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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엽 Dec 29. 2023

뉴타운 에피고니즘, 낱장

겨울밤 단상




뉴타운 에피고니즘, 낱장






***










7.


저마다 해결하지 못할 문제 하나쯤 있는 도시에서는 사랑할 수 없어 우는 사람이 아주 많다네 다들 사랑으로-사랑으로 뛰어드는데 닫힌 쓰레기통 앞 시궁쥐처럼 찍찍 소리 내며 애원해도 정문 뒷문 창문 구문口吻 전부 고장 난 스크린 도어에 막혀 발을 동동 구른다




간혹 열린 문 있어 들어가면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있대도 휑덩하여 이질감 이루 말할 수 없다─ 한데서 선잠 드는 게 고작이고 이보세요 하고 누굴 잡고 길 물어보는 짓거리는 눈치 없는 포교꾼ㆍ치기배마저 멸종해 버린 작금엔 아무도 하지 않는 덜떨어짐이란다








2.


별안간 당신은 여기 뉴타운에서 길 잃고 방금 나눈 대화가 마지막이 된다면 영원이라고 불러도 될는지 물었다 음- 하고 운을 떼고서 한참 끙끙 앓는 소리다 고민 끝에 조금만 천천히 영원이 시작도 전에 끝날까 두려워서 미치겠다는 너절한 답이 튀어나왔다


도둑놈 잡으러 뛰쳐나온 사람처럼 놀란 눈하고 이내 낄낄 웃다가 처참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라 외려 진실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담담한 마음에선 계피 사탕 냄새가 난다








4


흰 화면 점멸하는 텍스트 커서


자기애는 강박적으로 공백을 두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메모








6


LED 등이 희번덕이는 터널에 진입할 때 새 기억이 감쪽같이 덮어씌워 졌고 더는 유예할 수 없어 이름을 붙였다 당장 이해할 수 없다면 제목은 무어라도 좋지 않은지 물으니 내비게이션이 대신 답한다 좌로 우로 움직이며 자가용 택시 승합차 버스 한길에 나앉은 고양이 비틀스처럼 건널목에 자리 잡고 시위하는 장애인 무리와 부딪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사랑의 동시대성이라고




오-신이시어 제발! 오늘도 예술가 한 무리 나와 애저녁에 죽은 현시대를 어루만지며 골동품으로 만들어보고자 헛수작 부린다








9


***굵게강조***사랑과평화***기울임****친절이(로)무장된***분쟁을배제하는***고급연산***p.s.***상실없는***결괏값도출***상실에관한지난기록을출력합니다***


오래도록 공들인 평온이 무너지는 건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분노는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향해야 한다는 다짐은 서툴게 내린 커피 맛이다 정확히는 넘친 커피 위로 재떨이가 꼬꾸라진 직물 시트를 핥는 맛이다








5


행복만이 정의로운 사회에서 슬픔의 증거는 대체로 미장되지 않은 저변에 깔려있다 고로 잿더미 철학 위로 웃자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말은 (아무리 진실하대도) 위선이 되기 마련이다 이번에 재발간된 세련된 표지의 철학서를 덮고 낡은 숨을 토했다 역겹다거나 권태롭다거나 그만 살고 싶다는 이유는 아녔다 머리에서 발가락으로 발가락에서 머리로 오르내리는 거센 수치심에 까무룩 잠이 밀려드는 까닭이다




고통에 익숙하다며 헤실대는 것은 머잖아 수치심에 잠식된다는 신호이니 서둘러 귀가해야만 했다 피리 부는 교통 봉사자의 신호에 맞춰 샛길로 빠지려 몇 번이나 팔을 옴짝댔는데 과도하리만치 안전을 추구하는 4차 산업혁명 세상에선 핸들을 꺾어 차선을 벗어날 권리도 기업ㆍ국가ㆍ사회적 신뢰도와 직결되어 자유를 줄 수 없다고 한다 결국엔 막히는 공도에 끼어 앞차 뒤차 꽁무니 졸졸 쫓으며 안전가옥으로 향할 뿐이다 안전하고 빠른 길의 이명은 모두가 알고 있어 꽉 막히는 OO로 O길




똑똑똑-똑! 시퍼렇게 멍든 문이 열리거든 강도가 든 것이므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날 것이며, 닫혔으면 열쇠가 없어 부랑자 신세다 눈 뜨는 장소가 어디든 연즉 살을 명이라 소리 내지를 뿐 오늘에서 떨어져 나간 어제와 타자화될 내일을 명확하게 분간할 수 없다








10


오가는 길 둘러보니 몸도 마음도 뉠 곳 없는 도시에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며 엉엉 우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저기 이보세요 그렇게나 슬퍼할 거 없겠습니다 어찌 보면 이별로 영원한 사랑이 완성될 테니까요-! 용기 내어 주접떠니 돌아오는 건 악담뿐이다 오기가 생겨서 더 까불다가 궁둥짝 걷어차이고 현관에 고꾸라졌다 인적 없는 데는 여기가 제일인지 냉기만 팽팽 돈다



홈스윗홈-M



뉴타운 에피고니즘, 낱장  

    그림 : 홈스윗홈-M  

    231229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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