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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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단 바닥에 닳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는 양
도시의 그을음 질질 끌고 와서 곁에 선 너는
한강이 보이는 남향집이 좋다 한다
그래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코가 아플 지경으로 풍기는 사향에 속이 울렁인다
새빨간 틴트와 야경이 뒤섞여 입 없는 소리 윙윙 운다
서서히 멀어지는 거야말로 끔찍한 일이라
떠나는 곳도 연락처도 알려주지 않겠다고
가끔 편지를 쓰겠다 하며 주소를 묻는다
어떤 영화에서 본 건지
이제 떠날 용기가 났는지
애써 묻지 않기로 했다
그래 근데 기다리는 사람은
상대 생사를 알 수가 없으니
더없이 끔찍한 이별이 아닌가 물으니
단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뎅그런 두 눈 반짝이며
편지가 오지 않거든 죽었다고 생각하란다
어떡해도 지는 게 꽃이라면
색이라도 아름다워야 한다며
확신에 찬 모습에 눈이 아리다
우리 울다가 웃다가 갈비뼈 부러져
새카맣게 탄 마음 삐져나왔나 싶어
고개 파묻고서야 알았네
흙발로 어지럽힐 용기야말로 사랑의 증명임을
글 :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그림 : 다운타운
231212 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