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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하루는 맑음 Sep 05. 2024

3. 인생의 반쪽짜리 터닝포인트

방어기제로 시작되다.

 





반쪽짜리 터닝포인트였던 나의 광복 3월 1일         
 


고등학교를 자퇴하곤 5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여전히 집에선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폭언과 모든 집안일, 어린 동생 케어, 누워 있는 게     

제5년 동안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전 점점 망가져 가고 있었습니다.     

얼굴엔 생기를 잃고, 어떤 표정을 짓는 것도 어색할 정도로 얼굴 근육은 무표정인 그대로 굳어진 채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난 2월 어느 날 문득 잠자리에 들려고 누워 있었습니다.     

매일 하루의 15시간 이상 잠을 자던 때였기에 잠이 오지 않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만 생각이 나던 중 갑자기 한 생각이 제 머리를 스치자 갑가지 온몸에 불안감과 두려움에 몸이 떨렸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태로 평생을 살게 되는 걸까?'               


이 생각이 스치자 눈물조차 나지 않았던 저는 울음이 났습니다. 그렇게 소리 내어 울어본 적은 지금까지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눈물이 멈출 것 같으면 제 허벅지를 주먹으로 치며 그렇게 몇 시간을 울었습니다.     

이때까지의 모든 감정들을 토하듯이 그렇게 울분에 받쳐 모든 것을 쏟아냈었습니다.     

그러곤 또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여기에 있으면 벗어날 수 없어. 이곳에서 나가야 해. 나가야 해. 나가야 해.'     


또다시 전 도망칠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저의 최선이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것처럼 또다시 전 제 방어기제인 회피를 생각했습니다. 아빠와 싸울 생각조차 못 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저를 또 도망가게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벼랑 끝에 있을 때면 스스로가 저를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회피를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퇴를 할 때도 죽기 직전의 마음상태였고, 집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할 때도 죽기 진적의 몸부림이라고 생각합니다.    

회피가 나쁘단 걸 알지만 그때의 전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제 책임을 버리고 전 그렇게 집을 떠났습니다. 23살의 어린 나이에 말이죠.     


그렇게 집에서 도망쳐 나온 날이 3.1 절이었어요. 기억이 나는 게 3.2일부터 교육을 받기 위해 1일에 집을 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꼭 제 인생의 광복을 위해서 3.1 절 운동하듯이 그렇게 힘겹게 나왔습니다. 그날이 제 인생의 완벽한 터닝 포인트였고 이제 행복만 남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반쪽짜리 터닝포인트였어요 세상에 저를 나올 수 있게 했고 그날의 전과 후의 생활과 감정은 많이 달라졌지만 근본적인 우울은 해결되지는 않았기에 끊임없이 저를 옥죄어오고 괴롭혔어요...


부산에서 경북 상주로 떠났습니다. 부산에 있는 것조차 치가 떨릴 정도로 싫었기에 전 번호를 바꾸고 제 수중에 30만 원이라는 작은 돈을 가지고 무작정 도망쳤습니다.               

남동생이 성인 될 때까지만 기다리려고 했지만 제 숨통이 끊어질 것 같아서 전 아빠에게 내일 집을 나가 독립하겠다고 말을 하고는 그렇게 옷 몇 벌을 들곤 버스를 탔습니다.     




그때 아빠의 딱 한 마디 대답은      

' 너 알아서 해라.'였습니다.  



             

누가 보면 며칠 놀러 간다고 생각할 정도로 저의 짐은 한 없이 작았습니다.     

다행히 골프장 캐디로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어 그곳에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전 23살 처음으로 돈을 벌고, 자유가 생겼고, 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처음엔 너무 힘들었습니다.     


골프에 골자도 모르는 제가 캐디를 하기 위해 한 달간의 무보수 교육을 받아야 했고, 30만 원으로 한 달을 버티느라 굶어야 했으며, 일을 나가도 온통 모르는 것뿐이라 항상 의기소침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전 돌아갈 곳이 없었기에 이 악물고 버텼습니다.     

처음 사회생활과 온전치 못한 정신상태로 일을 시작해 같이 일하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욕을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애써 무시한 채 그렇게 2년을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돈을 쓸 곳도 없었어요. 워낙 시골이라 근처 편의점에서 과자 사 먹는 정도면 돼서     

2년 동안 약 5천 정도 모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2년 동안 많이 힘들어했어요. 아무 연고도 없고, 사회경험도 없고, 돈도 없고 맨 몸으로 태풍이 부는 바닷속을 뛰어드는 듯했어요. 하지만 한편으론 행복했어요.    

방 안에서 술 취한 발걸음 소리에 두려움을 떨지 않아도 됐고,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었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었고 모든 것이 제 의지에 달려있다는 게 행복했어요.     


수중에 돈도 있고, 주변에 친한 사람들도 생겨 마음에 여유가 생겼어요. 2년이 지나니   

주변 제 나이와 똑같은 다른 여대생들이 보였고 너무 부러웠어요.    

대학교는 가고 싶지 않았기에 가지 않아도 됐지만, 평범하게 아르바이트하고 연애하고 하는 것이 부러웠어요.            





그래서 전 또다시 선택했어요.     

일을 그만두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는 것을요.     

그렇게 이번엔 수중에 꽤 많은 돈을 들고 부산으로 가 원룸에서 생활하며 하고 싶었던 카페 알바를 하고, 운동을 하며 그렇게 일반 25살 여자들처럼 살아가며 못 갔던 여행을 실컷 갔던 것 같아요.     

국내 기차 여행, 여러 해외여행등을 다니며 점점 제 자신을 찾아가는 듯했어요.  


웃음이 많아지고, 얼굴에 화장도 하고 친구들과 술도 먹으며 그렇게 지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정말 누가 천억을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행복을 느꼈던 때인 거 같아요. 하지만 마음속 한 구석엔 저의 우울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행복했지만 불행했어요.     

저에겐 자유가 있지만 울타리는 없었기에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위험해도 구해줄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이 불안했어요. 하지만 애써 외면하며 마냥 행복하고, 사랑 많이 받아 온 사람, 자존감 높은 사람처럼 행동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주변사람들은 알고 있더라고요. 옛날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말들은     

' 넌 정말 어른스럽다. '     

' 독립심이 강하다. '     

' 마음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     

' 벽이 느껴진다. '     

' 뭔가 슬픔이 느껴진다. '

같은 말들을 많이 들었어요. 


아마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무언가 들이 사람들에게 보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행복했어요. 가슴속 먼가 공허했지만 그 정도 공허는 지금까지의 힘듦에 비해선 새발의 피였기에     

애써 무시하며 그렇게 사이버 대학도 다니고 자격증도 따며 미래를 준비해 갔어요.               

하지만 역시나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으니 시간이 지나자 저의 옛날 모습으로 돌아갔던 것 같아요.

다시 무기력해졌고, 모든 것이 재미없어졌고, 살아야 할 의미를 찾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돈을 벌어야 했기에 계속 카페 알바를 이어가며 그렇게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을 때               

그때 난생처음 첫 남자친구를 만났어요.     

그러곤 내가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했던 3월 1일이 완벽하지 않았구나를 깨달을 수 있었어요.     

그 친구 덕분에요.               


그 친구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할게요.





내가 가장 부러우면서 싫어하는 가사 한 줄



-날 진심으로 사랑해 준 첫 번째 남자는 바로 아빠니까요. < Camila Cabello-First Man 노래 >

가사가 그때의 아빠대사와 대조되어 지금까지도 마음이 먹먹하고 서럽습니다.


-그때 아빠의 딱 한 마디 대답은      

' 너 알아서 해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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