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단상
누구에게나 그리 친절해요
아녜요 모르겠지만 사실요
만나고 돌아오는 날엔 어김없이
정원에 파놓은 구덩이를 찾아요
웅크려 숨거든 맘은 편해서요
잔별 오소소 떨어지면 가쁘게 일어나
뜨뜻한 흙만 추려 쌓기 시작합니다
고양이 뒤통수처럼 보송한 흙더미
조만간 찾아오실까 먹도 갈아요
쓸 말도 없으면서
언젠가 숲이 될까요
가문 마음 다 거두면은 말이에요
새벽이 추워서 달달 떠네요
이 밤 지나면 미워할 수 있겠네
구덩이에 얼굴을 파묻고 외쳐요
죽은 사람 부르는 양
지평에 얼룩덜룩한 빛깔 보면
까무룩 잠은 밀려오는데 막상
쓰러질라치면 또 아쉬워서
서산에 샛별 자국 보다가
소낙비 들이켠 그네 따라
꺼억꺽 소리 내어 웁니다
언젠가 강이 될까요
얹힌 맘 전부 토하거든 말이에요
갈쌍한 눈 달처럼 빛나네요
드는 것 없이 고요하다면야
나는 것도 없어야 하건마는
숨 가쁜 오뉴월 열병 탓에
심장이 붓고 녹작지근해서
어쩌나 아무래도 당신이 좋은 나는
미움 하나 배우려다 동살이 잡혀서
글 : 내 구덩이
그림 : 밤, 정원
240824 퇴고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내내 움켜쥐고 있던 글 하나둘씩 놓아줄까 해요.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