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딥테크(Deep Tech)’라는 용어가 많이 언급되지만 그 의미나 정의는 명확하지 않다. ‘빅테크(Big Tech)’가 ‘시장 지배적인 거대 IT 기업’을 의미하는 것처럼, 딥테크는 ‘혁신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지칭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과학적, 공학적 혁신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을 아이디어 혹은 사업모델(BM) 기반의 스타트업과 구분하기 위한 명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체적으로 과학적, 공학적 혁신 기술 그 차체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딥테크에는 인공지능(AI), 로봇, 우주항공, 양자컴퓨터, 바이오 등이 포함되는데, 향후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예상되는 분야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마디로 딥테크는 차세대 혁신 기술 혹은 ‘넥스트 빅 씽(Next Big Thing)’과 유사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기술 패러다임의 대전환기이다. ‘디지털 혁명’이라 불리는 3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됐던 정보기술(IT)에 이어 인공지능(AI), 로봇 등 차세대 혁신 기술, 이른바 딥테크가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파도를 몰고 오고 있다. 1990년대 한국은 디지털 이동통신, 초고속인터넷 등 디지털 기술 발전에 발 빠르게 대응함으로써 ‘IT 강국’으로 부상하며 반도체는 물론 이동통신 기기, 디스플레이, 모바일 게임 등 IT 산업을 주도하는 핵심 국가가 되었다. 기술 패러다임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변화의 흐름을 잘 포착하고 이를 도약의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1차 벤처 붐’이라는 스타트업 창업 열풍이 불었던 시기가 바로 이 디지털 전환기였다. 반면, 일본은 디지털 전환기 대응에 뒤쳐지며 국가 경제가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이처럼 기술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의 주도권을 확보한 국가나 기업이 비약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이른바 ‘기회의 창(Windows of opportunity)이 열린다[1]. 하지만 이 기회의 창은 항상 활짝 열려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 전환기에 등장한 다양한 기술들 중에서 향후 산업과 시장의 표준이 될 지배적 디자인(dominant design)[2]이 부상하면 기회의 창은 닫힌다.
따라서 기회의 창, 혁신의 창(innovation window)이 열리기 시작한 지금 딥테크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딥테크의 주도권을 확보한 국가가 4차 산업혁명 시대 세계 경제 및 산업을 주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딥테크에서 기술 우위를 선점한 기업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새로운 빅테크(Big Tech)로 도약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의 딥테크 주도권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그림 5.4.1) 기술 패러다임 전환기와 기회의 창
한국은 인공지능 등 딥테크가 열어젖힌 기회의 창을 경제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기존 주력 성장 엔진인 제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는 한국은 딥테크를 통해 미래 성장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첫째, 딥테크 분야를 새로운 성장 산업으로 육성함으로써 주력 산업의 세대교체를 이뤄야 한다. 한국의 10대 수출 주력 품목 중 7개는 10대 수출 품목에 포함된 지 4 반세기나 될 정도로 한국 주력 산업의 구조가 고착화되어 가고 있다. 딥테크에 기반한 새로운 성장 산업의 육성 및 주력 산업의 세대교체는 한국 경제의 역동성 및 활력을 제고할 것이다.
둘째, 인공지능, 로봇 등 딥테크를 접목함으로써 기존 주력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 제조업 생산의 혁명을 불러일으키고 디지털 기술이 제품 및 서비스 혁신을 가져왔던 것처럼 인공지능, 로봇 등 딥테크도 제품 및 서비스 혁신은 물론 제조업 생산의 일대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비록 성숙기에 진입한 기존 주력 산업일지라도 딥테크와 결합된다면 품질은 물론 가격 경쟁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결국 한국의 미래 성장은 딥테크의 주도권 확보에 달려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의 딥테크 분야 경쟁력은 경쟁국 대비 미흡하다. 일례로 미국, 중국 대비 인공지능의 후발 주자로 여겨졌던 프랑스와 일본에서도 인공지능 분야의 유니콘 기업이 출현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은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유니콘 기업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차세대 기술 패러다임인 딥테크에 국가적인 대응이 늦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비록 미국, 중국처럼 인력과 자금을 대규모로 투입하지 못하더라도 한국이 잘할 수 있는 핵심 분야에 집중해 경쟁 우위를 확보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스타트업 정책도 딥테크 분야의 스타트업 창업 활성화 및 육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기회의 창이 열려 있는 지금 딥테크 스타트업들을 시급히 육성해야 한다. 기회의 창이 닫히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 디지털 전환에 대응이 늦었던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 참고 자료 >
[1] Perez, Carlota & Soete, Luc.(1988). Catching up in technology: entry barriers and windows of opportunity. Maastricht University, Open Access publications from Maastricht University.
[2] 시장에서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으로 받아들여지는 제품이나 기술을 말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시장은 초기에는 다양한 운영체제(OS)가 난립했으나 안드로이드와 iOS라는 두 개의 지배적 디자인으로 재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