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똥구리 Feb 11. 2024

금산원정대(전)

봄이 왔다. 아버지는 쇠스랑을 들고 흙을 파기 시작했다. 두어 평 땅을 일구어 조그만 인삼밭을 만들었다. 귀퉁이에 참나무 기둥을 세우고 햇빛 차단막을 덮어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아버지는 보리쌀 같은 인삼 씨앗을 한 알 한 알 정성껏 심었다.


과연 싹이 날까? 뿌리를 내릴까?      


인삼밭의 발단은 지난겨울 금산 여행이었다. 겨울이면 꼭 한두 번 감기에 걸려 고생을 한다. 인삼을 먹으면 몸이 따듯해진다 하여 아버지에게 금산에 인삼 사러 가자고 농담처럼 말했다. 아버지는 반색하며 이번 주말에 당장 가자 하였다. 마침 큰누나도 대전에 일이 있어 다 같이 금산 찍고 대전 들려오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아버지, 엄마, 큰누나, 매형 그리고 나와 달님이 까지 여섯 명의 금산원정대가 꾸려졌다.


한강을 건너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잊고 있던 지난날들이 아버지의 추억담에서 어머니의 고생담에서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부모님 어렸을 적 이야기, 신혼 시절 이야기, 전설 같은 할머니 이야기, 산골짜기 외갓집 이야기. 여러 번 들은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신기하고 흑백 영화를 보는 듯 아련하다.


금강변 휴게소에서 잠깐 쉬고 금산 IC를 빠져나왔다. 네비게이션 없이 아버지의 안내로 금산시장을 찾아갔다. 아버지는 금산 지리에 밝다. 젊어서 인삼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다. 장날도 아니어서 그런지 아직 쌀쌀해서 그런지 금산시장은 한산했다.     


체육관처럼 커다란 시장은 낮은 칸막이로 구획된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상호만 다를 뿐 똑같은 아줌마들이 똑같은 인삼을 팔았다. 아버지를 따라 가게마다 가득 쌓인 인삼을 구경하고 향긋한 삼향을 맡았다. 


나에게 금산시장은 그냥 시골 장이지만 아버지에게는 청춘이 배어 있는 추억의 장이다. 지금은 인삼이 흔하지만 그때 인삼은 산삼처럼 귀하고 재배하기 어려운 특별한 작물이었다.     


젊은 아버지, 지금의 나보다 이십 년이나 젊은 아버지는 인삼 농사를 해보려고 금산을 찾았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시대, 쉽게 비법을 알려주지도 않았고 인삼 씨앗이나 씨삼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젊은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고 어렵고 힘들었지만 마침내 인삼 농법을 배우고 씨삼을 구해 대둔산 넘어 양촌에 인삼밭을 일구었다.


인삼 농사에는 많은 농자재가 필요하다. 지금은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농자재가 너무 흔하지만 그때는 모두 만들어 써야 했다. 나무를 잘라 총대를 만들고 갈대와 짚을 엮어 발을 만들었다. (19.2.13, 24.2.11) 

ⓒphotograph by soddongguri('18.11.3)


작가의 이전글 "태수야, 고마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