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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엽 Jun 18. 2023

쓴 입

<쓴 입>



별일이야

불 꺼진 거실에서 손뼉을 치시네

요즘에도 그리 여린 마음 있는지


양손을 짝하고

발 동동 구르다가 무릎을 꿇고

모호한 표정으로 입을 뻥긋


뭐라고요

들리지 않으니 창을 열어봐요

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라고


괜찮지 않을까요

도시의 밤에 검은 창 하나 더 느는 일

슬퍼하는 건 따스한 이들의 특권이니


그나저나 무어라 불러야 좋을지

당신이 어떻게 웃는지

이름이 뭔지도 몰라요 난


사각형 창문으로 입을 삐죽 내밀고선

빠금빠금 숨을 몰아쉬고

살짝 뛰어올라서 양손을 짝


분명

작은 물고기 중에

어울리는 이름이 있었던 거 같은데


잘된 일이겠어요

결백한 타인을 알지 못하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겠어요


실은 저도 입이 써서 큰일이었답니다

화단에 붉은 꽃이 지지 않았으면 하며

노심초사하고 있었답니다


저기요

체조를 마치고 나면 잠자리에 드세요

미지근한 물 한 잔 마시고서요


그러면 괜찮아지느냐고 묻지 말아요

피차 밤을 지새우는 처지에

거짓말할 순 없겠어요


안녕

설익은 잠과 미련이 목구멍을 넘으면

아무 말 할 수 없을 테니 미리 인사를 건넵니다


웃자란 순 쳐내고 나면

들끓는 너울이 지나오면

쓴 입에 미소라도 머물기로 합시다


그러니 손뼉을 짝하고 치세요

베갯잇으로 눈물을 훔치세요



*


그림_밤늦게체조하는이웃_2023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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