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내게 위로 12화

아빠의 일탈 일기

코인 노래방 방문기

by 낙유

출장을 갔다가 일찍 퇴근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라면 장모님 대신 직접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간다. 하지만 정말 아주 매우 심히 제발 간절히 한 번만 간곡하게 부득이하게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휴... 하원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시간이 조금 남는데 보통 서점을 잠깐 들르거나 했다.


헌데 날이 더워서 그런지 스트레스가 소파 밑의 먼지처럼 시야를 피해 그 몸뚱이를 점점 키우고 있던 모양이다. 집에 문을 모두 열어 환기를 할 때면 바람 따라 굴러 나오는 새카만 먼지처럼 눌려있던 스트레스도 불쏘시개만 있으면 금방이라도 활활 타오를 것만 같았다.


소주 한잔이라도 들어가면 기어코 노래방에서 소리를 질러줘야 하는데 요즘은 술을 먹지 않으니 몸 건강은 좋아졌음에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아 정신 건강이 좋지 않은 이 매우 불편한 상황.


혼자서 어디 잘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소심 소심 소심한 성격에 큰 마음먹고 코인 노래방을 갔다. 그런데 원래 코인 노래방이 이렇게 많았나? 싶었다. 역 주변에 검색해 보니 편의점 다음으로 많은 게 코인 노래방이었다. 맨 정신에 노래 부르기란 혼자 차 타고 운전할 때 빼곤 없는데 옆방에 내 노래가 들릴 생각을 하니 또 소심해졌다.


코인 노래방 입구를 들어가 요리조리 살펴보고 제일 사람이 없고 구석진 곳에 들어가 앉았다. 일단 여기까지는 성공. 한숨 돌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밖에서 왁자지껄 소리가 나더니 초등학생 아이들이 우루루루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것도 하필 많고 많은 자리 중에 내 바로 옆이라니. 겨우 진정시킨 심장은 다시 쿵쾅거리고 소심해지기 시작했다. 한데 또 자리를 옮길 용기도 나지 않았다. 옆자리에 초등학생들이 있어서 소심해졌는데 자리를 옮기는 것도 소심해서 움직이질 못하는 불편한 상황. 이 무슨 심리상태인지 나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아저씨가 아닌가. 내가 저만할 때 아저씨들은 거침없고 눈치 보지 않는 마초 같은 늠름한 모습이었음을 기억해 내고 아무렇지 않은 척 노래를 불렀다. 노래의 'ㄴ'자도 모르고 노래를 유튜브로 배웠기에 흉내만 내려다보니 자꾸 음이탈이 났다. 그런데 옆방에서 깔깔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라서 노래도 잘 부를 것 같았는데 막상 음이탈이 빈번하니 아이들끼리 키득키득 웃음을 참으며 듣다가 숨이 차올라 웃음이 터진 듯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생각하니 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 나도 모르게 깔깔깔 웃어버렸다. 그러자 마치 영원 같았던 몇 초의 정적이 흐르고... 아이들은 숨죽이고 있는 그 분위기가 너무 무겁고 어색했는지 문을 박차고 끼야~ 하면서 후다다닥 나가버렸다. 그제야 진정한 자유가 된 이 아빠이자 아저씨라는 사람은 편하게 노래를 몇 곡 불러 재꼈다. 음이탈은 덜 나왔고 혼자서 뭔가 은밀하게 나만의 시간과 장소에서 스트레스를 푼다 생각하니 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 킥킥대며 신이 났다. 가끔 혼자서 영화나 뮤지컬을 보고 오는 아내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그 흡족한 표정의 감정이 이런 것이겠구나 했다.

아내의 흡족한 얼굴을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남편이자 아빠이자 아저씨인 이 사람이 더 분발해야겠다.


코인 노래방이여, 아빠들을 위해서라도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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