌다. 이 같은 우려는 1985년 플라자합의(일본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인위적 엔화 가치 절상), 1986년 미일반도체협정(미일 간 반도체 무역 불균형 해소) 등 미국의 강력한 대일 견제를 불러왔다. 그만큼 일본의 고도성장은 미국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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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세계은행(World Bank)

(그림 3.4.1) 미국, 일본의 명목 GDP 및 양국 간 GDP 비율 추이


패전 이후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은 일본의 성공적인 서구 선진국 추격(catch-up)의 결과였다. 여기에는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역할이 컸다. 지금은 일본 내 스타트업 창업 활동이 저조하지만 패전 직후에는 그렇지 않았다. 소니(1946년 창업), 산요(1947년), 혼다(1948년), 교세라(1959년) 등이 이 시기에 창업됐다. 특히 혼다를 창업한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 교세라의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등은 맨손으로 세계적 대기업을 일궈내 지금도 일본 내에서 기업가정신의 표상으로 회자되고 있다. 고도성장기 일본 기업들은 미국 기업들 대비 부족한 원천 기술을 특유의 제품 및 프로세스 혁신으로 극복해 냈다.

첫째, 선진 기술을 활용해 기존 제품을 개량하고 실용화했다. 트랜지스터는 미국 AT&T의 벨 연구소(Bell Labs)가 처음 개발했지만, 트랜지스터를 부품으로 탑재한 라디오를 대중화한 것은 창업한 지 10년밖에 안된 소니였다. 소니를 공동 창업한 이부카 마사루(井深大)와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는 트랜지스터의 기술적 파급력을 알아보고 외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기술을 도입한 게 아니라 트랜지스터 특허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한 것이어서 실제 생산기술은 공장 견학 등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습득해야 했다. 그렇게 생산한 트랜지스터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개발했다. 비록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보다 출시 시점이 늦어 세계 최초 타이틀을 놓쳤지만, 작고 가성비가 뛰어나 대중적 성공을 거둔 것은 소니였다. 1950년대 방위 산업이 우선이었던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트랜지스터 등 혁신 기술을 방위 산업에 활용하는데 중점을 뒀다. 반면 패전국인 일본은 방위 산업에 손을 댈 수 없었기 때문에 기업들은 트랜지스터를 사용해 라디오, TV 등 소비자용 전자 제품을 혁신하는데 주력했다. 이는 고도성장기 일본 전자산업이 전 세계를 주도할 수 있었던 핵심 배경이 되었다.

둘째,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를 개발해 신시장을 창출하였다. 소니의 세계적 히트 상품인 ‘워크맨’이 대표적이다. 워크맨은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아이디어에 기반해 만들어진 제품으로 전 세계인의 생활양식 자체를 바꿔 놓았다. 지금은 애플이 전 세계적으로 혁신적 브랜드로 인식되며 수많은 마니아 층을 갖고 있지만, 아날로그 시대에는 소니가 그랬다. 사실 워크맨은 첨단 혁신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 아니다. 워크맨은 기존 가정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소형화해서 휴대용 제품으로 개발한 것이다. 그럼에도 워크맨이 혁신적 제품으로 평가받는 것은 당시까지 여럿이 같이 듣던 음악 감상 방식을 워크맨이 등장하면서 개인이 혼자 감상하는 방식으로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이밖에 소니의 가정용 VTR, 카시오의 휴대용 전자계산기, 도시바의 노트북 등도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며 기존에 없던 시장을 개척한 제품들이었다.

셋째, 제품 혁신뿐만 아니라 생산성 및 품질을 극대화하기 위한 프로세스 혁신을 추구했다. 대표적으로 재고와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한 적시(Just In Time) 생산, 일상적 ‘카이젠(改善, 개선)’ 활동 등을 기반으로 한 도요타 생산 방식(Toyota Production System, TPS)은 도요타를 세계적 자동차 기업으로 부상시킨 원동력이었다. TPS는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해 대량 생산을 가능케 한 ‘포디즘(Fordism, 포드주의)’처럼 제조업 생산의 또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했으며, 일본 기업은 물론 글로벌 기업들이 벤치마킹하면서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의 원형이 되었다.

이처럼 일본은 제품 및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미국 등 서구 선진국을 추격했다. 이는 모방을 통해 혁신 역량을 축적해 나가는 후발국의 일반적인 추격 모델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일본이 현대 산업의 근간이 되는 반도체라는 혁신 기술이 개화하자마자 이를 받아들여 그 역량을 내재화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본 기업가정신의 표상,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그룹의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마쓰시타 고노스케(파나소닉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혼다 창업자)와 함께 일본에서 3대 ‘경영의 신(神)’으로 불린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젊은 시절은 순탄하지 않았다. 중학교 입시에서 두 번, 대학 입시에서 한 번 낙방했고 졸업 후에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 폭력조직에 들어갈까 고민하기도 했다. 교수의 소개로 가까스로 들어간 회사는 적자투성이여서 월급도 제때 주지 못해 자위대로 옮기려고 했다. 결국 주위 만류로 눌러앉은 그는 세라믹 제조 기술 연구에 몰두했고, 이를 바탕으로 1959년 27세 나이로 교세라를 창업했다. 은행 대출금으로 남의 공장 한 구석에서 시작한 교세라는 지금은 세계 굴지의 종합전자부품 기업으로 성장했다. 실리콘밸리 차고에서 시작한 HP에 비견될만한 성공신화를 쓴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1984년 KDDI를 설립해 일본 2위의 통신회사로 키워냈다. 78세 되던 2010년에는 당시 하토야마 총리의 간곡한 요청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일본항공(JAL)의 회장으로 취임해 8개월 만에 회사를 흑자로 돌려세우고 2013년 퇴임했다.


※ 그의 경영철학을 배우려는 자발적 연구 모임인 세이와주큐(盛和塾)가 36년간(1983년~2019년) 일본, 미국, 중국, 브라질 등지에서 운영되었다.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우장춘 박사가 그의 장인이다.




고도성장 뒤에 찾아온 ‘잃어버린 30년’


일본 경제는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거침없었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임에도 1988년 경제 성장률은 6.7%에 달했다. 1989년 도쿄증권거래소는 상장사 시가총액 합계에서 뉴욕증권거래소를 제치고 세계 1위로 부상했다.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 5개 기업이 모두 일본 기업이었고[3], 상위 20개 기업 중에서 일본 기업은 14개나 됐다. 하지만 잘 나가던 일본 경제는 1992년 성장률이 0.9%로 급락하며 제동이 걸렸다. 당시 일본 정부는 침체가 쉽게 극복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거듭되는 대규모 경기 부양책에도 일본 경제의 불황은 장기화됐다. 세계 2위였던 경제 규모는 2010년 중국에 의해 3위로 내려앉았고, 2023년에는 55년 만에 독일에 재역전당하며 4위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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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세계은행(World Bank)

(그림 3.4.2) 1980년대 이후 일본의 경제 성장률 추이


1990년대 초반 일본 경제의 급락에는 엔고(円高)에 의한 수출경쟁력 약화, 자산 버블 붕괴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이후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에는 글로벌 산업 및 경쟁 패러다임의 변화가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1990년대 본격화한 디지털 혁명은 PC, 휴대폰, TV, 가전 등 전자 제품의 범용화(commoditization)를 촉진했다. 기술의 표준화, 부품의 모듈화 등으로 경쟁 기업 간 품질 격차가 축소되면서 부가가치가 제조의 앞단(R&D, 디자인 등)과 뒷단(마케팅, 서비스 등)으로 옮겨갔다. 제조업의 부가가치 곡선이 언덕 모양에서 이른바 ‘스마일커브(Smile Curve)’로 바뀌었다. 일본 기업들의 제조 경쟁력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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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4.3) 디지털 혁명 전후 제조업 부가가치 곡선의 변화


더구나 다양한 제품의 기능이 휴대폰에 통합되는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가 심화되면서 일본 기업들은 많은 타격을 받았다. 그동안 일본 기업들이 주도해 왔던 음악∙영상 재생 기기, 디지털카메라 등의 시장이 거의 사라지거나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패러다임의 전환에 일본 기업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세상이 크게 변화했음에도 과거의 성공 방식을 고수하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4]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동안 세계 산업을 주도해 왔던 일본 기업들은 자신들이 개발하면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고 글로벌 트렌드가 된다는 믿음이 강해졌다. 이러한 기술적 자만심은 휴대용 음악재생 기기 시장에 플래시메모리 기반의 MP3 플레이어라는 파괴적 혁신이 등장했음에도 MD(Mini Disc) 플레이어 등 기존 디스크 기반 재생 기기의 고성능화에 주력하는 결과를 낳았다. 앞서 살펴봤던 <혁신기업의 딜레마>의 그래프처럼 ‘하이엔드 시장의 요구 성능 궤적’을 넘어간 것이다. 또한 이동통신 서비스, 디지털 방송 등에서는 국가 간 합의로 글로벌 표준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한데, 일본은 독자 표준을 고집함으로써 ‘잘라파고스(Jalapagos)화[5]’를 자초했다.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을 주도했던 전자기기 시장의 과거 성공 경험들이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기업들은 낯선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사업 철수, 기업 간 사업 통폐합, 사업의 해외 매각 등 일본 기업들로서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유례없는 구조조정이 진행되었다. 경쟁력을 상실한 부문을 도려내고 핵심 역량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축소 지향적이다. 또한 핵심 역량 기반으로 새로운 성장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미래 지향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부실 부문을 잘라 내기는 했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세월이 10년에서 20년, 30년, 계속해서 길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기존 기업들이 부진해도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해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더라면 일본 경제는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봤던 핀란드 사례가 이를 말해준다. EU(유럽 연합)보다 높은 경제 성장률을 구가하던 핀란드는 노키아 몰락으로 2012년~14년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며 EU 성장률을 밑돌았지만, 스타트업 창업 붐에 힘입어 2016년에는 다시 EU 대비 높은 성장률로 복귀할 수 있었다.

사실 상황적으로 본다면 일본에서도 스타트업 창업 붐이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은 되었다. 노키아 몰락 이후 핀란드의 사례처럼 스타트업 생태계로 인력을 공급할 수 있는 통로인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진행되었고,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패러다임이 도래하면서 창업할 수 있는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라쿠텐(1997년 설립, 인터넷 쇼핑), DeNA(1999년 설립, 모바일 게임) 등 일부 스타트업의 창업을 제외하면 붐이라고 부를 정도의 스타트업 창업 열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선 종신고용 관행 때문에 사업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인력 조정이 크게 단행되지 않으면서 스타트업 생태계로의 인력 공급이 거의 없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의 인력 조정은 신규 채용 억제, 전환 배치, 노동시간 단축 등에 집중되었는데, 이는 기업의 인력 감축보다는 청년 실업률 증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구직난에 직면한 청년들이 창업에 나선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창업보다는 프리터(freeter), 니트(NEET)족 등[6] 대안적 생활 방식을 택하는 청년층이 늘어났다. 결국 일본에서는 기업들의 구조조정에도 스타트업 생태계로 인력이 공급되지 못하면서 스타트업 창업 붐이 조성되지 못했다. 이는 일본이 ‘디지털 패러다임’이라는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며 디지털 전환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일본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장기 불황에 빠지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일본 스타트업 생태계의 취약 요인


일본은 경제 규모 대비 스타트업 생태계가 매우 취약하다. 일본은 전 세계 명목 GDP의 4.0%(미국, 중국, 독일에 이어 세계 4위)를 담당하고 포춘 글로벌 500 기업의 8%(미국, 중국에 이어 3위)를 보유하고 있지만, 전 세계 유니콘 기업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6%(14위)에 불과하다. 일본 대비 경제 규모가 작은 캐나다(유니콘 기업 수 비율 1.6%), 브라질(1.4%), 한국(1.1%), 호주(0.7%)보다도 유니콘 기업 수가 적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패전 이후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기업가정신이 차갑게 식으면서 스타트업 창업 활동이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기업가정신이 식은 것은 우선 패전 이후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과 연관돼 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기 직전인 1940년 구매력평가(PPP) 기준 인당 실질 GDP는 미국의 47%였으나 패전을 선언한 1945년에는 인당 GDP가 미국의 11%로 쪼그라들었다. 전쟁으로 산업 기반 대부분이 파괴되면서 일본 경제가 근대화 이전 농업 국가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일본 경제가 고도성장하면서 1973년 일본의 인당 GDP는 미국의 69%, 1991년에는 미국의 85%로 증가했다[7]. 일본의 인구는 1967년 1억 명을 돌파했는데,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는 ‘1억 총중류(一億總中流)’란 말이 유행했다. 인구의 대부분인 1억 명이 중산층이란 의미로, 당시 일본 국민 대다수가 집, 컬러 TV, 자동차 등을 보유하며 그야말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었다.

앞에서 기업가정신은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약화된다고 했는데,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 경제가 짧은 시간에 고도성장을 구가한 만큼 일본 내 기업가정신은 빠르게 약화되었다. 신생 기업 수를 전체 기업 수로 나눈 창업률(firm entry rate)은 기업가정신의 지표 중 하나인데, 일본의 비농업부문 창업률은 1970년대까지 6% 수준을 유지했지만, 이후 감소하기 시작해 1990년대 전반부(1991년~1996년)에는 2.8%로 줄어들었다[8]. 더구나 종신고용, 연공서열제 등 일본 특유의 고용 관행은 기업가정신의 약화를 더욱 촉진시켰다. 일본의 창업률이 미국, 영국 등 다른 선진국의 절반 이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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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OECD(2017). Boosting productivity for inclusive growth in Japan.

(그림 3.4.4) 2000년대 주요 선진국의 창업률 추이


일본에서는 한번 들어가면 회사를 평생 다닐 수 있고,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월급이 오르고 승진도 되기 때문에 사회 초년생들이 굳이 위험한 창업에 도전할 이유가 없다. 또한 직장인들도 웬만해서는 안정적인 ‘평생직장’을 뛰쳐나와 창업하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비록 지금은 많이 약화되었지만 일본식 고용 관행은 여전히 창업 혹은 변화에 대한 도전이나 열정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가정신 모니터(GEM)의 조사 연구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GEM 조사가 시작된 1999년부터 참여해 왔는데, 기업가정신의 지표인 ‘총초기기업가활동(Total Early-stage Entrepreneurial Activity, TEA) 비율[9]’이 조사할 때마다 매번 매우 낮았다. 특히 70개국이 참여한 2014년 조사에서 일본의 TEA 비율은 3.8%로 수리남(2.1%)에 이어 끝에서 두 번째였다. 일본이 가장 최근 참여한 2022년 조사에서도 일본의 TEA 비율은 전체 49개국 중에서 43위였다[10]. 그만큼 일본에서는 스타트업 창업 활동이 저조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에서 창업 활동이 저조한 이유는 ‘기업가적 활동 여건(entrepreneurial conditions)’별 점수를 표시한 GEM의 방사형 그래프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래프를 보면 비교군 내에서 일본의 순위가 낮은 항목은 전문 서비스 인프라(19/19), 사회문화적 규범(17/19), 초중고의 교육 및 훈련(16/19) 등이다. 하지만 비교군 평균 대비 점수 격차가 가장 큰 항목은 사회문화적 규범이다. 사회문화적 규범의 점수가 낮다는 것은 창업, 기업가정신 등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인식 수준이 낮음을 뜻한다. 이는 앞서 살펴봤던 미국, 중국의 방사형 그래프와 크게 다른 점이다. 미국, 중국의 그래프에서는 사회문화적 규범의 점수가 비교군 평균 대비 높았을 뿐만 아니라 순위도 상위권이었다(미국 4/16, 중국 2/14). 결국 미국, 중국 대비 일본 내 스타트업 창업 활동이 저조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낮은 사회문화적 규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창업이나 기업가정신을 장려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데 스타트업 창업이 활발히 일어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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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4.5) GEM의 기업가적 활동 관련 일본의 제반 여건 조사 결과[11]




< 참고 자료 >

[1] 두 나라의 인구는 1995년 기준 미국 2.67억 명, 일본 1.26억 명이다. 2023년 기준으로는 미국 3.35억 명, 일본 1.25억 명이다.

[2]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 직전인 2017년 경제 규모에서 미국의 62.8%까지 따라붙었다. 2021년 그 수치는 75.5%에 달했고 이후 감소해 2023년 65.0%로 줄었다. 중국은 일본과 달리 인구가 미국의 4배가 되는 대국이다.

[3] NTT, 일본산업은행, 스미토모은행, 다이이치칸교은행, 후지은행 순.

[4] 과거의 관행이나 제도가 비효율적이고 현실에 맞지 않아서 버려야 함에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고수하는 사회경제적 현상을 말한다.

[5] 일본(Japan)과 갈라파고스(Galapagos)의 합성어. 갈라파고스의 생태계처럼 일본이 글로벌 트렌드와 동떨어진 시장이 되었다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6] 프리터는 프리(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을 말하며, 니트(NEET)는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약자로 근로능력이 있는데 취업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않고 쉬는 사람을 니트족이라 일컫는다.

[7] Okazki Tetsuji(2015.2.9). Lessons from the Japanese Miracle: Building the Foundations for a New Growth Paradigm. nippon.com. https://www.nippon.com/en/in-depth/a04003/.

[8] Kawai, H., Urata, S.(2002). Entry of Small and Medium Enterprises and Economic Dynamism in Japan. Small Business Economics, 18, pp. 41–51.

[9] 만 18세~64세 인구 중 초기창업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비율이며, 초기창업활동 참가자는 창업 단계에 있거나 창업한 지 3개월 이내인 신생 창업자(nascent entrepreneur)와 이 단계를 지났지만 창업한 지 3.5년 미만인 신생 기업의 소유 경영자(owner-manager of new business)를 포함한다.

[10] 한국은 2014년 조사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며, 2022년 한국의 TEA 비율 순위는 49개국 중 22위였다.

[11] GEM(2023). 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 2023/2024 Global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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