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내게 위로 08화

감사와 사과

감사 인사와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

by 낙유

말을 안 듣던 딸아이가 얼마 전부터 기분이 좋을 때 '응, 고마워~', 쑥스럽거나 잘못했다고 느낄 때 '아, 미안'이라는 말을 붙이고 있다(기분이 좋을 때라는 전제조건이 있다). 유치원에서 감사 인사와 사과하는 기본 매너도 배운 모양이다. 떼쓰기만 하는 아이가 며칠 사이에 훌쩍 커버린 것 같아 흐뭇하다. 하지만 그만큼 사회에 적응하며 부딪칠 여러 가지 시련과 고난들을 생각하니 걱정도 되고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8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당시 나와 내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가 주의력이 부족하여 책상에서 연필과 지우개를 떨어뜨리기 일수였다. 떨어진 연필과 지우개가 자기 자리 바로 아래 있으면 모르겠으나, 앞자리나 뒷자리로 굴러가버리면 다시 줍기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 하는 수 없이 친구들에게 밑에 있는 연필을 주워달라고 부탁을 해야 했다. 나는 내 연필과 지우개를 대신 주워주는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이렇게 돕는 것이 인사를 받을만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아서다. 서로 어려울 때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주워준 연필과 지우개를 받은 친구들이 나에게 고맙다고 해도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앞자리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런 건 너무 당연한 건데 고맙다고 말을 해야 하는 거야?"

친구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눈썹을 쭈뼛세우면서

"고마우니까 고맙다고 하는 거지"라고 말하고선 휙 돌아앉았다.


내심 쿨해 보일 것 같은 나를 생각했는데, 오히려 친구가 훨씬 더 쿨 해 보여서 적잖게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할게 아닌 큰 호의를 받고 베푸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을 강요하여 감사 인사를 받지는 못할지언정, 도움을 받았으면 반드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면 좋겠다. 길을 가다가 모르는 분에게 도움을 드리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상대방은 별다른 반응 없이 '네~'라는 외마디로 지나쳐가는 경우가 있다. 그때 약간의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별다른 감사 인사가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가벼운 인사말 한마디가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도 하므로 인사말은 윗사람 아랫사람 가릴 것 없이 가능하면 많이 사용하면 좋다.


일상생활에서 '감사합니다'는 말은 많이 사용하지만 '미안하다'나 '죄송합니다'같은 사과는 잘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누구나 내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아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사과를 하기 전에 사과할 만한 일인지 또는 사과를 할 만큼의 잘못을 했는지에 스스로의 고민에 빠진다(고민에 빠지는 사건은 큰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러다 사과를 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고 상대방도 사과받을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상황을 쿨하게 받아들여 지나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사과를 하는데 아무런 거부감이 없는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훨씬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됨을 느낀다. 상대방이 정말로 잘못해서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닌 조심성과 겸손함이 배어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사과의 고민에 빠지는 순간만큼은 사과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은 일에도 감사 인사와 가벼운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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