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소복이 쌓인 눈이 발길을 늦추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은 출근길에 어디선가 큰 고성이 들려왔다.
횡단보도 앞에서 코 속으로 들어오는 찬 공기에 흠칫흠칫 하며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데 고성이 점점 가까워져 바로 옆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너무도 신경질적인 고성이라서 남자 친구와 싸우는 줄 알았다(내가 아는 한, 연인끼리 싸우는 모습과 가장 비슷했다).
그런데 들려오는 한마디는 '아 엄마~!'
출근 중인 20대 젊은 여성으로 보였는데,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목소리로 인상을 쓰고 있었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짜증 내며 귀찮아하는 느낌이었는데 엄마랑 전화로 다투는 듯하다.
그 엄마 소리를 듣자마자 나도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아들~'이라고 부르는 한마디에 사랑, 감동, 벅참, 기대가 고스란히 담겨있어 따스함이 느껴지는 그 목소리가.
20대 사회 초년생 티를 벗을 때까지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직장선배들이 하는 말씀은 하늘과도 같기에 무조건적인 '예, 예'가 자동으로 나왔건만, 철없이 혈기만 왕성해서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인양 부모님 말씀은 하나하나 따져가며 이겨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나를 이기려 했던 적이 없었다. 이를 30대가 되고 나도 부모가 된 후에야 알았다.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은 그저 자식에 대한 노파심이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 행여나 다칠까 봐, 마음에 상처 입는 일, 곤란한 일 생길까 봐.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한들 부모 눈에는 그저 여리디 여린 자식일 뿐인 것을.
때로는 자식들이 장성하여 더 이상 부모로서 설 자리를 잃어 허무하다 느끼실지 모른다. 그러니 말벗도 되어 드려야 하고 잔소리하실 때에도 한 귀로 흘릴지언정 귀찮아하지 말고 잘 들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에 군말 없이 무조건 '예, 예' 한다. 단지, 같은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시면 그때는 다 알아 들었다고 한마디 붙인다. 그러다 보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한다.
요즘에는 같은 말을 반복하시는 이유가 사실은 진짜 하고 싶은 얘기가 따로 있는데 망설이시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한다.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하심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도 언젠가 다 컸다며 부모 말을 잔소리로 듣고 귀찮아할 텐데 그럼 그땐 나도 내 부모처럼 '허허, 그래' 해보련다. 그리고 나에게 짜증 섞인 말을 해도 상처받지 않으련다. 모두 다 지나가는 과정임을 알기에.
부모님과는 싸울 필요가 없다. '예'라고 대답하고, 추후 상황에 맞게 적용할지 말지만 판단하면 된다. 부모님의 목소리가 그리울 때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