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신애 Aug 24. 2022

게임은 너희만 하냐?

-It takes TWO.

"엄마, 잘했어. 이제 그걸 눌러. 아니, 세모를 눌러."

아들이 게임을 하면서 나를 가르치고 있다. 아, 그것 참, 마음대로 안 되네.


나는 취미 활동에 대해서 아들에게 좀 후한 편이다. 왜냐하면 나도 취미 활동에 굉장히 몰입하는 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이 오락을 하는 시간도 넉넉하게 준다. 하다가 중간에 그만하는 건 정말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오락에 심취했던 역사가 있다. 대학에 진학했다가 학과를 바꾸기 위해서 반년 동안 재수생활을 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때 당시 컴퓨터로 하는 '남극탐험'이라는 게임을 밤새워했었다. 이 게임은 펭귄이 남극을 정복하는 게임이었는데 빙하를 펭귄 앞에 잘 배열하여 펭귄을 무사히 통과시키면 다음 판이 열리는 게임이었다. 나는 공부도 하기 싫고 고민도 잊고 싶어서 이 게임을 선택했었다. 밤새 게임을 하면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무념무상의 경지이다. 게임을 하다가 밤을 샌 적도 많았다. 날이 밝아서 새가 지저귀기 시작하면 세상 모든 시름이 다시 모두 기억나기 시작하기 때문에 얼른 오락을 끄고 잠자리에 들면 된다. 자포자기한 듯한 생활 패턴이었다. 물론 매일 밤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그로 인해 많은 시간을 흘려버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아들도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경험이 없으면 주변에서 아무리 많은 사람이 조언을 해도 피부에 와닿지 않는 법이니까.


우리 집의 오락 왕은 아들이 아니라 남편이다. 남편은 비싼 게임기를 중고로 구해 집에 들여놓고 쉬는 날 시간이 날 때마다 아들과 함께 한다. 웬만하면 '가족과 함께' 많은 일들을 하는 나이지만 게임을 할 때에는 나는 빠지곤 한다. 우리 집의 컨트롤러는 두 개라는 것이 핑계가 되어준다. 뭐를 해도 함께 하려는 아빠와 아들이 와서 오락하는 자신들을 지켜봐 달라고 하곤 했지만, 관심이 없는데 게임을 지켜봐서 뭐하겠는가.


그런 나도 잘하는 게임이 있으니, 바로 '테트리스 vs. 뿌요뿌요'라는 2D 게임이다. 그 게임을 왜 잘하게 되었는지는 역사가 있다. 남편이 대결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설거지를 내걸고 게임을 제안하곤 했고, 원래 연습하면 뭐든 실력이 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뿌요뿌요의 달인이 되어갔다. 이제는 내기 없이도 가끔씩 피 튀기는 사투가 시작되기도 한다. 


지난번에 아들과 남편이 하는 3D인 총 쏘는 게임을 해보았는데, 확실히 연습부족으로 게임 진행이 쉽지 않았다. 이것까지 열심히 할 여력이 없었는지라 게임은 남편과 아들에게 양보했었다. 그러나 이번 게임은 설득에 못 이겨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It takes TWO.'라는 이 게임은 '로즈'라는 아이의 부모가 서로 싸우고 이혼하려고 계획하면서 시작된다. 이혼 이야기를 들은 로즈는 슬퍼하고 알 수 없는 주문에 걸려 지푸라기 인형으로 변한다. 그리고 이 둘은 자신들의 주문을 풀기 위해서 게임을 다 끝내야만 한다는 스토리이다. 스토리가 이렇다 보니 남편과 아내 역할의 두 명이 이 게임을 함께 해야 하고, 이 둘이 협동하지 않으면 게임이 진행되지 않는다. 한쪽이 눌러줘서 다른 쪽을 먼저 건너보내고 그 사람이 건너가서 무엇인가를 눌러줘야 다른 사람이 넘어올 수 있는 그런 게임이다. 남편이랑 아내가 둘이 하면 왠지 사이좋은 커플도 이혼시킬 수 있겠다고 불현듯 생각하게 되는 게임이기도 했다. 둘 중 한 사람이 너무 못하면 열받아서 이혼하겠는데, 이거.


우리 집은 남편이 요즘 2주에 한 번 집에 오기 때문에 아들과 내가 이 게임을 같이 하게 되었다. 게임을 안 하던 나는 아이에게는 간단한 것도 상당히 어려워하며 해결해 나가야했다. 특히 시선까지 바꿔가면서 뛰어다녀야 하는데 그것도 힘들고, 도대체 뭐를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허다했다. 그때마다 아들은 화를 내지 않고 친절하게 지도해주었다.

"잘했어, 엄마. 처음 하는데 상당히 잘하는데."

이거 어디서 듣던 얘기인데. 내가 했었던 얘기 아닌가.

"괜찮아, 괜찮아, 죽을 수도 있지. 기다릴게, 얼른 부활해봐."

나는 뜻대로 게임이 진행되지 않아서 머리를 쥐어뜯는다. 음, 이래서 애가 수학 문제 풀 때 머리를 쥐어뜯었었구나. 오락하면서 아주 득도를 하는구나.


마지막에 청소기 괴물을 물리치는 게임을 함께 하는데 내가 계속 죽어서 시간이 걸리자 아이는 조용히 이야기했다.

"아, 아빠가 이래서 나랑 할 때 화를 냈었구나."

그래, 너도 좀 깨달아지더냐?

이전 27화 우리 엄마가 그럴 리가 없는데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