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Rome wasn’t built in a day)”는 서양 속담이 있다. 로마라는 거대 제국이 하루아침에 건설되지 않은 것처럼 훌륭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또한 이는 좋은 성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필요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나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간이 촉박하다고 기초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집을 지을 수는 없다. 스타트업 창업 활성화도 마찬가지로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스타트업 10만 개 육성’, ‘유니콘 기업 100개 육성’과 같이 구체적 수치 목표들이 제시되고 있다. 마치 율곡 이이가 주장했다고 전해지는 ‘10만 양병설’과 유사하다. 이이의 제자인 김장생이 쓴 <율곡행장>에는 “10년이 지나지 않아 나라에 큰 화가 있을 것이니 10만의 군사를 미리 양성해 대비하자”는 이이의 주장이 실려 있다. 선조실록에도 병조판서였던 이이가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올린 상소문이 실려 있다. 이이는 “후일을 위한 대책을 세우지 아니하면, 환란이 말할 수 없이 많이 발생할 것”이라며 “밤낮으로 애태우며 고민한 계책”을 적고 있다. 이이는 군사력을 키워 대비하지 않으면 훗날 나라가 수많은 전란에 휩싸일 것을 우려했다. 그런데 이이는 군사를 양성하는 ‘양병(養兵)’보다는 백성을 기르는 ‘양민(養民)’이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라고 임금께 아뢰고 있다. 백성의 삶이 안정되지 않으면 군사를 모으기 어렵고, 모아 놓아도 오합지졸에 불과할 것이다. 백성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양민이 밑바탕이 되어야 비로소 군사를 기르는 양병도 가능하다. 병조판서 이이는 당장 눈앞의 상황만 바라본 미봉책(양민 없는 양병)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장기적인 전략(양민이 바탕이 된 양병)을 말했던 것이다.
향후 장기 저성장이 고착화될 위기에 직면한 한국경제의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스타트업 창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고 시급하다. 하지만 스타트업 창업 활성화도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창업 활성화가 사상누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이가 양병에 앞서 양민을 주장했던 것처럼 장기적인 전략 하에 추진되어야 한다.
사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한국에서도 스타트업 창업 붐이 불었다. ‘1차 벤처 붐’이라고 불리는 창업 열풍이다. 당시 한국에는 제도, IT 인프라, 인력 등의 측면에서 스타트업 창업에 우호적인 상황이 조성되었다. 1996년 기술주 중심의 거래 시장인 코스닥(KOSDAQ)이 나스닥(NASDAQ)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설되었고, 1997년에는 스타트업 창업을 장려하기 위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었다. 1998년에는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개시되면서 한국은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 국가로 부상하였다. 또한 IMF 외환위기로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채용 축소를 단행하면서 창업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대략 1980년대 중반 대학에 입학한 인력들이 대학원을 마치고 혹은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창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인터넷 서비스 기업, 게임 기업의 창업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과, 물리학과 등 이공계 학과는 대학 입시 수험생들이 선호하는 인기 학과였다. 따라서 당시 창업에 뛰어든 인력들의 학력 수준도 높았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한국은 전반적인 스타트업 창업 환경과 성과 측면에서 이스라엘보다 낫다고 평가되었다[1]. 그런데 닷컴 버블 붕괴 이후 한국은 창업 열기가 급격히 식은 반면, 이스라엘은 창업이 다시 증가하면서 ‘창업 국가(Startup Nation)’로 불리게 되었다. 한국이 이스라엘과 다른 길을 간 데는 다양한 이유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닷컴 버블 붕괴 이후 우수 인력들이 창업 생태계로 유입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닷컴 버블 붕괴 이후에도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엘리트 부대(8200 부대 등)에 대한 선호는 바뀌지 않았고[2], 엘리트 부대에서 전문 지식은 물론 실무 경험까지 습득한 우수 인력들이 창업 생태계로 계속 공급되었다. 반면 한국은 1990년대 초반까지 높았던 이공계 학과에 대한 선호도가 외환위기, 닷컴 버블 붕괴 등을 거치면서 ‘이공계 기피 현상’이 생길 정도로 크게 낮아졌다. 이공계 학과의 졸업생들도 창업보다 대기업 혹은 공공기관 취업을 더 선호했다. 경제 위기에 따른 고용 불안을 연이어 경험하면서 의사 등 전문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직장 선택 기준도 성장성보다는 안정성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우수 인력들이 창업 생태계로 많이 유입되지 않게 된 것이다.
스타트업 ‘1차 창업 붐’이 오래가지 못하고 꺼지면서 ‘2차 창업 붐’을 일으키려는 노력들이 그동안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 결과 스타트업 창업 건수가 계속 증가해 왔다. 하지만 2차 창업 붐이 1차 창업 붐처럼 일시적으로 불었다 꺼지는 그야말로 두 번째 ‘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2차 창업 붐에 이어서 3차, 4차 창업 붐을 계속해서 조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창업 건수는 닷컴 버블 시기를 빼면 특별히 ‘붐’이라고 부를만한 시기가 없이 꾸준히 증가했다. 1993년부터 5년간 한시적으로 이스라엘 정부가 1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며 창업을 촉진한 결과, 우수 인력과 자금이 자연스레 창업 생태계로 유입되며 창업이 계속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10만 개 육성’은 단순히 창업 건수를 10만 개 달성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창업 건수는 정책금융 등의 수단을 통해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창업 활성화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지 않는다면, 스타트업 창업 10만 개는 일시적 성과, 일시적 ‘붐’에 그치기 쉽다. 스타트업 창업 10만 개 달성을 불쏘시개 삼아 10만 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계속해서 창업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선순환 구조’는 좋은 현상이 반복해서 되풀이되는 구조를 말한다. 선순환 구조에는 다음의 세 가지 속성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 순환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발생적으로 되풀이된다. 처음에는 순환이 인위적으로 발생할 수 있으나, 이후 반복될 때는 인위적 개입 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한다. 둘째, 순환이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일시적이거나 간헐적, 불연속적으로 반복된다면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없다. 셋째, 순환 과정의 끝은 순환 과정의 처음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 새로운 순환의 발생을 촉진한다. ‘끝’이 ‘처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선순환 구조에서는 끝이 처음보다 더 중요하다.
스타트업은 통상 ‘창업 → 성장 → 회수(exit)’의 생애주기(life cycle)를 갖는다. ‘창업 활성화’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스타트업이 성공적으로 ‘회수(exit)’될수록 스타트업이 더 많이 ‘창업’되는 효과를 낳는 것을 의미한다. 스타트업이 창업되기 위해서는 인력, 기술, 자본 등 창업에 필요한 요소들이 창업 생태계로 유입되어야 한다.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인재, 혁신적 기술,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하는 모험 자본 등이 그것이다. 이런 필수 요소들의 결합으로 창업된 스타트업이 성장해 회수에 성공한다면, 이에 자극받아 더 많은 인력, 기술, 자본이 창업 생태계로 유입될 것이다. 회수에 성공한 창업 인력들이 재창업에 나서거나 새로운 스타트업에 재투자할 수도 있다. 이처럼 성공적인 회수는 더 많은 스타트업들이 창업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낸다. 더 많은 스타트업들이 창업되면 성공적인 회수도 더 많아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위적 개입 없이도 창업이 자연스럽게 활성화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창업 활성화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성공적인 회수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스타트업 창업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성공적 회수에 있다. 성공적 회수가 많을수록 창업에 나서려는 인재가 많아지고, 반대로 성공적 회수가 드물수록 인재들의 창업 기피는 심화될 것이다. 특히 전문직 등 안정적 직업을 선호하고 창업을 기피하는 등 기업가정신이 약화된 시기일수록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성공 모델, 즉 성공 신화 창출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공 신화 창출 외에도 인력, 기술, 자본 등 창업에 필요한 각 요소의 수준을 제고하고 창업, 성장, 회수 등 스타트업 생애주기의 각 단계별로 성공적 회수를 염두에 둔 지원을 강화한다면 창업 활성화의 선순환 구조 구축은 앞당겨질 것이다.
(그림 5.1.1) 창업 활성화의 선순환 구조 구축을 위한 과제
< 참고 자료 >
[1] 이민화, 최선(2015). 1차 벤처붐의 성과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평가. 중소기업연구, 37(4), 147-179.
[2] 이스라엘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입대해야 한다. 엘리트 부대 복무 경력은 진학, 취업, 창업 등에 유리하기 때문에 입대를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