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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하루는 맑음 Sep 12. 2024

4. 민들레 홀씨처럼 홀연히 날아가 버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23살의 터닝포인트가 반쪽짜리였을 뿐이란 걸 알려준 첫 남자친구는



정말 별똥별같이 갑자기 제 눈앞에 나타났어요.

여느 때처럼 카페알바를 하고 있을

눈에 조금 익은 손님이 다가와 말을 걸었어요.


"혹시 남자친구 있으세요?"


그게 그와의 첫 시작이었어요.




너무 설렜던 기억이에요. 그 사람이 너무 좋아서 설렜다기 보단

나도 어느 평범한 사람과 같이 연애를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다가오는 몇몇 남자들은 있었지만, 대부분 피해 왔었는데 이상하게 그날만큼은 그냥 받아들이고 싶었어요.


그렇게 벚꽃이 아름답게 피던 4월 저의 첫 연애가 시작됐어요.

모든 것이 좋았어요. 첫 데이트도 좋았고, 둘이서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고 하는 과정들이 행복했어요.

한 번은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 지나가지 않았으면 해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어요.

그만큼 좋았던 연애였어요.


하지만 초창기엔 경계 태세로 상대를 대했었어요.

사람에 대해 완벽한 믿음을 줄 수 없는 상태였어서, 전 항상 그 사람과의 끝을 생각하며 만났어요.

만약 모든 것을 줬는데, 그 친구가 떠나간다면 정말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그 당시 세계여행을 가려고 준비 중이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 1년 정도 사귀었을 때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요.




"나 1년 뒤에, 1년 정도 세계여행 갈 거야."

남자는 당황스러움과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어요.


"그럼 나는?"

저는 그 남자의 대답에 더 당황했어요. 왜 그걸 나에게 묻지? 결혼할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어? 네가 헤어지고 싶으면 지금 헤어져도 괜찮아. 너에게 선태권을 주려고 미리 말해주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남자는 갑자기 눈물을 흘렸어요.

너무 잔인하고 차갑다고 하면서요.



남자가 우는 것을 살면서 처음 본 저는 엄청나게 당황했어요.

연인이라는 관계가 처음이었고, 누군가를 좋아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가던 시절이었지만 울고 있는 남자에게 여행을 가지 않을 테니 그만 울라고 했었어요. 미안하다고 하면서요.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어요.

아 이 사람은 날 떠날 생각이 없구나 이때까지 겪어온 상담선생님, 엄마, 아빠와 다르게..

그때부터 좋아한다는 감정이 아닌 사랑한다라는 감정으로 바뀌었던 것 같아요.


그때의 전 그냥 그 친구에게 선택권을 주고자 그런 말을 던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 남자를 시험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내가 떠난다고 했을 때 날 붙잡을 것인지 아니면 그냥 보내버릴지 어떤 선택을 하나 지켜봤던 것 같아요.

비겁하게도요...


왜냐면 아무도 저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거든요.

사랑받는 방법과 사랑을 주는 방법을요.

하지만 그 친구를 만나면서 그런 것들을 하나 둘 배워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 지금까지는 나 혼자 아등바등 남을 믿지 못하면서 살아왔구나.

나름 혼자 잘 헤쳐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나는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아직 저의 완벽한 터닝포인트는 온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어요.


깨닫고 나니, 멈춰진 성장이 그때서야 제 기능을 하고 그때서야 미래를 꿈꿀 여유가 생겼어요.

그래서 사이버 대학으로 심리학을 따고, 자격증을 따며 심리 상담 관련취업 준비를 하면서 지냈어요.


제가 너무 힘들었던 과거를 겪었다 보니 나와 같은 경험을 겪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고, 공부를 하면서 나에 대해 더 알고 싶기도 했어요. 그렇게 일, 공부, 연애를 하며 바쁘게 지냈던 거 같아요.


그렇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가진 채 행복하게 4년을 만났어요.

그 친구의 응원을 받고 성장하면서 생각했어요.

아.. 이제는 우울이라는 감정의 마침표를 찍겠구나라고요..

하지만 그건 저의 오만이었고, 쇠고랑 같은 우울을 만만하게 봤던 거였죠..





역시나 우울증은 만나는 중간중간 재발했고, 제 발목을 잡고는 그와의 관계와 상황을 모두 끝내 버렸어요.

이따금씩 마른하늘에 장대비가 내리듯 제 우울은 갑작스레 계속 절 찾아왔고 그때마다 전 온전히 비를 맞아야 했어요. 그도 저와 같이 맞으며 저보다 더 힘들어했어요.

저도 많이 힘들지만 익숙한 감정이기에 체념했지만, 그에겐 아주 낯설고 꺼림칙한 느낌이라 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항상 그가 저를 도와주려고 했지만

원인 없는 우울에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서 그는 지쳐했어요.

힘들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저는 점점 말하지 않게 되었고 사이가 점점 벌어지며, 헤어지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면서  무서워했어요.

그래서 전 또 회피를 선택했어요. 그와의 거리를 벌리는 것으로요.


전 그가 모를 줄 알았어요. 제가 이별을 혼자 준비하는 것을..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고,

먼저 헤어지자고 통보했어요.


"내가 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네가 나 때문에 더 힘들어 보여.. 헤어져 줄까?"

라며 울면서 그는 말했고 저 역시 너무 슬퍼 엉엉 울면서도 그에게 내 우울이 옮아갈까 무서워 받아들였어요.

"그래"


그는 그렇게 제 인생에서 민들레 홀씨처럼 땅바닥에 뿌리를 내린 저를 두고 그렇게 훨훨 날아가 버렸어요.

저는 화려한 홀씨가 사라진 민둥산이 된 민들레로 초라하게 혼자 장대비를 맞으며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됐어요.


결국 끝은 도망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4년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전 그 친구가 너무 고마우면서 미안해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 줬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줬고, 회피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해 줬고, 다양한 감정들도 알게 해 준 친구예요.


전 다른 건 후회하지 않는데 한 가지 후회하는 게 있어요.

항상 끝을 생각하고 그 사람을 대했다는 게 정말 후회스러워요.

그냥 오늘을 사랑할 걸, 그냥 그 사람을 후회 없이 사랑할 걸이라고 말이에요.

대판 싸우더라도 싸우면서 같이 헤쳐 나갈걸.. 이라고요.


친구는 지금도 저에게 20살, 꽃 같은 대학시절 같은 존재예요.


헤어진 나이 29살..

그때서야 확실히 알았어요. 회피를 한다고 해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요.

회피를 하고 상황이 바뀌더라도 항상 끝은 같다는 것과

회피를 하면 할수록 마음의 벽은 점점 더 견고해지고 두꺼워진다는 것을요.

저를 집에서 나오게 한 것도 회피였지만, 저를 스스로 혼자 가두게 하는 것도 회피였어요.

정말 슬프게도 헤어진 이후에 그것을 깨달았아요.


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깨닫는다고 우울증이 사라지거나 회피성향이 없어지지는 않았어요.

징글징글하게도 옆에 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았죠.

그렇게 저는 익숙하면서도 끔찍하게 싫은 감정으로 다시 돌아갔어요. 무기력, 우울증으로요.


이번엔 아예 모든 것과의 단절을 하며 작은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어요.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일을 하지 않았고, 저를 돌보지 않았어요.

회피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회피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오히려 더욱 스스로 죄책감을 지게 해 저를 더 무기력하게 했어요.


하지만 살아가고 싶었고, 이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조깅을 시작했어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팔과 다리가 저릴 정도로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달렸어요.

그때만큼은 이 감정에서 벗어나길 바라면서요.


다른 사람들은 운동으로 힘든 상황을 벗어났다고들 하지만, 제가 겪은 바로는 그냥 그때 그 순간만 벗어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원상복구 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됐어요.

그럴수록 더욱더 깊은 땅끝으로 갔고

보다 못한 언니가 상담을 한번 더 받아보는 게 어떻냐고 권했어요.

 그렇게 두 번째 상담을 시작했어요. 제발 이 감정에서 벗어나길 바라면서요..







민들레는 홀씨를 날려 보낸 후,

혹독한 겨울을 땅에 납작 엎드려 이겨낸 다음

다시 새순을 올려

다시 한번 한살이를 시작한 다는 것을 아시나요?


민들레는 여러 해 살이 식물입니다.

지나간 홀씨는 마음에 묻어두고 새로운 한 살이를 위해 꽃을 피웁니다.

홀씨가 어디선가 꽃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은 채

그렇게 새로운 한 살이를 시작하면 됩니다.


새로운 사람이 찾아올 거예요.

정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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