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은 정말 짧았다. 여름이 길고 무더워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을을 기다렸다. 가을이 와서 반가웠다. 하지만 올가을에는 유난히 비도 자주 내렸다. 우여곡절 끝에 여름이 다 가는 시기에 사놓은 장화가 아깝지 않았다. 그만큼 많이 신었다. 9월인데도 가을인지 여름인지 왔다 갔다 했다.
우여곡절 끝에 산 장화
뭐가 그리 바빴는지 올 가을에는 단풍 구경도 가지 못했다. 그저 운전하며 본 길가의 가로수와 아파트 산책로에 있는 벚나무와 단풍나무의 단풍을 본 게 다다. 참, 10월 말에 손자 옷 갖다 주려고 다녀온 수원의 큰아들네 가면서 본 은행나무도 예뻤다.
퇴직하기 전학교 옆 아파트에 있는 은행나무 길이 가을이면 정말 예뻤다. 몇 번을 카메라에 담았다.떨어져 쌓인 은행잎을 밟으며 산책하면 영화의 주인공처럼 행복했다.가을이면 은행나무 길이 그립다.
여름과 가을의 은행나무 길
벌써 11월 말이다. 가을 단풍 구경을 못 가서 서운하던 터에 대학 동기 친구들이 가까운 둘레길로 나들이 가자고 했다. 지금은 모두 퇴직했는데 모두 바쁘다. 늘 하는 아야기가 '백수가 과로사한다.'이다.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14명이 참석한다고 신청했다.
장소는 과천 서울대공원 산책로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무릎이 아파서 등산은 못 한다는 친구가 있어서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장소를 선택했다. 오전 10시 50분에 대공원역 2번 출구에서 모이기로 했다. 버스를 전세 내지 않아서 회비도 2만 원만 받았다.
내가 모임 부회장 겸 회계라서 꼭 참석해야 했다.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고 1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대공원역에 도착했다. 모이는 장소가 2번 출구라 나가보니 벌써 친구들이 와 있었다. 우리 말고도 연령대가 비슷한 분들이 여기저기 무리 지어 모여 있었다.이곳이 만남의 장소 같았다.
많이 모이면 좋은데 60대 중반이다 보니 아파서 참석 못 하고, 손주 보느라고 못 오고 사정들이 있었다. 퇴직 후에 다시 일하는 동기도 있었다. 오늘 모인 친구들은 그래도건강하고시간도 있는친구들이다. 입구에서 준비한 물과 귤을 나눠주고 걷기 시작했다.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
서울대공원은 모두 오랜만에 방문한다고 했다. 나도 교사였을 때 아이들 소풍 올 때 데려오고, 우리 아이들 초등학교 때 오고 처음 왔다. 20년은 되었다. 날씨도 너무 좋아 바람 한 점 구름 한 점 없는 최상의 날이었다.
동물원 산책로와 산림 욕장길 등 두 가지 산책로가 있었다. 동물원 산책로는 평지나 다름없는 길이고, 산림 욕장길은 등산이 필요한 길이다. 다리 아픈 친구가 있어서 우리는 동물원 산책로로 가기로 하였다.처음 온 친구들이 많아서 기대된다고 하였다.
가을과 초겨울이 공존하는 산책로
오랜만에 나와서인지 보이는 풍경이 너무 좋았다. 초겨울이지만 아직 가을이 많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단풍도 있고 낙엽도 있었다. 가을과 겨울이 공존한다. 사진을 안 찍을 수 없다. 친구들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사진 찍는 것이 싫다. 사진 속의 얼굴에서 나이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임에는 분명하다.
산책로에는 단풍나무가 많았는데 단풍이 들지 않고 그냥 말라버린 나무가 많아서 아쉬웠다. 가을이 너무 더워서 단풍 들 새가 없었던 것 같다.말라버린 나무에 단풍이 다 들었다면 정말 아름다운 가을 산이 되었을 거다. 가을을 두 번째 봄이라고 한다. 단풍이 꽃처럼 예쁘기 때문이다.
동물원 산책로는 걷기에 무난했다. 평소에 운동 안 하는 나도 힘든 줄 몰랐다. 만 보 이상 걸었지만, 힘들다고 하는 친구도 없었다. 그래도 정상에서 잠시 쉬며 물도 마시고 간식도 먹었다. 간식 준비를 안 해 왔는데 각자 조금씩 챙겨 왔다. 약과와 견과류, 귤 등 모으니 푸짐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을 이때 사용해도 될지 모르지만, 모두 인정이 넘쳤다.
소원성취 명품 소나무(왼쪽은 부를 상징, 오른쪽은 명예 상징)
내려오는 길도 좋았다. 이구동성으로 봄에 오면 더 좋겠다고 하며 내년 3월 말쯤 한 번 더 오자고 했다. 다 내려왔는데 신기한 소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대공원 소원성취 명품 소나무였다. 소나무가 각각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왼쪽 소나무는 부(富)를 상징하고, 오른쪽 소나무는 명예를 상징한다.부와 명예(名譽)를 같이 바라면 부조리가 발생하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고 건강한 정신과 삶을 통해 균형 있고 청렴한 생활을 추구하라는 교훈이 담긴 소나무라고 한다. 소나무를 보며 삶의 교훈을한 번 더 새겨보았다.
오리 진흙구이집
2시간 30분 정도 걸었더니 모두 시장하다고 했다. 예약해 둔 오리 진흙 구이집에 도착했다.오리 진흙 구이는 모두 오랜만에 먹는다며 좋아했다. 많이 걸은 후에 먹어서인지 맛있었다. 오리를 콩잎장아찌에 싸서 먹으니 일품이었다. 속에 든 찹쌀밥도 맛있었다. 걸은 만큼 몸보신이 될 것 같다.후식으로 먹은 동치미국수도 상큼하고 좋았다.음식점은 과천에 살고 있는 동기가 자주 왔던 곳이라 믿고 예약해 주었다. 만족도가 높았다.
점심을 먹고 옆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14명이다 보니 실내에는 자리가 없어서 야외 자리를 붙여서 앉았다. 주문하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차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 보니 우리가 앉은자리가 애완견 카페방이었다. 강아지와 함께 온 손님이 우리 반대쪽에 앉아 있었다. 애완견 카페는 처음이어서 기분이 참 묘했다. 요즘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겠다.
60대 중반인 친구들이라 머리도 희끗희끗하고 얼굴에 주름도 있다. 하지만 20대 학창 시절로 돌아가서 옛날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노래 가사처럼 모두 아름답게 익어 가면 좋겠다. 1월 말에 한 번 더 산행하자고 약속하고 전철역을 향했다. 대부분 서울에 살기에 4호선 전철을 탔다.
서울 근교에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좋은 산책로가 있어서 참 좋았다. 그것도 다리 아픈 사람도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라 더 좋았다. 입장료가 없는 것도 좋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과천 서울대공원 산책로를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가면 좋겠다.
요즘 날씨가 제법 추웠는데 오늘은 바람 한 점 구름 한 점 없는 좋은 날씨였다.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걷기에 딱 좋았다. 하늘도 오랜만에 만나는 우리를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오늘도 특별하지 않지만, 나에겐 특별한 하루로 기억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