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을 갔다가 일찍 퇴근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라면 장모님 대신 직접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간다. 하지만 정말 아주 매우 심히 제발 간절히 한 번만 간곡하게 부득이하게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휴... 하원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시간이 조금 남는데 보통 서점을 잠깐 들르거나 했다.
헌데 날이 더워서 그런지 스트레스가 소파 밑의 먼지처럼 시야를 피해 그 몸뚱이를 점점 키우고 있던 모양이다. 집에 문을 모두 열어 환기를 할 때면 바람 따라 굴러 나오는 새카만 먼지처럼 눌려있던 스트레스도 불쏘시개만 있으면 금방이라도 활활 타오를 것만 같았다.
소주 한잔이라도 들어가면 기어코 노래방에서 소리를 질러줘야 하는데 요즘은 술을 먹지 않으니 몸 건강은 좋아졌음에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아 정신 건강이 좋지 않은 이 매우 불편한 상황.
혼자서 어디 잘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소심 소심 소심한 성격에 큰 마음먹고 코인 노래방을 갔다. 그런데 원래 코인 노래방이 이렇게 많았나? 싶었다. 역 주변에 검색해 보니 편의점 다음으로 많은 게 코인 노래방이었다. 맨 정신에 노래 부르기란 혼자 차 타고 운전할 때 빼곤 없는데 옆방에 내 노래가 들릴 생각을 하니 또 소심해졌다.
코인 노래방 입구를 들어가 요리조리 살펴보고 제일 사람이 없고 구석진 곳에 들어가 앉았다. 일단 여기까지는 성공. 한숨 돌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밖에서 왁자지껄 소리가 나더니 초등학생 아이들이 우루루루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것도 하필 많고 많은 자리 중에 내 바로 옆이라니. 겨우 진정시킨 심장은 다시 쿵쾅거리고 소심해지기 시작했다. 한데 또 자리를 옮길 용기도 나지 않았다. 옆자리에 초등학생들이 있어서 소심해졌는데 자리를 옮기는 것도 소심해서 움직이질 못하는 불편한 상황. 이 무슨 심리상태인지 나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아저씨가 아닌가. 내가 저만할 때 아저씨들은 거침없고 눈치 보지 않는 마초 같은 늠름한 모습이었음을 기억해 내고 아무렇지 않은 척 노래를 불렀다. 노래의 'ㄴ'자도 모르고 노래를 유튜브로 배웠기에 흉내만 내려다보니 자꾸 음이탈이 났다. 그런데 옆방에서 깔깔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라서 노래도 잘 부를 것 같았는데 막상 음이탈이 빈번하니 아이들끼리 키득키득 웃음을 참으며 듣다가 숨이 차올라 웃음이 터진 듯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생각하니 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 나도 모르게 깔깔깔 웃어버렸다. 그러자 마치 영원 같았던 몇 초의 정적이 흐르고... 아이들은 숨죽이고 있는 그 분위기가 너무 무겁고 어색했는지 문을 박차고 끼야~ 하면서 후다다닥 나가버렸다. 그제야 진정한 자유가 된 이 아빠이자 아저씨라는 사람은 편하게 노래를 몇 곡 불러 재꼈다. 음이탈은 덜 나왔고 혼자서 뭔가 은밀하게 나만의 시간과 장소에서 스트레스를 푼다 생각하니 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 킥킥대며 신이 났다. 가끔 혼자서 영화나 뮤지컬을 보고 오는 아내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그 흡족한 표정의 감정이 이런 것이겠구나 했다.
아내의 흡족한 얼굴을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남편이자 아빠이자 아저씨인 이 사람이 더 분발해야겠다.
코인 노래방이여, 아빠들을 위해서라도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