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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애 Jul 12. 2022

같은 운동화 두 켤레를 신게 된 사연

-소통의 중요성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막 택배로 도착한 똑같은 새 운동화 두 켤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남편은 운동화를 무척 좋아한다. 운동화만 신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운동화를 수집하듯이 산다는 얘기다. 나는 결혼하고 나서야 운동화에도 그렇게 많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러닝슈즈, 워킹화, 농구화, 축구화, 등산화, 골프화, 트레킹화. 이밖에도 종류는 많은 것 같다. 이 종류에 따라 기능이 다 다르기 때문에 남편의 말에 따르자면 다 필요한 운동화들이란다. 게다가 운동화를 생산하는 회사는 더욱 다양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치며 들었던 메이커나 생전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도 있었다. 운동화의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물론 비쌀수록 좋은 경우가 많다.      


“당근~”

당근의 외침이 들리면 이제 우리 식구들은 모두 알고 있다. 어느 브랜드의 운동화가 또 당근에 나왔는가. 

“이제 그만 좀 사.”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짜증스러움이 묻어나는 어조로 내가 말한다.

그래도 남편은 열심히 당근 거래를 하면서 나에게 이게 원래 얼마짜리인데 자기는 싸게 샀다며 얼마에 샀는지 자랑한다. 그래서 언제 다 신을 건데.     


나도 운동화를 신는다. 하이힐을 신고도 뛰어다녔던 젊은 시절은 어디로 갔는가. 10센티 하이힐을 신고 다녔던 것이 실화인지 이제 의심스럽다. 그때 신었던 힐이 한 켤레 있는데 이제는 신고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다. 그래서 나도 운동화를 애용한다. 늘 바쁘게 뛰어다니는 성격을 가졌기에 운동화는 내게 제격이다. 나는 성격상 한 켤레를 주구장창 신는 성격이다. 다 떨어져서 쓸 수 없을 때까지. 가방도 하나를 정하고 들고 다니기 시작하면 안의 물건들을 헷갈려서 옮기지 못할까 봐 못 바꿔 드는 그 원칙을 운동화에도 적용한다. 운동화는 바꿔신어서 헷갈릴 것도 없구먼. 그런데 이번에 ‘나의’ 운동화를 바꿔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내 운동화에 구멍이 난 것이다. 이제 더는 못 신겠군.    

  

직장에 있는 남편과 카톡을 했다.

‘나 운동화가 빵꾸났어. 하나 사야 할 것 같은데, 뭐로 살까?’

남편은 운동화 전문가니까 잘 알지 않을까.

메시지를 받은 남편은 한참을 인터넷 서핑을 하더니 나에게 추천하는 상품의 링크를 하나 보내주었다. 너무 비싼 것을 추천해주면 내가 놀랄까 봐 남편은 적절히 중저가 물건을 추천해주었다.

‘이걸로 살래?’

‘응, 그걸로 살까 봐.’

우리의 카톡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나는 그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운동화를 주문했다. 그런데 바로 그 운동화가 내 앞에 두 켤레 배달되어 온 것이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잘 못 보내진 물건인 줄 알았다. 그래서 회사 연락처로 전화를 해보았다.

“저희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같은 걸 두 켤레 사시길래. 그것도 따로따로 주문하셔서.”   

  

남편은 내가 자신에게 사달라고 한 것으로 생각하고 주문을 넣었으며, 나는 나더러 사라고 링크를 보낸 줄 알고 각각 행동하여 생긴 일이었다. 

우리는 서로 증거로 카톡 메시지를 내밀었으나 그 증거는 누구에게도 유리하지 않았다. 보기에 따라서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이걸로 살래?” 는 ‘이걸로 사기로 결정한 거니? 내가 결제할게.’라는 의미였으며, “응, 그걸로 살까 봐.”는 ‘응, 그걸로 내가 주문할게.’라는 의미였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이미 일은 벌어졌는데. 우리끼리 오해한 것이었으니 운동화 회사에 아무리 잘못 주문된 것이라고 호소해도 반품하는 길밖에 없었다. 오고 가는 택배비를 다 부담해야 했기에 중저가 운동화를 사면서 지출하기에 반품비는 너무 쎘다. 그래서 나는 같은 운동화를 두 켤레나 가지게 된 것이다. 신어보니 그렇게 편한 운동화도 아니었는데. 어허허허허.  

   

만나서 대화를 해도 서로를 오해하는 것이 쉬운데 하물며 카톡 대화에서야.

남편과 나는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은 주말부부였다. 

주중에는 서로 통화하면서 싸우고 주말에 만나서는 얘기하면서 화해하는 똑같은 과정을 매번 되풀이하곤 했다. 

만나서 얼굴을 보고 얘기해도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물며 전화로는 상대의 표정이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오해하기는 더 쉬웠다. 

카톡으로 남기는 대화는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고 일하다가도 대화를 남길 수 있다는 편리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전화통화보다 더 많은 오해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운동화는 어떻게 되었을까? 

동시에 두 켤레를 신는 엽기 행각을 벌일 수는 없어서 한 켤레는 신발장에 고이 모셔두었다. 어느 날 11살인 아들이 친구들과 물총놀이를 해서 운동화가 젖어 돌아왔다. 아이는 신발장을 뒤적뒤적하더니 보관되어 있던 새 운동화를 발견하고는 쑥 신었다.

“아, 잘 맞네.”

아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나를 향해 싱긋 웃고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했더니. 운동화야, 너는 네 쓸모가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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