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호적인 대외 경제 환경

by 임 윤

세계화(Globalization)의 퇴조


1970년대 이후 한국경제가 고속 성장을 지속해 오는데 우호적이었던 대외 경제 환경이 바뀌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세계화(Globalization)의 퇴조이다. 세계화는 세계가 연결되고 하나의 경제 시스템으로 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가 연결되고 통합되면서 재화 등 유형의 것은 물론 자본, 지식 등 무형의 것도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한다. 세계화는 한국과 같은 수출주도형 경제가 성장하는데 필수적이다. 세계화의 정도는 세계 GDP 대비 세계 교역량(수출+수입)의 비율인 무역개방도(Trade Openness)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무역개방도의 변화 추이를 보면 세계화는 계속 확대되어 온 것이 아니라 시대별로 부침을 보였다.

세계사적으로 고대 실크로드 개척, 15~16세기 원양 항해술 개발 등으로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왔지만, 본격적인 세계화의 시작은 2차 산업혁명으로 구미 국가들의 산업화가 진전된 이후부터였다. 이 시기에는 구미 국가들의 화폐 제도가 금본위제로 단일화되고[1] 기차, 선박 등 운송 수단 발달에 따른 수송량 증대로 무역량이 증가하면서 세계화가 확대되었다. 하지만 1차, 2차 세계 대전 기간에는 각국의 애국주의 경쟁과 보호주의로 무역량이 급감하면서 세계화도 퇴조하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에서 44개 연합국은 국제 결제에 미국의 달러화를 사용하는 새로운 국제통화체제를 발족시켰다. 이에 따른 후속 조치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이 설립되었다. 미국 달러화가 기축통화가 된 것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이란 참화를 경험하면서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무역 확대가 필요하다는 믿음이 확산되었다. 무역으로 세계 각국이 서로 연결되면 전쟁이 쉽게 발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전후 경제 복구와 맞물려 무역량이 증가하면서 유럽, 일본 등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중국의 개혁개방, 소비에트 연방 붕괴 등으로 공산권이 세계경제 시스템에 통합되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창설로 전 세계적으로 무역장벽이 낮아지고 시장 자유화의 바람이 불었다. 글로벌 경제 협력이 강화되면서 세계화는 유례없는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으로 세계화 이면의 소득불평등 이슈가 부각되면서 세계화의 속도가 둔화되기 시작했다. 글로벌 공급망 측면에서 세계화는 생산 비용이 싼 신흥국에서 만든 제품을 선진국 소비자들이 저렴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즉, 제품의 생산지와 소비지가 분리되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비용 절감, 선진국의 물가 하락, 신흥국 경제 성장 등의 이점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선진국의 제조업 기반 약화로 숙련, 비숙련 노동자 간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세계화에 대한 불만도 커졌다. 지역적으로 보면 첨단산업의 중심인 실리콘밸리는 세계화의 혜택을 받은 반면, 미국 동북부 공장 지대인 러스트벨트(rust belt)는 제조업 공장의 해외 이전으로 피해가 집중되었다. 자유무역 확대보다는 소득 불평등 해소가 새로운 정치적 이슈로 부상하였다. 세계화가 정점을 지나 후퇴하는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zation)[2]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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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무역 개방도(Trade Openness) = 세계 교역량(수출+수입) / 세계 GDP

자료: IMF(2023.01). Geoeconomic Fragmentation and the Future of Multilateralism.

(그림 4.3.1) 세계 경제의 무역 개방도(Trade Openness) 추이


이제 세계화의 후퇴는 되돌릴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인 러스트벨트 유권자들의 표심을 등에 업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이를 잘 말해 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취임 연설에서 “매일매일 미국을 최우선으로 두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은 다시 한번 제조업 국가가 될” 것이며, “미국 노동자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무역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겠다”라고 공언했다. 미국 우선주의 및 제조업 부활을 위한 보호무역주의를 천명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만병통치약이자 ‘전가의 보도(傳家之寶)’는 관세이다. 그는 “관세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이며 제일 좋아하는 단어’라고 말한 바 있다[3]. 그는 관세를 높이면 기업들이 미국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관세’라는 전가의 보도 앞에는 동맹도 예외가 없고 미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도 쓸모가 없다. 트럼프 1기는 대중 무역전쟁이 주였다면 2기는 중국은 물론, 캐나다, 멕시코, EU 등 동맹국들과도 무역전쟁을 불사하고 있다. 미국의 무차별적 관세 부과를 상대국이 보복 관세로 맞서면서 글로벌 무역 장벽이 전례 없이 높아지고 세계경제에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트럼프의 무역전쟁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 부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트럼프 2기 통상 정책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국가들로 멕시코, 중국, 캐나다, 베트남, 독일, 일본, 대만, 인도, 아일랜드에 이어 열 번째로 한국을 꼽은 바 있다[4]. 그동안 세계화라는 순풍 속에 수출 확대를 통해 성장해 온 한국경제는 이제 ‘세계화 후퇴’라는 역풍을 맞고 있다.



중국의 제조강국 부상


중국경제의 대외 개방과 발전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경제 성장에도 크게 기여했다. 특히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한국의 대중 수출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싸고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하고 넓은 내수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대거 중국으로 진출하면서 중국 내 제품 생산에 필요한 부품 등 중간재는 물론 완제품 수출이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중국 제조업 수준이 낙후되었기 때문에 휴대폰, TV 등 전자 제품은 물론 생활용품, 식료품 등 필수 소비재에서도 한국산 제품의 인기가 높았다. 한국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5년 7% 수준으로 낮았으나,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해 2001년 일본과 EU를 추월하고 2003년에는 미국을 넘어서면서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 대상국이 되었다. WTO 가입 이후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은 ‘중간재 공급 – 최종재 생산’이라는 상호 보완 관계를 바탕으로 함께 성장했다. 한국 제조업의 중국 진출 분야도 의류 등 노동집약적 임가공 중심에서 자동차, 전자 제품 등의 조립 생산으로 확대되었고 2010년대 들어서는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첨단 부품 생산으로 고도화되었다.

그런데 한국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2018년을 정점으로 급감하기 시작했다. 반면 미국의 비율은 다시 증가해 한때 15%p까지 크게 벌어졌던 양국의 비율 격차가 2024년에는 1%p 미만으로 좁혀졌다. 한국 수출에서 중국과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2003년 수준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불과 20년 사이에 양국의 비율이 재역전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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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한국무역협회

(그림 4.3.2)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국가별 비율 추이


2018년 이후 한국 수출에서 중국의 비율이 감소한 데는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한한령(限韓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중국의 도시 봉쇄,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 등 대외적인 변수가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 원인은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 및 고도화에 있다.

일반적으로 개발도상국의 선진국 추격은 노동집약산업 → 자본집약산업 → 첨단기술산업 순으로 이뤄진다.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제조업은 1980년대 경공업, 1990년대~2000년대 중공업, 2010년대 이후에는 첨단기술산업으로 고도화되었다. 생산 방식도 임가공에서 합작생산 단계를 거쳐 자체생산이 확대되었다. 중국기업이 외자기업을 대체하며 중국경제의 주역으로 부상한 것인데, 중국 수출에서 외자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대 중반 60%를 상회했으나 2023년에는 28.6%로 대폭 축소되었다[5]. 산업구조 역시 저위 기술(low tech) 산업의 비율이 축소되고 고위 기술(high tech) 산업의 비율이 증가하였다. 해외 선진 기업을 단순 모방하던 기술 수준은 중국 정부가 ‘기술 자립’을 기치로 R&D 투자를 꾸준히 확대하면서 기존 제조업은 물론 6세대(6G) 이동통신, 로봇,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등 차세대 분야에서도 미국 등 선진국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중국 제조업이 고도화되고 기술 수준이 향상되면서 제조업 분야에서 한중 간 역학 관계도 변화하였다. 2000년대까지 한중 제조업은 한국의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 상호 보완 관계였으나 2010년대 이후에는 양국 간 기술 격차가 축소되면서 경쟁 관계로 전환되었다. 액정 디스플레이(LCD) 등 일부 분야에서는 이미 중국이 한국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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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전보희, 조의윤(2021). 한중 수교 30년 무역구조 변화와 시사점. 한국무역협회.

(표 4.3.1) 기술 수준별 한국 제조업의 대중 우위 변화


제조업 분야에서 한중 간 역학 관계 변화는 양국 무역에 바로 나타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대중 수출은 정체되는 반면 대중 수입은 증가세를 보이면서 2023년 대중 무역수지가 수교 이후 처음으로 적자로 전환된 것이다. 이는 그동안 한국이 경쟁 우위를 갖고 있던 중간재 산업에서 중국의 자립도가 높아짐은 물론이고, 역으로 중국산 중간재의 대한국 수출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제 더 이상 한국에게 대규모 흑자를 안겨주는 나라가 아니다. 더구나 미국의 광범위한 대중 견제에도 중국이 최대 숙원이었던 메모리 양산에 성공함으로써 향후 대중 무역수지 적자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6]. 또한 세계시장에서 한중 제조업 간 경쟁도 더욱 심화될 것이다. 중국의 제조업은 2010년대 초반까지 한국경제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지만, 이제는 최대 위협이 되고 있다.





< 참고 자료 >

[1] 금본위제는 화폐 단위의 가치가 일정량의 금 가치에 연계된 통화 제도이다. 당시 구미 각국은 자국 사정에 맞춰 금본위제, 은본위제, 금은복본위제 등 서로 다른 통화 제도를 운영했으나 1870년대 이후 점차 금본위제로 통일되었다.

[2] ‘슬로벌라이제이션’은 세계화(globalization)의 흐름이 둔화되는(slow) 의미로 영국의 경제 잡지인 이코노미스트가 처음 사용하였다.

[3] Bloomberg(2024.10.15). In Trump’s Economic Plan, Tariff Is ‘the Most Beautiful Word’.

[4] EIU(2004). Trump Risk Index: the global impact of a new US presidency.

[5] 정지현, 양평섭, 박민숙, 김홍원(2024.3.14). 2023년 중국 대외무역의 특징과 한중 무역에 대한 시사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6]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는 2023년 처음 적자를 기록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할 경우에는 2021년 이미 적자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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