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지금까지 한국경제의 수출주도형 성장을 견인해 온 주력 산업이다. 변변한 기술과 자본이 없던 1960년대에는 노동집약적 경공업이 수출을 이끌었고, 경제 발전으로 어느 정도 자본이 축적된 1970년대 이후에는 자본집약적 중화학공업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반도체와 같은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이 주력으로 부상하였다. 이에 따라 수출 품목 구성도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는데, 한국 수출의 3대 주력 품목은 1970년 섬유, 합판, 가발에서 2010년 반도체, 선박, 자동차로 완전히 일신되었다.
제조업이 발전하면서 전체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971년 18.2%에서 2022년 28.0%로 대폭 증가했다. 같은 기간 OECD 국가들의 제조업 비율 평균이 20.2%에서 14.7%로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2021년 기준 주요 선진국의 GDP 내 제조업 비율은 일본 20.5%, 독일 18.9%, 미국 10.7%, 프랑스 8.9%, 영국 8.7% 등이어서 한국경제의 제조업 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한편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전 세계 상위권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가 1인당 제조업 부가가치, 제조업 수출액 등을 종합해 발표하는 ‘제조업 경쟁력 지수(CIP index, Competitive Industrial Performance index)’ 순위에서 한국은 2022년 기준 독일, 중국, 아일랜드에 이어 세계 4위이다.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1990년 세계 16위에서 2002년 10위로 뛰어올랐고, 2004년 이후에는 3~5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주력 제조업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주력 제조업의 생산 및 수출은 대부분 연평균 10% 이상 고성장했으나, 2010년대 들어서는 반도체를 제외한 주력 제조업의 생산 및 수출 증가율이 크게 둔화되었고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는 산업들도 나타났다. 10년 단위의 변화이므로 단기적 업황 부진의 영향이 아닌 장기적 추세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자료: 정은미, 조철, 김경유, 임태민(2023). 한국 주력산업의 구조 전환 방향과 정책과제. 산업연구원.
(그림 4.2.1) 제조업 생산 및 수출의 연평균 증가율 변화
2010년대 이후 제조업의 노동생산성도 큰 폭으로 둔화되었다. 한국생산성본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0년대(2011년~2020년) 제조업 노동생산성의 연평균 증가율은 2000년대(2001년~2010년) 대비 7.9%p 하락했다. 특히 제조업 내 비율이 높고 2000년대 제조업 노동생산성 증가를 견인했던 전자부품, 자동차, 조선 등의 노동생산성이 큰 폭으로 하락하며 제조업 전체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끌어내렸다[1]. 노동생산성 증가율 둔화의 원인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등 다양한 요인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세계경제가 금융위기 충격을 극복하며 빠르게 안정세를 되찾아 갔음에도 제조업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것은 노동생산성 둔화의 원인이 주력 제조업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 등 구조적 요인에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주: 산업생산 기준
자료: 한국생산성본부 생산성통계 DB
(그림 4.2.2) 한국 제조업의 노동생산성 증가율 추이
주력 제조업의 성장세 둔화 및 노동생산성 하락은 한국의 주력 제조업 대부분이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진입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석유화학, 자동차 등 중고위 기술(medium high tech)[2] 산업은 물론 무선통신기기 등 고위 기술(high tech) 산업 역시 성숙 단계에 들어섰다.
일반적으로 산업은 제품 수요와 시장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는 성장기를 지나면 성숙기에 진입한다. 제품 보급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시장은 신규 수요가 아닌 교체 수요 중심으로 바뀌고 시장 성장률 및 산업 생산 증가율은 정체되기 시작한다. 기술 혁신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후발 주자와의 기술 격차가 축소되고 시장 경쟁의 강도가 높아진다. 제품 가격은 하락하고 기업의 수익성은 악화된다. 산업 전체의 생산 능력 과잉으로 설비 가동률도 하락한다. 기업들은 예전처럼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어려워진다.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되는 것이다. 이자 비용을 감당할 정도의 수익조차 창출하지 못하는 한계기업들이 증가하고 이들은 제조업 전체의 생산성 증가를 더욱 제약한다.
한국의 주력 제조업이 이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주력 제조업이 성숙기에 진입하면서 한국경제는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성숙기 산업은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데 한계가 있을뿐더러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이 성숙기에 진입하면 글로벌 업계 구도가 재편된다.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들이 퇴출되는 것이다. 특히 성숙기에는 기업 간 제품의 품질 격차가 대폭 줄어들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면 퇴출될 수밖에 없다. 2009년 자동차보다 수출액이 많았던 액정 디스플레이(LCD)[3]는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수출 효자 산업이었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에게 밀리며 한국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무선통신기기 산업에서도 2000년대 한국은 3개사 체제였는데, 2010년대 이후 2개 기업이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1개사 체제로 바뀌었다.
주력 제조업의 성숙기 진입은 한국 제조업의 ‘노쇠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도체, 자동차, 선박해양구조물 및 부품, 석유제품, 철강판 등이 10대 수출 품목에 포함된 지는 벌써 30년이 넘었다. 한국이 이들 산업 분야에서 수출 경쟁력을 장기간 유지해 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성장 동력 산업의 세대교체가 미흡한 탓이기도 했다. 종합적인 경제개발계획이 7차를 마지막으로 종료된 1990년대 초반 이후 역대 정부는 몇몇 특정 산업 중심으로 신성장 산업 육성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지만 주력 산업의 세대교체로 이어지지 못했다.
특히 2000년 이후 10대 수출 주력 품목의 교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2000년 10대 수출 품목 가운데 2024년 10대 수출 품목에 포함된 품목은 7개나 된다. 더구나 석유제품, 합성수지 등 중고위 이하 기술 품목들 순위가 상승하고, 고위 기술 품목인 무선통신기기 순위가 하락했다. 무선통신기기는 해외 생산 확대의 영향이 크지만 국내 2개사의 사업 철수도 한몫을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한국의 10대 수출 주력 품목은 20년 넘게 지나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자료: 국가통계포털(KOSIS)
(그림 4.2.3) 2000년 vs. 2024년 10대 수출 품목 비교
주력 제조업의 ‘노쇠화’와 함께 취업자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제조업 근로자의 평균연령은 2001년 36.2세에서 2010년 38.6세, 2023년 43.1세로 대폭 증가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43.9세), 조선(44.4세) 등 중화학공업의 평균 연령이 높아진 가운데, 비교적 젊은 층 취업이 많은 전자부품 산업의 평균 연령도 2010년 33.4세에서 2023년에는 37.8세로 크게 높아졌다. 전반적으로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제조 기업들의 신규 고용 창출 능력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60세 이상 제조업 취업자 수는 사상 처음으로 20대 제조업 취업자 수를 넘어섰다.
이처럼 오랫동안 주력 산업의 세대교체가 거의 없다시피 하면서 제조업의 산업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진 산업은 자원 배분이 감소하면서 산업 규모가 작아져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들고, 유망 성장 산업은 자원 배분이 증가하면서 산업 규모도 성장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커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산업의 구조가 변화하고 성장 산업으로 자원이 이동하면서 경제의 역동성과 활력이 높아진다. 하지만 한국 제조업은 산업구조의 변화 폭이 줄어들고 있다.
제조업 13개 세부 업종의 부가가치 비율 변화를 통해 제조업 전체의 구조 변화 정도를 측정한 ‘구조변화지수’가 2000년대 이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2000년대 이후 제조업 구조변화지수는 1990년대의 절반, 1980년대의 1/3 수준으로 하락했다. 1990년대까지 활발했던 제조업의 업종별 부가가치 비율 변화가 2000년대 이후 크게 감소했다는 의미이다. 제조업의 구조변화가 둔화되고 활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 제조업의 구조변화지수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낮았다. 2000년~2009년 한국 제조업의 구조변화지수는 24개국 중에서 20번째였고, 2010년~2013년 구조변화지수는 25개국 중 24번째였다[4]. 한국이 글로벌 산업 변화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주: 2010년대는 2010년~2015년
자료: 이한득(2016.5.25). 한국의 산업구조. LG경영연구원.
(그림 4.2.4) 제조업의 구조변화지수 추이
< 참고 자료 >
[1] 정선영, 이솔빈(2021.4.25). 우리나라의 생산성 둔화요인과 개선방안. BOK 이슈노트, 2021-3. 한국은행.
[2] OECD는 기술집약 정도에 따라 제조업을 고위 기술(high tech), 중고위 기술(medium high tech), 중저위 기술(medium low tech), 저위 기술(low tech)로 분류하고 있다.
[3] 2009년도 수출액 상위 품목은 선박, 유무선전화기, 전자집적회로, 액정디바이스, 자동차 순이다.
[4] 이한득(2016.5.25). 한국의 산업구조. LG경영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