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후 첫 심리 상담 이야기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알고 있는 히키코모리처럼
밖에 나가지 않았고, 밥도 먹지 않았고, 그냥 계속 누워 있었어요.
너무 누워 있어 허리가 아프고 머리가 배겨 더 이상 누워 있을 수 없을 땐, 엎드리며
그렇게 계속 잠을 자고 일어나고를 반복했어요.
하지만 그런 생활을 지속하는 게 한편으론 나쁘지 않았어요.
나름 좋았던 것 같아요. 우울이라는 병으로 스스로 가둬놓고, 하기 싫은 일과 만나고 싶지 않은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좋았어요.
알속은 아늑했고, 저를 공격할 어떤 것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보다 못한 친언니의 권유로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어요.
아마 제 돈으로 상담을 받아야 했으면 가지 않았을 테지만 언니가 지원해 주는 거라 어려운
발검음을 떼며 상담을 하러 갔었어요.
나름 심리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딴 상태라 선생님의 이력을 보며 신중하게 상담을 선택했어요.
첫 상담일에 집에서 대중교통 50분 거리를 가며 정말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느껴봤어요.
헤어진 게 11월이었는데 시간은 벌써 열기 가득한 7월이 되어있었어요.
바깥은 저희 집과는 다르게 활기가 가득했어요. 더워하는 사람들, 바다에 뛰어노는 아이들, 바닷가에 반짝이는 윤슬, 모두 생동감이 넘쳐 마냥 무채색 같던 저에게도 약간의 색감이 돌아온 느낌이었어요.
상담은 바로 시작되었고, 선생님은 40대의 여성으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어요.
바로 저의 과거 조사가 또 시작되었어요.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냥 술술 슬퍼하지도 않으며 모든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1시간 30분가량 긴 상담을 끝나고 집에 돌아오며 생각했어요.
뭔가 할 수 있을 거 같다고요.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집만 들어가면 다시 돌아왔어요.
변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생각과 세상의 활기를 느꼈던 마음 모두 다시 어디론가 버려버리고는
이불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어요.
다음 상담일인 일주일 동안요.
그렇게 일주일 뒤 두 번째 상담이 시작되었어요.
두 번째도 비슷했어요. 저의 호구조사, 과거조사, 여러 심리검사로 끝이 났어요.
그리고 세 번째에 비로소 상담이라는 것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때는 눈물도 흘리고, 마음속 이야기를 하며, 선생님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선생님의 표정은 항상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어요.
저의 심리결과는 약간의 우울이 보이지만 평균보다 훨씬 좋은 긍정성을 가졌고, 우울에서 벗어나고자 운동을 하고 있었고, 제가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세명이나 있었고, 검사 결과로는 아무 문제가 나타나지 않아서 선생님은 10회기 때까지도 저의 무기력과 우울의 원인을 찾지 못했어요.
상담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받을 수 있다고 하셨지만, 저에겐 도움이 되지 않을 거 같아서 10회기를 끝으로 제 인생의 두 번째 상담이 끝이 났어요.
결국 저의 무기력과 우울을 해결하지 못한 채 끝이 났어요.
그래도 우울 때문에 제 주변사람들이 힘들어해서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고, 도움도 요청하지 못하던 상태였는데, 맘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 해도 큰 위로와 감정 해소가 되었어요.
그리고 상담 중 가장 저의 마음을 뜨겁게 위로해 주었던 것이 있었어요.
상담과정 중에도 아니고, 검사 결과를 들을 때도 아니고, 상담 선생님의 나름 해결책과 원인을 이야기할 때도 아니었어요.
저에게 가장 큰 위로를 주었던 한 장면은 마지막 회기를 끝으로 집으로 가려던 그 한순간이었어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선생님 정말 감사했어요."
"맑음님 너무 고생했어요. 지금이 끝이 아니고 힘들면 언제든지 다시 찾아오면 돼요. 절대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하면 전 언제든 여기 있으니까 찾아오세요. 전화를 해도 좋고요"
라고 말씀하면서 마스크를 벗고 환하게 웃으셨어요. 그리곤 키가 아주 작은 선생님이 발 뒤꿈치까지 들어가며 저를 위에서 안으며 제 등을 토닥여 주었어요.
그 순간 어른의 보호를 받는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정말 상담받기를 잘했다고
느껴졌어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너무 낯설면서도 사람이 되게 커 보이는 순간이었어요.
그렇게 상담은 끝이 났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마음의 온기를 느끼며, 상담에서도 잘 울지 않던 제가 계속해서 눈물을 닦으며 갔어요.
상담이 저에게 준 결과물은 여러 가지였어요.
첫 번째, 객관적인 사실
저는 생각보다 너무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것과 자기 효능감이 높고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이라는 알 수 있었어요.
선생님은 말씀하셨어요.
"맑음님은 이렇게 좋은 것들을 타고났기에 지금까지 살아갈 수 있었을 거예요. 만약 맑음님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조금이라도 작았다면, 조심스럽지만 아마 벌써 죽음을 택했을 거예요. 정말 대단하고 지금까지 버틴 모든 것들을 이겨내 줘서 고마워요"
두 번째, 어른의 따뜻함
항상 철이 빨리 든 저였기에 어른의 도움을 받아 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항상 혼자 잘 헤쳐왔어요. 하지만 어른의 도움이 꼭 금전적이나 물리적인 게 아니라 포옹이라는 작은 마음이 제일 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세 번째, 내 우울은 전혀 이상하지 않고 당연한 결과다.
항상 우울을 원망하며 제가 나약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지금 이렇게 힘든 와중에도 조깅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 대단하고 의지력이 높다고 해주셔서 제가 나약하지 않고 오히려 강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고, 우울을 느끼는 지금 이 순간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당연한 결과라는 것을 알려 주셨어요. 그게 묘하게 안심이 됐어요.
네 번째, 저에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주었던 것
상담 이후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약간의 일을 하며 점점 괜찮아짐을 느끼며 버킷리스트인 여행까지 가볼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약간의 회복이 된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변화된 저는
점점 누워있는 시간보다 책을 읽기 시작했고, 한 번씩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아마 그때부터 브런치를 시작했던 것 같아요.
글을 쓰니 묵혀있던 마음이 해소가 되는 거 같아 정말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제 감정을 배출하기 위해 글을 쓰고 많은 책을 읽는 과정들이 저를 좀 더 변하게 했어요.
특히 [데일카네기-자기 관리론]에서
"행동에 몰두해야겠다. 절망에 시들어갈 수 없으니"
이 문장을 딱 보는 순간 책 속의 설명 따위 필요 없을 정도로 바로 행동하기 시작했어요.
글을 매일 쓰기 시작했고, 책을 읽기 시작했고, 카페 알바 경험이 많아 파트타임으로 짧지만 일을 시작했고, 미뤄뒀던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행동에 몰두할수록 절망스러운 감정에서는 멀어지는 것 같았으나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 항상 뻥 뚫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아무리 많은 행동을 해도 채워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전 30살 전에 꼭 이루고 싶었던 유럽여행을 가기로 했어요.
마음속 텅 빈 곳을 채울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그저 행복했어요. 앞으로 나아지기만 하는 나날들과 꿈같던 여행을 하고 있는 제 미래 모습을 떠올리면서요.
지금까지 이 브런치 북을 쓰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정말 끊임없이 반복하는구나를요.
우울-약간의 나아짐-기대-행동-회피-더 깊은 우울
이렇게 계속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을요. 언젠가 이 쳇바퀴를 끊어내고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을지는
아직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텀이 조금은 길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또 돌아갈 것을 알지만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알에서 나오진 못했어요. 하지만 걸어가고 있어요. 선생님의 포옹이 준 작은 빛을 향해서요.
유럽여행이 저를 또 멈추게 했지만, 결국은 그것 또한 먼 길을 가기 위한 휴식일 거라고 생각해요.
여행이 저에게 준 것들에 대해서는 다음장에 이야기할게요.
참 유명한 말인 거 다들 아시죠?
한 문장으로 모든 걸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행동하는 건 너무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알을 깨고 세상에 태어나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 알이 각자마다 두께가 다르다는 것은 모른다고 생각해요.
누구는 쉽게 깰 수 있지만, 누구는 시멘트 같이 단단한 것을 깨기 위해 노력과 포기를 반복한다는 것을요.
하지만 알은 알일 뿐이에요. 알은 새끼를 보호하고 언젠간 꼭 깨지게 되어 있어요.
꼭 새끼가 알을 깰 필요도 없어요. 혼자 깨지 못하면 도움을 요청하면 돼요.
그거면 돼요.
결국 알은 깨지게 되어있어요.
그것만 알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