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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애 Jul 27. 2022

우리 엄마가 그럴 리가 없는데요.

그럴 리가 없기는.

“우리 엄마가 그럴 리가 없는데요."

학교에서 지원자들을 모아서 그중 1명 뽑아서 하는 과학실험 수업에 제비뽑기를 하러 가라고 하자 아들 윤군이 선생님께 한 말이다. 엄마가 자신에게 의논하지 않고 수업 신청을 했을 리 없다고 강하게 항변했지만 선생님은 분명 부모님이 체크하셔서 기록에 있으니 가서 제비를 뽑으라고 하셨고, 그는 제비를 뽑고 당첨되었다. 대박. 

    

윤군과 나는 신뢰도가 각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남편보다 윤군에게 의논했다. 1살 때부터. 놀라지 마시라. 알아 들어서 의논을 했겠는가. 처음은 그냥 수다로 시작되었다.

"윤군, 너 이 분유가 낫니, 아니면 저 분유가 더 맛있었니?"

처음에는 대답을 기대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윤군은 대답을 시작했고 재미가 들린 나는 쉴 새 없이 얘기했다. 

"윤군아, 이거 배워보고 싶지 않니?"

"아니, 그건 싫어."

"윤군아, 이거 먹어볼래?"

"난 그건 냄새가 싫어."

나는 주저 없이 싫다면 시키지도 않았고 먹이지도 않았다. 물론 예의 없다거나 상대에게 해가 되는 행동에 해당되지는 않았다. 나는 쓸데없는 것을 강요당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상대에게도 강요하는 것이 싫었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걔가 뭘 알아서 선택을 하겠냐.’고 했다. 사실 윤군은 몰라서 선택을 못 하거나 무조건 싫다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피아노를 쳐봤어야 피아노가 뭐인지 알지. 그걸 '너도 피아노 배워볼래?' 그랬으니. 


윤군의 외할머니인 우리 엄마는 교육열이 높으신 분이기 때문에 내가 아이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고 조언해주셨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다양한 경험이 먼저 있어야 내가 뭐를 좋아하는지를 아니까.  

    

어쨌든 내가 윤군에게 물어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결정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날의 일이 있기 전까지는. 


어느 날 학교에서 알림이 왔는데, 이 근방의 학교들에서 지원을 받아서 한 학교당 1명씩만 뽑아서 과학 실험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살펴보니 위치도 집이랑 가까웠고 시간도 되는 것 같았다. 돈 내고 과학 실험을 배우러 가는 학생들도 있는데, 무료로 이렇게 재미있어 보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신다니 구미가 당겼다.

“윤군, 이거 과학 실험 수업인데 너 해 볼래?”

“아니.”

윤군은 대체로 수업은 다 안 듣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하기야, 노는 게 최고지.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흐응.’하는 소리를 내며 포기했다.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지원자 중에 한 명만 선발한다고 되어있었다. 다음 날도 나는 그 수업 신청에 대해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아는 엄마를 만났는데, 거기 과학 프로그램이 매우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팔랑팔랑. 나의 팔랑귀가 흔들렸고, 한 명 뽑는데 설마 되겠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나는 '신청' 버튼을 눌렀다. 게다가 그냥 추첨을 해서 결과를 알려 주는 건 줄만 알았지 설마 아이들이 직접 가서 뽑기를 하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날 윤군은 학교에서 돌아와서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거기 모인 아이들은 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애들이었어. 많이 왔더라고.”

아이가 이야기해주는 친구들 이름을 들으며 나는 새삼 미안해졌다. 그것 참. 하고 싶은 아이들이 하게 둘 걸.

“그 아이들이 모여서 제비를 뽑았는데, 글쎄, 내가 된 거야.”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경험을 한 것처럼 아이는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데 나만 이 수업이 뭘 하는 수업인지 모르는 거지. 그랬더니 친구가 ‘아니, 왜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 된 거지?’라고 하더라고. 양보해주고 싶기도 했는데 양보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 

하기야, 다들 하고 싶어 하니 당첨된 아이가 특정한 아이에게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 나랑 의논 안 하고는 지원하고 그러지 않았었잖아? 이번엔 왜 그랬어?”

아이는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정말 궁금한 모양이다. 짜슥.

“그러게.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움직였네. 그런데 대단하다. 어떻게 그 아이들 중에 네가 그걸 뽑냐.”

"나는 안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뽑았거든, 그런데 글쎄, 된 거야."

뭔가 뽑았다는 것이 기쁘기는 한 모양이다. 아이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뭔가 마음에 걸리는 듯 말했다.

“아, 내가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 아닌데요’, 그랬는데.”

“뭐가?”

“선생님이 엄마가 신청하셨겠지 하시길래. 우리 엄마는 나랑 의논하지 않고 결정하지 않는다고 그랬지. 정말 왜 그랬어, 엄마.”     


그러게. 담부턴 안 그럴게.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그냥 신청 버튼을 한 번 눌러본 거라면, 믿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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