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신화’라는 말을 많이 한다. 성공과 신화가 결합되었으니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공이 아니라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성공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일단 성공 신화가 만들어지면 뒤이어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난다. 뒤이은 도전자들은 성공 신화의 주인공을 보면서 꿈과 희망은 물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도전의식이 고취되는 것이다.
1998년 미국 LPGA 투어에 처음 참가한 스물한 살의 박세리 선수가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박세리 선수는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풀 속에 박힌 공을 처내는 투혼 끝에 극적인 연장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까맣게 탄 종아리와 양말을 벗었을 때 드러난 하얀 발의 선명한 대비는 IMF 외환위기로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과 함께 절대 포기하지 말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박세리 선수가 성공 신화를 만들어내면서 꿈의 무대인 LPGA의 문을 두드리는 한국 선수들이 많아졌다. 한국에서 통한다면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1998년 박세리 선수는 한국 선수 최초로 LPGA 신인상(Rookie of the Year)을 수상했다. 1998년부터 2024년까지 LPGA 신인상을 받은 선수는 총 26명이다[1]. 이 가운데 박세리 선수를 포함한 한국 선수는 절반이 넘는 14명이나 된다. 해외 교포 선수까지 포함하면 총 16명이다. 한국 선수의 LPGA 투어 우승 횟수는 박세리 선수 전에는 단 3회[2]에 불과했지만, 박세리 선수 이후 2024년까지는 210회나 된다[3]. 이는 LPGA 역사 상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우승 기록이다. 기간을 2000년~2024년으로 한정하면 한국의 우승 횟수는 미국보다 많다. 박세리 선수의 성공이 이런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남극의 펭귄 무리는 상어, 바다표범 등 포식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바다에 뛰어들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첫 번째 펭귄(First Penguin)’이 바다로 뛰어들면 뒤이어 온 무리가 우르르 뛰어든다. 박세리 선수는 모두가 반신반의하며 주저하던 LPGA 무대에 과감히 뛰어든 ‘첫 번째 펭귄’이었다.
이처럼 성공 신화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킨다. 이는 골프, 피겨 스케이팅, 수영, 축구, 야구 등 스포츠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공 신화는 사람들을 더 높은 목표로 이끄는 힘이 있다.
HP가 창업됐던 차고 앞에는 ‘실리콘밸리의 발상지(Birthplace of “Silicon Valley”)’라는 명판이 서 있다. 겉보기에 보잘것없는 차고가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명소가 된 것은 HP의 성공 신화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허름한 차고에서 창업된 HP는 단기간에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당시 미국의 젊은 창업가들이 꿈꾸는 성공 모델이 되었다. HP의 성공 신화가 창업 활성화의 트리거 역할을 한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도 잇따른 스타트업 성공 신화가 창업 활성화의 트리거는 물론 촉진제 역할을 해 왔다. 정부의 창업 지원 정책인 요즈마 프로그램(Yozma Program)의 시행으로 스타트업 창업이 증가하던 1998년 미라빌리스(Mirabilis)라는 메신저 프로그램 스타트업이 미국의 미디어 기업인 AOL에 4억 달러에 매각되는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20대 중반의 창업자들이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영웅이자 동경의 대상으로 부상하면서 창업 열기가 거세게 불었다. 미국의 경제 잡지 포브스는 이를 ‘미라빌리스 효과(Mirabilis Effect)’라고 소개했다. 그 이후에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대형 M&A 성공 사례가 계속 이어지면서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창업 의지를 고취했다. 2017년에는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스타트업인 모빌아이(Mobileye)가 이스라엘 스타트업 M&A 중 최대 규모인 153억 달러에 인텔에 매각되는 엄청난 성공 신화를 써냈다.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만 10억 달러가 넘었고 창업 생태계에 새로운 활력이 넘쳤다. 당연히 ‘모빌아이 효과(Mobileye Effect)’라는 새로운 신조어가 생겨났다.
중국에서 스타트업 창업이 활성화된 것도 ‘바트(BAT,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로 대표되는 중국 1세대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성공 신화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학력, 경력 등이 결코 특출하지 않았던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의 성공 신화는 당시 중국 대학생들은 물론 그들 부모의 창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마윈은 소위 평범한 ‘흙수저’도 하늘의 별을 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줌으로써 젊은 창업가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인 딥시크(DeepSeek, 深度求索)가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면서 창업자 량원펑(梁文鋒)의 고향에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등 량원펑 본인뿐만 아니라 고향, 모교 등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처럼 스타트업 성공 신화는 스타트업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환기하고 기업가정신을 고취하는 효과를 낳는다.
한국에서도 스타트업 창업 활성화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창업 건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공 신화를 많이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이나 중국 사례에서 보듯이 스타트업 성공 신화는 창업 생태계의 활력을 제고할 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세대들의 기업가정신을 일깨우고 자녀 진로에 대한 학부모들의 인식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 한국에는 사회통념상 ‘전문직’으로 불리는 분야에 우수 인재가 몰리는 현상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학교 성적이 좋으면 적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으레 전문직으로 진로를 정한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인식하는 전문직의 매력도가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스타트업 창업이 활성화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이런 인식과 풍토를 바꾸기 위해서는 스타트업의 성공 신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성공 신화는 그 어떤 정책 방안보다 스타트업에 대한 인식 변화 및 창업 활성화에 미치는 효과가 크다.
< 참고 자료 >
[1]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신인상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았다.
[2] 구옥희 선수가 1회(1988년), 고우순 선수가 2회(1994년, 1995년) 우승했다.
[3] 교포 선수까지 포함하면 262회이다(골프타임즈(2025.3.31). LPGA 한국(계) 선수 우승기록[3월 31일 현재] 통산 269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