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로 마음먹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무서운’ 이야기 해줄게. 어떤 농부가 당근이랑 무를 키우고 있었대.”
“오, 응,응.”
리엑션은 늘 큰 것이 좋다. 그래야 상대가 이야기할 때 내가 즐겁게 듣고 있음을 나타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농부는 당근만 좋아해서 그것만 먹었대. 그래서 무는 무척이나 ‘서운’했대. 자, 어때? ‘무서운’얘기야.”
아이는 자기가 이야기 했는데도 썰렁한 개그라고 생각했는지 머쓱해했다.
“오오~그 ‘무서운’ 얘기.”
나는 잠시 멈칫 했지만 크게 웃으며 반응했다.
“윤군아, 무는 자기가 농부한테 먹히지 않아서 서운했다는 거야? 자기가 먹히는 건데...아, 그래, 안 먹히고 가만히 놔두면 썩겠구나.”
나는 우리 집 냉장고에서 상해서 버렸었던 무를 생각해 냈다. 마음 속으로 그 무에게 추모의 마음을 보내며.
“그럼 그건 ‘무썩은’얘기가 되겠네. 으하하하하.”
아이는 나의 더 썰렁한 농담에 함께 웃어준다.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오오, 나 좋은 라임이 생각났어. ‘무가 상하다.’ 그러면 ‘무상한’얘기가 되는거지.”
나는 또 혼자 좋다고 웃는다. 아이가 질문한다.
“엄마, 근데 ‘무상한’은 무슨 뜻인데?”
“음....인생이 ‘무상하다.’라고 하는데, 인생이 별 거 없다. 뭐 그런 뜻이야. 이따가 사전 찾아보자.”
갑자기 국어 공부가 됨은 무슨 일인가? 마무리는 가볍게.
“으흐흐흐, ‘무썩은’얘기.”
우리는 마주보고 깔깔깔 웃는다. 어디 다른 데 가서 써먹으면 안되는데. 설마 그 정도 생각은 있겠지.
우리집의 이런 희한한 유머는 남편도 예외는 아니다. 남편이 한 번 유머라고 써먹었다가 후회 한 아이템이 있으니 바로 우리 집에서 가장 잘 쓰이게 된 ‘절로’개그이다.
그 개그의 시작은 이랬다.
“아빠, 절(저리)로 가야해요.”
“윤군아, 우리는 ‘교회’다니쟎아. ‘절’에 가면 안되지.”
순간 아들과 나는 둘 다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했다. 겨우 이해한 윤군과 나는 그 당시에는 남편에게 썰렁한 개그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신선한 아이디어인데.’라고 생각했다. 윤군도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그 후 남편이 ‘절로(저리로)가자.’라는 말을 할 때마다 아들과 나는 번갈아 가며 ‘교회로 가야지.’로 응수했고 남편은 애초에 자신이 그런 농담을 던졌던 것을 매우 후회했다.
우리가 이런 썰렁한 개그에 서로 웃는 것은 아마도 웃겨서 웃는다기보다 웃고 싶어서 웃는 것이 아닐까? 웃을 일이 많이 없을 때에도 우리는 웃기로 작정하고 웃어본다.