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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첸시오 May 31. 2022

시리아 내전을 통해 본 국제사회의 방향성

변하지 않는 세상

1.서론

 시대가 변한 줄 알았다. 기술의 발전으로 분쟁도 새로운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것은 본래 야만적인 것 같다. 증오, 고통, 죽음만이 존재하고, 과거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임을 당했으며, 오히려 전쟁은 전략적으로 개인의 삶 속에 침투하려 하고 있다. 또한 전쟁의 원인 또는 문제의식이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되어 전쟁이 끝나도 새로운 전쟁(물리적 전쟁 뿐만이 아니라 정치적 전쟁, 분단 등)으로 열릴 가능성이 존재하게 된다. 

 시리아 내전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난민, 어린이들의 고통, ‘화이트 헬멧’, 폭탄테러 등으로 굵직하면서 자극적인 내용들이다. 국제적으로 주시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종종 뉴스에 노출되어왔던 만큼 현재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전쟁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사실 미디어에 노출이 줄어들고 있기에, 시리아 내전도 막을 내려가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보고서 작성을 위해 조사를 해보니, 아직 시리아는 지옥과 같은 무정부 상태 속의 전쟁 중이라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나의 문제의식은 국제사회의 지속성, 상황에 대한 미디어의 노출과 해석 등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관련 서적과, 논문, 다큐멘터리 등을 참고해 대안을 고민해 볼 것이다.     


2.배경

 내전의 직접적인 시작은 꽤나 사소해 보인다. 시리아의 어린 학생들이 혁명문구로 낙서를 한 것을 잡아서 고문을 하고,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과잉진압하면서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발화의 계기이며, 간접적인 배경들이 있다. 튀니지로부터 시작된 ‘아랍의 봄’, 1970년부터 시작 되었던 2대의 걸친 아사드 정권의 권위주의 체제, 물가상승, 청년실업 등의 경제문제들이 관계되어있다. 이 큰 문제들에 비해 사소한 낙서가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한 것은 특이하게 볼 수 있다.

 시리아의 현재와 같은 상황은 현 바샤르 대통령의 아버지 하페즈 정권 시절에 있었다. 당시국민들이 정권에 대항해 일어나자 2만명에 달하는 인명을 학살한 적이 있다. 이로 인한 트라우마는 국민들을 소극적으로 만들고, 두 부자는 복종하면 편안한 삶을 제공하고 반항하면 어떤 방식을 사용해서든 죽여버리는 정치를 해왔기 때문에 정권을 권위적인 측면에서 안정성을 유지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아랍의 봄의 영향이 주변국들에 비해 적었고, 경제문제에 대한 문제의식도 매몰되었다. 

 대규모로 확산된 시위에 치안부대는 발포했고,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으로 커졌는데, 이후 사망자들의 장례식에도 혼란 속에 또 다른 사망자가 나오고, 시위를 할 때마다 사망자는 계속해서 나왔다. 정부는 이를 의식해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연설을 해왔지만, 역시나 국민들의 신뢰는 사라지고 있었다. 저항이 거세지면서 조직적으로 변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향하는 ‘자유 시리아군’으로 내전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극단주의, IS, 쿠르드족, 터키, 미국, 러시아 등이 얽혀 시리아 내전은 정치적, 종교적, 국제이해관계 등으로 내전은 복잡해진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빈곤에 시달리고, 시리아 총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천만 명 이상이 고향을 등지고 유랑생활을 하거나(650만 명 추산), 아예 시리아를 탈출하여 난민 대열에 합류(420만 명 추산)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단지 국가 내부에서 일어나는 ‘내전’이라고 보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많은 국가, 조직들이 개입했고, 전쟁의 피해는 시리아의 민간인들이 떠안았으며, 이들의 고통을 많은 나라들이 인도적인 방향으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 많은 국가들이 자국우선주의, 이기주의로 변하며, 정치 또한 약자들을 타켓으로 정하며 지지기반을 만들어가는 포퓰리스트들이 성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으로 피해 본 이들은 미래가 없이 살아가고 있으며, 전쟁이 10년이 되어가는 중에도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3.국제사회의 개입

 앞서 말했듯이 주변국과 패권국가들이 내전을 부추기거나 개입되었다. 미국 정부는 시리아에 대해 항상 엄격한 태도를 계속 보여 왔다. 미국 정부는 1979년에 시리아를 테러 지원국가로 규정한 이후 끊임없이 제재를 계속해오고 있으며, 2004년부터는 시리아에 대한 제재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을 방해하려 한 시리아 정부에 대한 보복성 행위로 볼 수 있으며, 경제적인 제재를 강하게 하며, 패권국의 견제에 시리아의 경제는 악화되어갔다. 이후 2011년 평화적으로 이뤄진 시위에 과잉대응 한 시리아 정부를 비난하며, 정치인들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강화했다. 프랑스도 시리아의 반체제파의 시리아 국민평의회 구성원들을 적즉적으로 지원해왔고, 시리아 문제에 대해 유럽 연합 내부를 단합시키려 노력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시리어 정부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유엔 안보리에서 시리아 정부를 제재하는 안에 대해 거부권을 사용해 무산시켰고, 반체제파도 격렬한 무장 활동을 벌여왔다고 주장했다. 안보리 회의와 동시에 시리아에서 또 다시 사망자가 발생하는 과잉진압을 했는데, 러시아는 이 상황도 이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중국에 비해 러시아는 적극적인 옹호를 해왔다.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의 고위직에 많은 러시아인들이 파견을 나가있고, 중동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것이 목적이라 판단된다. 이 사이 내전의 종식이 지지부진해지며, 반체제파에서 또 다른 세력들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종파 간의 분열이 시작되었고 내전은 장기화 되었다. 반체제파는 민주화 세력 또는 권력 확보의 목적으로 분리되었다. 

 시리아 내전이 장기화되며 막대한 인명 피해는 물론 사회, 경제적 손실이 계속 발생됨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적극적인 개입을 주저하고 있다. 내전 상황에 돌입한지 불과 몇 주 이내에 NATO의 군사개입이 이루어진 리비아와 달리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 시도는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번번히 무산되었다. 반체제파가 이슬람주의 성향을 띠고 있다는 점은 미국과 유럽연합에도 부담을 주기 시작했고, 미국의 해외파병에 따른 피로감과 군사개입으로 인한 막대한 비용과 손실을 감수할 만큼 해결이 미국에게 절실하지는 않는 문제도 장기화의 원인이 되었다.     


4.문제점

 국제사회의 관심은 지속적이었지만, 국가 간의 손익을 판단하는 시점에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며 결정적인 도움은 되지 못하고 있다. 내전의 장기화는 시리아 정부에게 정통성을 안겨줄 수 있으며, 민주화를 열망하는 반체제파에게는 무력감을 줄 수 있다. 시리아는 이미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어려워졌다. 국제사회의 개입을 통해서라도 평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제사회의 개입은 체제의 명분으로 어느 한 편에 지원 또는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관점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방향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는 지속적으로 난민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애초에 난민이 발생하지 않도록 빠른 해결을 불러와야 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난민을 수용하기 위한 문제도 세계적으로 큰 과제 중의 하나다. 하지만 국가이기주의가 팽배해졌고, 난민들이 테러리스트들에게 이용되고, 더불어 이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등의 상황들이 만연해지며, 난민들의 정착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난민은 사회안보의 위협으로 인식되어져 가고 있으며, 이를 이용한 정치인(대게적으로 우파)들은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 시리아 내전에 대한 국제적인 문제의식 또한 퇴색되어 갈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세계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경향들을 잘 보여준다. 한국의 난민 수용은 굉장히 낮은 편이다. 지역적인 특성도 있지만, 난민심사도 굉장히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고,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사회의 질서가 위협받는 것이라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은 난민을 수용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였고, EU와 주변국들은 난민의 독일로의 이동 중에 거쳐가기 때문에 독일의 이러한 행보에 난민 수용에 대한 영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은 일관되어 난민 정책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쉥겐조약 불가입과 EU 난민정책에 선택적 불참을 이유로 방관적인 태도를 취하며 난민재배치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며 EU 뿐 아니라 UN 등에게도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미디어의 영향도 상당히 크다. 시리아 문제에 대한 미디어의 노출은 대부분 난민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필자는 보고서 작성을 위한 시각자료를 찾아보려 했지만, 시리아 내전에 대한 기본적인 개요에 관한 자료가 없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 정보들은 보통 비판적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 난민을 수용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독일의 입장, 노벨 평화상 후보에도 오른 ‘화이트 헬멧’ 등이 가장 많이 노출되어 왔다. 이들을 비판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안에 대해 과도한 영웅화로 인해 그것들만 노출된다면, 사안의 본질, 국제사회에 대한 방향성 등이 없어지고 영웅만이 남는다. ‘화이트 헬멧’의 경우는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를 당시에 주목을 받기 시작해, 다큐멘터리로 제작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넷플릭스로 제작된 <화이트 헬멧:시리아 민방위대>는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랐고, 수상까지 했다. 하지만 직접 촬영을 하고 감독역할까지 한 실제 화이트 헬멧 대원은 위험국가로 지정된 나라의 국민이기에 시상식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다. 이것이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패권국가와 주요국들은 인도주의적 차원이라는 명목으로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 세계의 공동체 일원이 아니라 국가적인 경계 안에서 각국의 이익과, 인도적 활동을 충분히 했다는 합리화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 선진국이라는 곳의 공동체는 폐쇄적이고 다른 인종, 종교, 난민 등은 위험세력으로 규정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는 받아들일 준비되지 않은 것이다.


5.결론

 시리아 내전은 이미 패권국들의 대결로 커졌다. 그들은 국제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 목표이며, 시리아의 평화가 우선과제가 아니게 됐다. 결국 전쟁이 끝나도 시리아의 평화가 올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미 시리아는 식민사업의 하나처럼 되었고, 정권교체 등의 변화가 온다고 해도, ‘해방’이라 규정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제적 공동체는 기술발전으로 인해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많은 국가들이 무기개발에 투자하고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우선이고, 수많은 경제문제, 전쟁, 제 3세계 등의 문제에 대해 등한시하게 되었으며 개개인의 변화가 곧 국가이기주의를 만들어가게 되었다. 분명 기술발전은 개인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었고, 물리적 거리와는 상관없는 공동체 커뮤니티를 양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줬다. 하지만 이런 기술들이 개인의 취향에 따른 것으로 전락해버리고, 세계 곳곳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자극적인 정보들을 접하며 왜곡된 정보들을 공유하기도 하며 오용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행보는 실로 안타깝다. 손익에 맞춰 한 국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두 편으로 나눠져 견제하며, 또 다른 전쟁을 하고 있다. EU의 난민정책은 난민들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지만, 이슬람에 대한 혐오, 테러 등으로 인해 생긴 왜곡된 이슬람의 인식은 난민들의 희망을 빼앗고 목숨을 부지하는 것 밖에 이유가 없어진다. 또한 EU와 UN의 정책들은 인도주의, 국제 질서의 목적보다는 이 안에서도 주요국들의 결정이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적극적인 활동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독일의 적극적인 난민 수용 태도로 인해 다른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것을 보면 영향력이 있는 국가들이 먼저 평화를 위한 행동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시리아 난민들이 세르비아 국경 부근에서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달아나는 사건이 있었다. 이 때 많은 취재기자들이 몰렸고, 한 헝가리 기자는 아이를 안고 뛰어가는 아버지의 발을 걸었고, 난민 아이를 걷어차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한 인간으로서 할 일이 아니기도 하지만, 미디어에서 정보제공을 하는 직종을 가진 사람이 저지른 일이기에 더욱 더 충격적이었다. 이 사건은 혐오범죄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혐오는 결국 미디어에서 생산된 것이다. 난민이 되기 전 자신의 일이 있었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에 종속된 대중들은 난민은 불쌍한 사람이고, 도와줘야하지만, 동시에 우리와는 먼 이야기이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두기, 경계를 하게 되는 것이다.

 통신 기술과 미디어는 큰 발전을 이뤘다. 이것은 우리가 세계 곳곳의 사건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해줬다. 그럼에도 인간은 공동체 보다는 이기주의를 택했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침체되었고, 그 문제들은 인간이 개개인의 삶에 집중하도록 회기 시키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느끼기 어렵고, 도덕관념은 변화하게 된다. 테러 범죄는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테러는 곧 이슬람의 짓이다.”라는 생각은 틀렸다. 이것은 또 다른 혐오이며, 또 다른 혐오와 범죄를 조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차별과 혐오, 테러의 순환에서 벗어나, 늦었지만 평화를 위한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각국의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고, 현재의 포퓰리즘, 팬덤정치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평화와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6.참고문헌

1)김종도, 박현도 엮음.(2012). 아랍 민주주의, 어디로 가나. 모시는 사람들.

2)구니에다 마사키 지음. 이용빈 옮김. (2012). 시리아(아사드 정권의 40년사). 한울.

3)윤성원. (2016). 시리아 난민과 영국. 유럽연구, 34(2), 1-22.

4)김한지. (2014). 시리아 내전 장기화 원인 분석. , 34(4), 5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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