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내게 위로 09화

마주하면 기분 좋은 사람

내일은 더 웃어 보길

by 낙유

우리 주변의 인간관계는 실타래와 같다. 각기 다른 존재이지만 풀어내기가 곤란한 만큼 얽혀 있는 것이다. 그중에는 나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도 있고 한 두 차례 마주 했다 지나치는 사람도 있으며 특별히 멀리 하는 사람도 있다. 성격도 모두 제각각일 뿐만 아니라 개성도 다양하다. 단 한 명도 똑같은 사람이 없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만나면 기분 좋은 사람이 있다. 특별히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부담이 아닌 편안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전주 출장이다. 전주에 있는 친구에게 출장 하루 전날 갑작스레 연락을 하여 출장 일정을 얘기했다. 다행히 점심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다고 한다. 친구의 회사도 나의 목적지와 매우 가까워 이동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약 한 달 전에 20~30년 지기 친구들과의 여름휴가에서 만났었지만 10명이 넘는 사람이 단체로 모이니 상세한 얘기를 나누기는 무리가 있었다.

출장 전날 집에서 서열 1위 님과 막창에 소주 한잔을 하고 일찍 잠이 들어 버린 탓에 새벽에 겨우 일어나 부랴부랴 짐을 쌌다. 친구에게도 빈손으로 갈 수가 없어 시골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햇과일 몇 개를 담아 챙겼다. 친구는 점심시간에 맞춰 기꺼이 차를 타고선 멀리서 전주까지 왔다며 맛있는 거 먹인다고 나를 데리러 왔다. 한 달여 만에 보는 얼굴이지만 여전히 반갑다. 언제나 그렇듯 인사말은 장난스레 대충 하고 서로의 표정으로 모든 걸 담아낸다. 세월에 변한 건 햇빛에 타고 덜 탱탱해진 피부, 볼 때마다 살이 쪄서 점점 커지는 덩치. 그리고 하나둘 보이는 잔주름으로 푸근함을 담아내는 보름달보다 더 크고 더 빛나는 얼굴이다. 언제부턴가 잔주름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무엇이든 포용하고 무슨 얘기든 다 들어줄 것만 같아서 편안하고 푸근한 느낌이 들어서다.

친구는 메뉴 선택권을 나에게 주었고 나는 한식을 좋아하니 한식당으로 가자 했다. 친구는 근처에 있는 짜글이를 소개했고, 손님들이 테이블마다 한가득 모여 바닥까지 긁어내는 모습이 너무도 내 스타일이었다. 벌건 양념과 돼지고기, 적당히 익은 김치와 양파, 콩나물이 잔뜩 담긴 짜글이와 역시 전라도라는 감탄이 나오는 수려한 밑반찬들에 군침이 돈다. 김치와 콩나물에 돼지고기를 싸서 먹는 이 맛은 크~ 황홀할 지경이다. 이래서 한식이 으뜸인 거다. 대한민국 바보 중 하나가 전라도에서 맛집 찾아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틀림이 없다.


첫술에 음식 맛은 봤으니 허겁지겁 먹으며 최근 근황과 묵은 얘기들을 따발총처럼 쏟아낸다. 서로 시간이 없음을 알고 있으니 밥을 먹는 건지 대화를 하는 건지 이쯤 되면 분간이 안된다. 음식이 조금 튀면 어떠한가, 그런 예절 따지면 단 둘이 편하게 밥 먹을 수 있는 사이가 아닌 거다. 한참을 얘기하다 보니 소주가 아쉽다. 둘 다 운전을 해야 하니 물로 그 허한 마음을 달래 본다. 못내 아쉬워 근처 카페에서 잘 먹지도 않는 음료를 사들었다. 헤어져야 할 시간인데 받아들이기 싫은 거다. 점심시간이 이렇게도 짧았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친구는 내가 새벽에 부랴부랴 챙겨 온 과일을 받고 너무너무 좋아했다. 빈손으로 오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고, 친구 덕분에 오랜만에 전라도 밥상을 받아보니 참 고맙다. 조만간 서울로 놀러 오겠다는 친구의 말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한다. 실제로 언제 서울에 올진 의미가 없다. 다음 만날 때까지 몸 건강히 잘 지내자는 말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정확히 설명하지 않아도 다 통한다. 이런 것이 '정'을 나누는 거다. 한주가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모르게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멀리서 서슴없는 친구를 만나니 잠시 쉬어가는 느낌도 들고 마음도 차분해진다. 내가 어디만큼 와 있는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나를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다.


오래된 친구사이가 아니더라도 업무적으로 혹은 취미생활 등으로 만난 사람 중에 편하고 기분 좋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나와 성향이 비슷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잘 웃는다. 친구와의 만남으로 내가 사무실에서 거의 웃지 않음을 알았다. 힘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항상 인상을 쓰고 있는데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광대가 될 필요는 없지만 불필요하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소심한 아집을 부리는 나를 이제는 그만 놓아주어야지. 내일은 좀 웃어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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